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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같은 매력 있는 독립영화들, 한국영화의 미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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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같은 매력 있는 독립영화들, 한국영화의 미래죠”

입력
2018.04.09 04:4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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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영화상 집행위원장 파켓

주목받지 못한 창의적 작품 발굴

5년째 시상… 소박한 축제 열어

‘살인의 추억’부터 ‘아가씨’까지

최근엔 영화자막 번역에도 몰두

달시 파켓 들꽃영화상 집행위원장은 “재정적 여건이 마련되면 독립영화인에게 현실적인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상금제를 도입하고 싶다”며 “내년에는 수상작을 해외에 소개하는 해외 상영회를 열 계획”이라고 말했다. 홍인기 기자
달시 파켓 들꽃영화상 집행위원장은 “재정적 여건이 마련되면 독립영화인에게 현실적인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상금제를 도입하고 싶다”며 “내년에는 수상작을 해외에 소개하는 해외 상영회를 열 계획”이라고 말했다. 홍인기 기자

이름 모를 들꽃에도 저마다 빛깔과 향기가 있다. 풀섶의 작은 존재들에 다정하게 눈길을 내어준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기쁨이다. 미국 출신 영화평론가 달시 파켓(46)씨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더 나아가 파켓씨는 들꽃이 선사하는 기쁨을 더 많은 이들이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소박한 축제도 꾸렸다. 국내 유일 저예산ㆍ독립영화 시상식인 들꽃영화상이다. 쪼들리는 예산 등 여러 장애를 넘어 올해로 어느덧 5회를 맞았다.

최근 서울 세종대로 한국일보에서 마주한 파켓씨는 “영화상을 준비하고 진행하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자리 잡힌 것 같아 뿌듯하다”며 지난 시간을 돌아봤다. 12일 서울 예장동 문학의 집에서 열리는 올해 시상식에서는 ‘여배우는 오늘도’ ‘꿈의 제인’ ‘노무현입니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 등 작품성을 인정받은 독립영화들이 트로피를 두고 다툰다.

파켓씨는 한국인보다 한국영화를 잘 아는 평론가로 유명하다. 그럼에도 한국영화인이 아닌 미국인 평론가가 한국의 독립영화를 격려하는 시상식을 만들었다는 사실은 한국영화계를 한없이 부끄럽게 한다. 파켓씨는 “창의적이고 개성 있는 독립영화들이 많은데 상업영화에 비해 주목 받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며 “감독과 배우 등 많은 영화인들이 도와준 덕분에 영화상을 꾸릴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제5회 들꽃영화상 포스터. 시상식은 12일 서울 예장동 문학의 집에서 열린다.
제5회 들꽃영화상 포스터. 시상식은 12일 서울 예장동 문학의 집에서 열린다.

집행위원장으로 들꽃영화상을 5년간 이끌어 오면서 한국영화의 경향과 변화를 한층 가깝게 체감할 수 있었다. “최근 상업영화는 비슷한 소재와 장르에 쏠려 있어요. 관객들이 새로운 영화를 찾기 시작했죠. 그러면서 독립영화에 눈을 돌리게 됐고요. 독립영화만 집중적으로 찾아보는 팬덤도 생겼어요. 연말에 언론들이 ‘올해의 영화’를 꼽을 때 독립영화가 포함되는 경우도 많아졌죠.”

최근 독립영화계에선 다큐멘터리의 약진이 눈에 띈다. 개봉 편수가 늘었을 뿐 아니라, 185만 관객을 동원한 ‘노무현입니다’와 26만 관객이 본 ‘공범자들’ 같은 흥행작도 배출했다. 파켓씨는 “지난 몇 년간 한국 정치의 드라마틱한 변화가 다큐멘터리의 성과로 이어졌다”고 평했다.

들꽃영화상은 한국영화의 미래를 발굴한다는 것에 더 큰 의미가 있다. 2015년 ‘족구왕’으로 남우주연상을 받은 배우 안재홍은 당시엔 낯선 얼굴이었지만 금세 스타가 됐다. 애니메이션영화 ‘사이비’로 2014년 1회 감독상을 받은 연상호 감독은 2년 뒤 ‘부산행’으로 1,000만 흥행을 일궜다. 파켓씨는 “2회 때 남녀신인상을 받은 최우식과 김수안까지 ‘부산행’에 나와 더없이 반가웠다”고 웃음지었다.

영화 ‘돈의 맛’에서 비열한 미국인 엘리트를 연기한 달시 파켓.
영화 ‘돈의 맛’에서 비열한 미국인 엘리트를 연기한 달시 파켓.
영화 ‘강철대오: 구국의 철가방’에 나온 달시 파켓(왼쪽).
영화 ‘강철대오: 구국의 철가방’에 나온 달시 파켓(왼쪽).

파켓씨가 한국영화를 위해 하는 일은 평론 활동과 영화상 개최에 그치지 않는다. 부산영상위원회에서 운영하는 부산아시아영화학교에서 프로듀서 과정 교수로 여러 나라에서 온 영화학도들을 가르치고 있다. 이탈리아 우디네극동영화제 컨설턴트로도 활동 중이다. 때때로 카메라 앞에서 연기도 한다. 임상수 감독의 ‘돈의 맛’에서 한국 정재계를 상대로 검은 뒷거래를 하는 미국인 엘리트로 등장한 배우가 바로 그다. ‘박열’과 ‘강철대오: 구국의 철가방’ ‘무게’ 등에도 나왔다. “‘군함도’에서 독립군 송중기가 첫 등장하는 장면에 (미군 정보장교로) 3초가량 나왔지만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고 귀띔한 파켓씨는 ‘영화배우’라 불리기를 쑥스러워했다.

그가 요즘 가장 몰두하는 일은 영화 자막 번역이다. ‘살인의 추억’ ‘괴물’ ‘곡성’ ‘택시운전사’ ‘밀정’ ‘암살’ 등이 그가 번역한 영문 자막을 달고 해외에 소개됐다. 올해 영국 아카데미영화상 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상을 받은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도 그의 손길을 거쳤다. 아주 작은 뉘앙스 차이로도 대사의 의미와 맥락이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한국영화가 세계에서 인정받는 데 그가 기여한 공이 결코 작지 않다. “1년에 10편 정도 번역해요. 힘들지만 적성에 맞아요. 번역하면서 영화를 더 깊이 이해할 수도 있게 됐고요. 반대로 평론을 할 때는 객관성을 가져야 하는데 그게 좀 어려워지더군요(웃음).”

달시 파켓씨는 영화 평론과 들꽃영화상 개최 외에도 부산아시아영화학교 교수, 한국영화 영문 자막 번역, 우디네극동영화제 컨설턴트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홍인기 기자
달시 파켓씨는 영화 평론과 들꽃영화상 개최 외에도 부산아시아영화학교 교수, 한국영화 영문 자막 번역, 우디네극동영화제 컨설턴트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홍인기 기자

파켓씨는 1997년 고려대 강사로 한국에 첫 발을 디뎠다. 한국어를 배우려고 본 한국영화에 푹 빠져 1999년 “취미 삼아” 한국영화 관련 웹사이트를 열었다. 그 웹사이트를 본 영국 영화산업지 스크린 인터내셔널의 제안으로 6년간 한국영화 칼럼도 썼다. 그렇게 한국영화와 인연이 이어져 오늘에 이르렀다. 그는 또 다른 꿈도 품고 있다.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제작에 관심이 생겨서 구상을 하고 있어요. 시나리오도 쓰고 싶고요. 다만, 시간이 없다는 게 문제죠. 들꽃영화상이 잘 되면 시간이 좀 나지 않을까요.”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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