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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진의 삶이 있는 풍경] ‘파리’보다 아름다운 그녀

입력
2015.06.16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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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웃음소리가 나를 흔들었다. 조금 전부터 살짝 달아오른 얼굴은 그녀와 마주친 눈빛에 겨워 이미 발갛게 물들고 있었다. 첫 눈인사를 나눈 순간 갑자기 눈가마저 촉촉하게 젖어버렸다. 설명할 수는 없어도 분명 내 가슴을 울리는 벅찬 감동의 순간인 것만은 분명했다. 하얗게 센 머리칼과 약간 굽은 등으로 보아 70년은 충분히 넘겼을 그녀의 삶과 세월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뜬금없이 그녀가 고마웠다. 그녀가 일행과 나누는 대화는 못 알아듣지만 간간히 터지는 웃음소리만으로도 즐거운 자리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다른 테이블에 있다가 그녀를 알아 본 같은 연배의 여인이 반갑게 다가가더니 (그녀의 손을 붙들고)한참을 ‘수다’를 떨기도 했다.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멋진 턱수염의 남자 종업원은 그녀의 주문에 유쾌한 표정과 몸짓으로 대화를 나누다가 (그녀의 어깨를 툭 치면서)목젖이 보일 만큼 화끈하게 웃기까지 했다.

어느 누구도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거나 이상한 눈빛으로 고개를 갸웃거리지도 않았다. 부드럽게 그녀를 감싸는 실내공기에 마저 고마움을 느끼며 나는 ‘경이롭기까지’ 한 이 기운에 한없이 빠져들었다. 삶의 향기가 진하게 묻어나는 자리인 탓일까.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길 중 하나로 꼽히는 5구역 무프타르 길(Rue Mouffetard)의 어느 식당. 늦은 저녁시간의 이곳은 테이블마다 제각기 짝을 이룬 손님들과 주문에 따라 분주하게 움직이는 종업원들까지 모두 30~40여명 정도의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 중 뒤늦게 자리를 잡은 나와 아내를 제외하고 아무도 그녀를 주목하지 않았지만 그것은 무관심이나 외면이 아니었다. 사람에 대한 사려 깊은 배려와 존중의 몸짓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배어나온 소리 없는 의식과 다름이 없었다. 당신이 이 자리에 있어도 전혀 아무렇지 ‘않아’ 하는 그들을 보면서 어정쩡한 연민의식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내가 차라리 부끄럽기만 했다.

사실 그녀는 남들과는 조금 다른, 아니 아주 많이 다른 얼굴이었다. 양쪽 눈두덩이는 거의 내려앉아 앞을 보기 어려울 정도였고 작은 돌기들 투성이인 얼굴도 근육 대부분이 심하게 뒤틀린 안면기형을 지니고 있던 것이다. 소설 ‘노틀담의 곱추’에서 나오는 ‘콰지모도’가 불쑥 연상될 만큼 그녀의 모습은 심각한 상태였다. 그러나 아무런 상관없이 그녀는 느지막한 식사의 여유를 즐기고 있었고 주변 사람들 또한 전혀 거리낌 없이 그녀를 대했다. 그 자체로 충분히 감동스러웠고 그래서 너무 고마웠다. 내가 나고 자란 나라에서 신체장애로 인해 몸이 불편한 친구들과 함께 할 때 받았던 던 그 ‘의식적’인 시선이나 동정심 가득한 ‘과도한’ 친절 따위의 불편한 감정을 이 자리에는 거의 느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두 번째로 그녀와 눈이 마주쳤을 때 나는 한결 편안한 하회탈 미소를 지어 보낸 뒤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포크질을 마무리 했다. 그리고 이내 마음을 먹었다. 별로 특별할 것 ‘없는’ 자연스러운 일상에서 얻은 이 ‘감동’에 대해 곧 누군가를 붙들고 절절하게 ‘수다질’을 하겠다고.

임종진 달팽이사진골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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