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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데이터로 세상읽기] 한국 사회에서의 혐오

입력
2016.05.22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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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서울 강남역 인근 건물의 공용화장실에서 발생한 여성 살해 사건의 희생자 추모가 이어지고 있다.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는 피해 여성에 대한 추모와 미안함, 그리고 분노를 담은 쪽지와 조화가 겹겹이 쌓여가고 있다.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이지만, 이번 사건의 원인과 예방을 둘러싼 사회적 논의가 뜨겁다. 그 과정에서 수면 위로 올라온 키워드는 ‘여성혐오’다. 가해자의 진술과 사건 정황을 토대로 볼 때, 정신질환자의 우발적 범죄가 아니라 여성에 대한 잠재적 증오가 계획적이고 폭력적으로 표출된 사건이라는 것이다.

혐오, 무엇이 얼마나 보도되었나?

국립국어원에서 제공하는 혐오(嫌惡)의 사전적 의미는 ‘미워하고 꺼림’ 혹은 ‘싫어하고 미워함’이다. 감정이나 상태를 나타내는 말이지만 ‘즐거움’이나 ‘기쁨’, ‘아픔’ ‘슬픔’과 달리 혐오는 무엇인가 대상(對象)을 필요로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동안 무엇을 미워하고 꺼리고 또 싫어해 왔을까. 이를 살펴보기 위해 지난 10년간 한국일보에서 ‘혐오’를 키워드로 하여 작성된 기사를 분석했다. 이제까지의 빅데이터 분석과 달리 SNS가 아닌 기사를 대상으로 분석한 것은 개인적 문제를 넘어 사회적 공론의 차원에서 다뤄져 온 ‘혐오’의 주제와 대상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기 위해서다.

분석을 위한 데이터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뉴스아카이브 분석8시스템인 빅카인즈 서비스(www.kinds.or.kr)를 활용해 한국일보 기사에 대해 추출하였다. 데이터 추출 결과, 지난 10년간(2006.5.21~2016.5.20) 한국일보에서 혐오와 관련하여 생산된 기사는 총 1,639건이다.

그림에서 나타난 것과 같이 월별 추이를 볼 때, 혐오 관련 기사가 꾸준히 있었지만 특히 2015년부터 기사 건수가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기사 내용을 살펴보니 그동안 온라인 상에서 지속적으로 나타났던 특정 집단 폄훼와 비하의 문제에 대해 사회적 공론의 필요성을 제기한 기사가 많았다. 전반적인 기사 건수와 함께, 보다 정확한 내용 파악을 위해 해당 기사에서 혐오와 연관되어 나타나는 단어들을 빈도순으로 추출했다.

혐오 대상, 시설에서 사람으로

분석 기간 중 전반기에 해당하는 2006년부터 2011년까지 5년간 혐오와 관련해 기사 속에 나타난 주요 연관어는 ‘러시아’ ‘주민들’ ‘사람들’ ‘시민들’ ‘자원회수시설’ ‘부산환경공단’ ‘하남시’ 등이었다. 이 시기에 우리 사회에서 ‘혐오’와 관련하여 특징적인 측면으로 볼 수 있었던 것은 혐오 시설의 설치와 관련하여 지역적으로 나타난 갈등의 문제들이었다. 즉 쓰레기 소각장이나 납골 시설 등 소위 ‘혐오 시설’의 유치를 둘러싸고 나타난 지역민들 혹은 지역 간의 갈등이 주를 이뤘다. 추출된 연관어 중 다소 의아하게 생각되는 ‘러시아’의 경우 자국 내 이민족에 대한 인종 혐오 사건 관련 기사도 있었지만, 동유럽의 핵폐기물을 수입ㆍ저장해 이윤을 추구했던 푸틴 정권에 대한 기사도 나타나 같은 맥락에서 이해가 가능하다.

이런 양상이 최근 5년 동안 전반적으로 바뀌었다. 2011년부터 최근까지의 기사에 나타난 ‘혐오’ 관련 단어들은 ‘소수자’ ‘오프라인’ ‘사람들’ ‘개똥녀’ ‘강남역’ ‘여성들’ ‘신상녀’ ‘강사녀’ ‘동성애’ ‘외국인’ ‘장애인’ 등이었다. 혐오의 주요 대상이 ‘시설’에서 ‘사람’으로 변화한 것이다. 동성애자나 외국인 노동자, 장애인 등의 사회적 소수자와 함께 ‘ㅇㅇ녀’로 대표되는 여성을 둘러싼 이슈들이 ‘혐오’와 연관돼 기사화된 횟수가 크게 증가했다.

특히 기사 데이터가 최근으로 올수록 혐오와 관련해 나타난 특징적 형태는 부정적으로 대상화된 여성들의 모습이다. 일반적으로 매체를 통해 기사화됐다는 것은 보도의 가치를 지닌 것으로, 매우 특별한 일이거나 지속적인 문제 제기가 이뤄지지만 해결되지 않은 사안이라는 의미이다. 넘쳐나는 정치 관련 뉴스나 매일 부딪히게 되는 먹고 사는 얘기와는 비교되지 않는 보도량이지만, 혐오 관련 기사가 계속 이어졌다는 것은 간헐적이어도 지속적으로 사회적 차원에서 대처 필요성이 제기된 것이다. 온라인 공간의 일부 극소수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는 표현의 차원이나, 일상 속에서 은밀하게 혹은 개인적으로 겪어 온 혐오의 체험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그로 인한 문제점과 그 대책에 대한 공론화가 나타났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번 강남역 살해 사건의 원인에 대한 규명도 필요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더욱 사회적 관심을 기울여야 할 부분은 그간 잠재돼 있던 혐오의 본질을 근원에서부터 따져보는 일일 것이다. 강남역 10번 출구에 켜켜이 쌓여 있는 조화와 수많은 쪽지가 전하는 분노와 불안, 서글픔, 미안함 그리고 체념의 메시지에 귀 기울여야 한다. 어떤 사회적 혹은 심리적 기제가 작용해 혐오의 대상화가 이뤄지고 있는지, 그로 인한 피해와 고통은 어떤 식으로 구체화했는지, 또 차별 없이 평등하고 안심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한 실질적 제도는 무엇인지 등에 대한 체계적 논의가 시급하다. 제도 마련과 함께 우리가 가진 인식에 대해서도 성찰과 반성이 필요하다. 다름에 대한 관용이 아니라 인정과 존중이 우선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그럴 만한 이유 없이 너무도 아깝고 허무하게 죽어간 희생자의 넋을 기리는 일일 것이다.

배 영 숭실대 정보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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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 출처:

※ 한국언론진흥재단, 뉴스아카이브 분석시스템 빅카인즈 서비스(www.kind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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