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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 받지 못해 구멍 난 사진들... 사진은 진실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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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 받지 못해 구멍 난 사진들... 사진은 진실한가

입력
2016.04.27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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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샨, '재정착민 가족'(1935). 갤러리룩스 제공
벤샨, '재정착민 가족'(1935). 갤러리룩스 제공

1930년대 미국농업안정국(Farm Security AdministrationㆍFSA)의 방대한 아카이브 중 펀치로 구멍을 뚫어 다시 사용할 수 없게 훼손한 사진들이 적지 않다. 당시 사진 아카이브 책임자였던 로이 스트라이커가 FSA의 이념에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한 사진 원본에 펀치로 구멍을 뚫은 것이다.

FSA가 추구한 이념은 미국 농촌의 어려운 현실을 국민에게 알리는 것이었다. 루스벨트 대통령이 뉴딜 정책의 일환으로 낸 농촌 빈민 구제 관련 법안이 보수층의 반대에 부딪히자 미국 농촌의 참상을 보여줌으로써 법안을 통과시키려고 했던 것이다. 이에 스트라이커는 권력층의 목적 달성과는 거리가 먼 사진들 원본에 펀치로 구멍을 뚫었다. 예술적으로 찍힌 사진은 물론이고 필요 이상의 감정을 자극하는 사진도 포함됐다.

그렇게 훼손된 사진이 10만장에 달한다. 아더 로드스타인, 벤 샨 등 당대 내로라하는 사진가들은 자신들의 의사와 관계없이 권력자인 스트라이커에 의해 필름이 망가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스트라이커의 의도대로 이념에 맞지 않는다고 여겨진 수많은 사진들이 역사에 파묻힌 채 지금까지 공개되지 않았다.

사진가이자 사진이론가인 박상우씨가 기획한 ‘폐기된 사진의 귀환: FSA 펀치 사진’ 전시회가 5월 3일부터 6월 4일까지 서울 종로구 갤러리룩스에서 열린다. 펀치로 검은 구멍이 난 FSA 아카이브 사진들을 모은 것이다.

아더 로드스타인, '소작농 아내와 아이들'(1935). 갤러리룩스 제공
아더 로드스타인, '소작농 아내와 아이들'(1935). 갤러리룩스 제공

펀치 사진을 모르고 전시를 찾은 관객은 시각적 충격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사진을 압도해 버리는 구멍들에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다. 박상우씨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이 하찮은 사진들을 두고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사진에 관한 모든 담론을 뒤흔든다”고 말했다. 흔히 ‘실재를 투명하게 반영한다’고 여겨지는 사진의 역사가 실은 FSA 아카이브 사진들의 시커먼 펀치 구멍처럼 사실 누군가의 선택과 배제로 ‘구축된’ 역사라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는 “권력자에 의해 무참히 ‘살해’된 사진”들을 통해 “사진에 덧붙여진 객관성이나 사실성, 진실성과 같은 담론이 얼마나 허구적인지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박상우씨는 또한 이 펀치 사진들이 가려진 역사를 보여주는 데서 나아가 기존 사진철학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게 하는 단초를 제공할 수 있다고 보았다. 박씨는 “롤랑 바르트를 비롯해 기존의 사진철학자는 사진에서 ‘촬영하기’ ‘촬영되기’ ‘바라보기’라는 세 가지 행위에 관심을 기울여 왔다”며 “펀치 사진은 세 가지 외에 ‘선택하기’라는 또 다른 행위가 존재한다는 것을 일깨워준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선택이라는 행위는 단지 FSA 사진이 속한 다큐멘터리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보도사진, 예술사진, 일상사진 등 사진의 모든 분야에서 특정 사진이 선택되는 것은 필연이다. 그는 이런 필연성 때문에 “‘선택’이란 사진의 선택적인 속성이 아닌 근본적인 속성”이라며 “펀치 사진을 통해 기존의 철학이 망각했던 선택이라는 행위와 선택자라는 사진 주체를 새롭게 정립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칼 마이더슨, '농장'(1936). 갤러리룩스 제공
칼 마이더슨, '농장'(1936). 갤러리룩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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