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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유쾌한 소영씨

입력
2017.02.16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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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고 있는 동네는 여느 농촌처럼 쇠락해 가는 작은 마을이다. 앞으로 귀농하는 이들이 생긴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으면 머지않아 사라질 운명인 쓸쓸한 마을이다. 이렇게 스러져가는 마을에 생기를 돌게 하는 한 사람이 있다. 내가 귀농하던 이십여 전에는 자연스럽게 ‘소영이’라고 불러도 좋을 열 살 어름이었지만 이제는 서른을 넘겼으므로 소영씨라고 부른다.

소영씨는 지적 장애 2급인데 보통 다섯 살 정도 아이 수준이라고 한다. 말도 부모만 겨우 알아들을 정도로 아주 서툴다. 멀리 떨어진 도시의 한 학교를 몇 년 통학했을 뿐, 소영씨는 마을을 떠나본 적이 없다. 소영씨는 덩치가 큰 데다가 좀 우악스러운 면이 있어서 내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소영씨를 무서워하기도 했다. 아이들을 몹시 좋아해서 함께 놀고자 했던 것이었는데 아이들은 저보다 훨씬 큰 어른이 막무가내로 달려드니 좀 두렵기도 했으리라. 하지만 소영씨는 어린아이 같은 투정은 있을지언정 전혀 폭력적이지 않고 사람을 너무나 좋아한다.

소영씨가 사는 집은 마을 중간 길갓집이어서 누구나 그 앞을 오고 가는데 지나갈 때마다 어떻게 알았는지 소영씨가 부르곤 한다. 꽤나 선명한 발음으로 부르는 소리는 ‘커피!’다. 마을 사람 누구에게나, 하루에 몇 번이라도 커피를 마시고 가라며 팔을 붙든다.

하여튼 소영씨네는 커피를 구입하느라 꽤 많은 지출을 할 정도다. 마당에는 앉아서 커피를 마실 수 있는 탁자까지 갖추었고 자연스럽게 마을 일들을 논의하고 이웃 간에 정담을 나누는 장소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소영씨 아버지는 마을에서 가장 중심이 되어 이장이나 동계장 같은 일을 맡고 있다. 모든 사람에게 커피!, 를 외치며 집안으로 끌어들이는 소영씨의 능력(?)은 곰곰 생각하면 작은 일이 아니다. 농촌에서도 거의 무너져버린 끈끈한 공동체의식이나 사람에 대한 배려는 바로 이웃을 가까이 하며 먼저 베풀고자 하는 마음이 아니었던가.

소영씨는 농사일도 참 잘 한다. 이미 기운을 많이 잃은 부모를 도와 비료나 사과 상자들을 번쩍번쩍 들어 나른다. 물론 세심하게 손이 가는 일에는 서툴고 쉽게 흥미를 잃지만 적어도 힘을 쓰는 일만큼은 신을 내며 한다.

소영씨 아버지는 그녀가 어렸을 때 내게 어떤 전문적인 시설에 보내는 것을 생각한다는 말을 더러 한 적이 있다. 어떤 판단도 할 수 없었기에 아무 말도 해줄 수 없었는데, 소영씨가 점점 한 사람의 농군으로, 한 사람의 마을공동체 구성원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요즘은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다. 내 생각에 소영씨는 한 사람의 마을 주민 이상이다.

겨울철에는 마을회관에 사람들이 모여 심심풀이 화투를 치거나 찬거리를 추렴해 함께 밥을 지어먹는다. 작은 마을이고 남자 노인들이 일찍 세상을 뜬 집이 많아서 날마다 모이는 사람들은 십여 명 정도다. 서로 의지가 되고 긴긴 겨울날을 보내는 것은 좋지만 거기에 큰 재미나 활력이 있을 리 없다. 그런데 그곳에서도 소영씨는 시간을 유쾌하게 바꾼다. 아니 소영씨의 존재 자체가 유쾌함이다. 터무니없이 큰 소리로 웃고, 가끔은 소리를 지르고, 밥상에서 반찬을 흩뜨리고, 화투를 치는 할머니들의 무릎에 냉큼 머리를 베고 눕는 다섯 살 정도의 어린아이가 늘 상주하는 경로당이란 얼마나 활기에 넘치겠는가. 만약 소영씨가 없다면 우리 마을 경로당은 참으로 적막할 것이다.

물론 나는 안다. 점점 나이가 들어가면서 형님 내외분이 소영씨의 미래에 대해 걱정이 깊어간다는 것을. 그리고 그 걱정이 개인적으로 쉽게 풀릴 문제가 아니고 사려 깊은 사회적 논의가 되어야 한다는 것도. 다만 나는 마을에서 소영씨와 함께 살면서 지금 같은 상황이 마을주민에게나 소영씨에게나 가장 좋은 시간이 아닐까, 그렇게 혼자 생각해본다.

최용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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