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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줄리엣과 줄리엣이 사랑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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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줄리엣과 줄리엣이 사랑을 했다”

입력
2018.06.11 15:48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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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미오와 줄리엣’의 性 바꾼

세 편의 연극이 관객과 만나

성소수자 담론 진지하게 다뤄

창작집단 LAS의 '줄리엣과 줄리엣'은 셰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을 두 여성의 사랑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산울림소극장 제공
창작집단 LAS의 '줄리엣과 줄리엣'은 셰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을 두 여성의 사랑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산울림소극장 제공

16세기 베로나, 몬테규 집안과 캐플렛 집안에는 같은 이름을 가진 딸이 있었다. 줄리엣 몬테규와 줄리엣 캐플렛은 사랑에 빠지지만 집안의 반대에 부딪힌다. 지난 3월 초연한 창작집단 LAS의 ‘줄리엣과 줄리엣’은 셰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을 이렇게 재해석했다. 결말은 우리가 아는 ‘로미오와 줄리엣’과 같다. 다만 두 사람이 양가 반대에 부딪힌 이유가 다르다. 동성이라는 점 때문이다. 줄리엣 몬테규에게는 로미오라는 남동생이 있었는데 훗날 사람들은 “설마 여자끼리 사랑을 했겠느냐”며 로미오와 줄리엣의 비극으로 후세에 전한다. 관객들의 큰 호응을 얻은 이 작품은 다음달 4일부터 서울 서교동 산울림소극장에서 다시 무대에 오른다.

4월 공연된 극단 여행자의 ‘로미오와 줄리엣’도 두 여성이 주인공이었다. 2014년에는 주인공의 성별을 맞바꿔 진취적인 여성의 모습을 그렸던 작품이 올해는 두 여성의 사랑으로 다시 태어났다. 다음달 10일 동국대 이해랑극장에서 한국 초연되는 ‘알앤제이’는 엄격한 규율이 가득한 가톨릭 남학교를 배경으로 한다. 네 명의 남학생이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을 직접 연기해 보며 일탈을 경험한다는 내용이다.

올해 들어 세 편의 각기 다른 ‘로미오와 줄리엣’이 관객을 만난다. 세 작품 모두 주인공의 성별을 변주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배역의 성별을 바꾸는 ‘젠더 벤딩(Gender-bending) 캐스팅’은 세계적인 추세다. 국내에서는 이와 더불어 동성애자의 사랑을 전면으로 내세운 작품들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연극이 사회적 이슈를 무대에 옮기는 예술인 만큼 성소수자를 다루는 건 당연하다는 것이 연극계 반응이다.

주인공의 성별 전환이 처음 등장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예전의 성별 전환이 연극적 실험의 일환이었다면 최근에는 젊은 창작자를 중심으로 이를 젠더 이슈로서 더욱 적극적으로 다룬다. ‘줄리엣과 줄리엣’ 연출을 맡은 이기쁨 LAS 대표는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연극으로 만들다가 주제를 좁혀 성소수자를 전면에 내세우게 됐다”고 작품을 소개했다. 그는 극에 에필로그를 추가한 이유도 “세상 사람들이 두 여성이 사랑했을 리가 없다며 이들을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만들었지만, 그럼에도 이들은 존재한다는 의미를 담았다”고 했다.

올해 초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보다 더욱 혹독한 차별을 당했던 독일의 동성애자를 다룬 연극 ‘벤트’가 공연됐다. 다음달에는 퀴어 여성들의 이야기를 내세운 ‘이방연애’가 페미니즘 연극제를 통해 관객을 만난다.

이수현 정동극장 기획공연팀장은 “성소수자, 페미니즘, 사회적인 성 역할 등에 포인트를 둔 작품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며 “지금은 관객들도 젠더 이슈를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창작진도 잘못된 고정관념을 짚어보고 해결해보자는 적극적인 형태로 변화했다”고 분석했다. 김옥란 연극평론가는 “‘벤트’나 ‘줄리엣과 줄리엣’은 연극적인 기법을 넘어서 성소수자 담론을 진정성 있게 다뤘는데, 이런 점은 여성연출가들이 확실히 강점을 보인다”며 “‘인간애’ 등으로 포장하는 것도 없이 ‘퀴어 연극’임을 적극적으로 내세워 오히려 관객들도 받아들이기가 수월하다”고 평했다.

왜 유독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성별 바꾸기가 자주 나타날까? ‘알앤제이’ 연출을 맡은 김동연 연출가는 “어느 시대에나 통하는 텍스트이자 모든 멜로드라마의 기본”이라며 “전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남녀 캐릭터이기 때문에 현대에 맞게 다양하게 해석하고 변주될 수 있다”고 했다. 김옥란 평론가는 “‘가장 사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라는 페미니즘 슬로건이 있다”며 “‘로미오와 줄리엣’은 가장 사적인 사랑 이야기를 통해 가장 정치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봤다.

‘젠더 벤딩’과 더불어 역할 자체에 성별의 부여하지 않는 ‘젠더 프리’ 캐스팅도 늘고 있다. 국립창극단의 창극 ‘트로이의 여인들’에서는 남성 소리꾼 김준수가 헬레나 역할을 소화했다. 뮤지컬 ‘광화문연가’에서는 차지연과 정성화가 초월적 존재인 월하에 더블캐스팅 됐고, 뮤지컬 ‘에어포트 베이비’에서는 박칼린 연출가가 직접 트랜스젠더 역할로 무대에 올라 화제가 됐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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