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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배정자와 김산

입력
2016.10.0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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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밀정’은 독립운동가인지 밀정인지 논란이 일었던 한 실존인물의 이야기를 다룬다. 제목에 쓰인 밀정이라는 단어는 상대편의 비밀을 캐내 넘겨주는 사람으로 간첩, 세작, 간자, 첩자, 스파이 등과 뜻이 비슷하지만 일제시대의 첩자를 지칭할 때 주로 사용된다. 일제를 위해 활동한 밀정은 생각보다 많았던 것 같다. 1919년 임시정부 수립 당시 상해 거주 조선인의 3분의 1이 밀정이었다는 말이 있었을 정도다. 그럼에도 누가 밀정이고 어떤 방식으로 정보를 캐냈는지 등에 대한 공식 자료는 많지 않다.

▦ 하지만 ‘조선의 마타하리’로 불린 배정자는 누가 보아도 틀림없는 밀정이다. 이토 히로부미의 양녀로 알려진 배정자는 일본에서 밀정 교육을 받고 귀국해 주로 만주와 몽골 등지의 조선인을 정탐했고 상해에서도 같은 일을 하다가 임시정부의 수배를 받았다. 상해임시정부에서 군무차장, 군무총장 대리, 육군무관학교 교장 등 고위직을 지낸 김희선도 밀정으로 알려져 있다. 임시정부는 그의 변절과 밀정 혐의를 확인하는 포고를 발표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김희선은 거리낌 없이 건국훈장을 받았다가 1996년 서훈이 취소됐다.

▦ 이승만 시절 특무대장을 지낸 김창룡도 밀정으로 지목된다. 관동군 헌병보조원 출신인 김창룡은 조선과 중국의 항일조직을 정탐하고 여러 조직을 검거하는 데 관여한다. 그는 국립 대전 현충원에 안장돼 있는데 시민단체들은 밀정의 묘를 국립묘지에 두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이장을 촉구하고 있다. 3ㆍ1 독립선언 당시 민족대표를 자처한 33인 중 한 명이었던 이갑성도 오래 전부터 밀정 논란에 휩싸여 있다. 이들 밀정 때문에 항일 세력은 늘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리고 밀정이라고 최종적으로 판단하면 과감하게 처단했다.

▦ 밀정으로 인한 비극은 한 둘이 아니다. 일본이 만주 항일조직에 조선인 밀정을 잠입시키자 중국 공산당이 항일 동지였던 조선인 혁명가들을 밀정으로 의심해 500여명이나 숨지게 한 민생단 사건은 돌아보기도 싫은 참극이다. ‘아리랑’의 주인공 김산이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것이나 또 다른 조선인 혁명가 김찬과 그의 중국인 아내 도개손이 희생된 것 역시 중국 공산당의 강경분자 강생이 그들을 밀정으로 의심해 이성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밀정 중 상당수는 처벌을 받는 대신 해방 후 반공투사 등으로 변신해 버젓이 살았다.

/ 박광희 논설위원 kh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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