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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살며] 물으면 안 돼요?

입력
2015.08.21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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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과 처음 만나서 대화를 나눌 때 당황하는 외국인들이 많다고 한다. 사실 나도 그런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대화를 나누는데 내 나이, 종교, 결혼 여부, 가족 구성, 출신학교, 최종학력, 고향 기타 등등 온갖 개인정보를 묻기 시작한다. 대답은 하지만 처음에는 힘들고 불쾌하게 여겼다. 처음 만난 모르는 사람들에게 왜 그런 것까지 밝혀야 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에 온지 얼마 안되었을 때 방송을 보다가 놀란 적이 있다. 거리에서 행인들을 인터뷰하는데 이름과 나이가 그냥 자막으로 막 나가는 거였다. 한국에는 동명이인이 많기 때문에 구별하기 위해서라는 의견도 있는 듯 하지만 인터뷰에 응하는 쪽 처지에서 그런 것까지 생각했을 리는 없다. 어쨌든 인터뷰를 당한 사람이 질문에 별로 거리낌 없이 자신의 나이를 구체적으로 밝혔기 때문에 나이가 표시되었을 것이다.

이처럼 개인정보를 밝히는 기준에서 한국인들은 외국인들과 분명한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일본은 섬나라이며 원 나라가 일본을 침공한 외에는 외침을 받은 역사가 없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상대방을 알아가는 것보다 오히려 내 정보를 어디까지 줘도 되는지를 중요시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본 모습을 쉽게 보여 주려고 하지 않는 일본인의 이면성과 통할 수도 있다.

한편 한국의 경우 서로를 알아야 상대방에 대한 이해가 빠르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맞는 말이다. 지금은 나도 한국인에게 이것저것 개인정보를 묻는데, 실례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자기소개를 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어필하는 모습을 보면 참 서양적인 것 같기도 하다. 일본의 경우 스스로 자신을 드러내는 것보다 제3자의 평가를, 즉 타인이 인정해 주는 것을 좋아한다. 한국인들은 일본인에 비해 자기 주장이 센 것처럼 보인다. 잘못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명쾌한 부분이 있다.

일본인 특유라고 할 수 있는 서서히 상대방을 알려는 사고 방식은 한국인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답답하게 여기는 부분이 있다. 내가 아는 한국인이 일본에 가서 일본인 친구들과 친하게 지냈다고 했는데, 그에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일이 있었다. 일본인 친구끼리 친한 그룹이 있었는데 한국인 친구가 그들의 나이를 물어봐서 서로의 나이를 처음 알았다는 것이다. 그는 친한 친구끼리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수수께끼 같았다고 했는데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각각의 개인정보를 몰라도 교제하는데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나이를 알아서 인간관계에 선을 긋는 일을 싫어했다고 볼 수 있다. 하긴 나도 2년 넘게 하숙집 주인 아줌마의 이름조차 모르고 살았다. 우리는 ‘아줌마’라고 부르고, 외부 사람들은 ‘○○엄마’라고 불렀다. 하숙집 주인 아줌마의 이름을 몰라도 생활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었고, 결국 주인 아줌마의 실명을 모른 채 하숙집을 떠났다.

직접 묻지 않아도 한국에서 이름 석자와 주민등록번호만 알면 웬만한 것들은 알 수 있다고 한다. 우리 같은 외국인도 외국인 등록번호가 있으며 그 번호가 없으면 한국에서 살기에 상당히 불편한 일들이 많다. 일본에는 주민등록번호 같은 제도가 없고 자동차운전면허증, 국민의료보험카드, 여권, 학생의 경우 학생증 등 공식적으로 신분증으로 인정되는 종류가 많다. 그런데 일본도 2016년도부터 국내 거주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등록번호를 부여하는 ‘마이 넘버 제도’가 시행된다. 탈세나 사회보증제도, 재해시의 신분 확인 등에만 한정하여 사용한다고 일본 정부는 발표했으나 ‘국가에 의한 국민 관리’라고 반발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개인정보를 국가가 관리하는 법에 대한 반발인데 주민등록번호 선진국인 한국에서 그런 목소리를 들은 적이 없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 한국에서 살아가려면 한국식을 익히는 것이 결국 편하게 사는 방법이 아닐까?

쓰치다 마키 영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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