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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 사장님, ‘달밥’에선 한번 실패해도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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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 사장님, ‘달밥’에선 한번 실패해도 괜찮아요

입력
2017.06.06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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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 월요일 매출 10%만 내면

창업준비자에 식당 사장 기회

‘숍인숍’엔 신인 작품 진열하고

회계사 직업 살려 창업 야학도

서울 마포구 망원동에서 ‘달밥’을 운영하는 이지현씨가 5일 가게의 커튼을 열고 있다. 서재훈기자
서울 마포구 망원동에서 ‘달밥’을 운영하는 이지현씨가 5일 가게의 커튼을 열고 있다. 서재훈기자

“양도 적당하고 맛있다.” “아냐, 너무 달아.”

지난달 22일 서울 마포구 망원동의 한 식당. 조리하랴, 계산하랴, 정리하랴 홀로 바삐 움직이던 유재혁(30)씨 손이 손님의 ‘맛 평가’ 때마다 멈칫했다. 귀도 쫑긋했다. 이런 모습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10시까지 반복됐다. 때론 새로운 사실을 알아냈다는 듯 종이에 받아 적기도 했다. “피가 되고 살이 될 조언들이기 때문”이란다.

응당 주인으로서 할 일 하는 거 아니냐고 여길 법하지만 유씨는 사실 이 가게의 진짜 사장이 아니다. 굳이 따지면 일일 사장이고, 정확히는 예비창업자다. 조만간 캐나다로 건너가 찜닭을 파는 한식당을 차릴 계획이다. 유씨는 “출국 준비를 모두 마쳤는데, 이 식당의 ‘오픈 키친(Open kitchen)’ 참여자 모집공고를 보고 급히 비행기 표를 취소했다”고 했다. “내 음식을 손님들에게 팔아보고, 냉정한 평가를 받아보자”는 게 이유다.

오픈 키친은 말 그대로 ‘주방을 개방한다’는 뜻. 식당 창업을 꿈꾸지만 실패가 두려운 예비창업자들을 위한 일종의 식당창업 체험프로그램이다. 당일 총 매출의 10%만 수수료로 내면, 공간은 물론 밥솥부터 젓가락까지 조리도구를 모두 빌릴 수 있다. 유씨는 “창업하기 전 한 번쯤 ‘실패해보기 좋은’ 도전의 장”이라고 했다. 이곳에서의 실전 경험이 ‘창업 실패’ 가능성을 줄일 수 있는 기회란 얘기다. 다행히 이날 유씨는 준비한 80인분을 모두 팔았다. 그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큰 경험”이라고 흡족해 했다.

유씨를 첫 일일 사장으로 맞은 오픈 키친은 이 가게의 ‘진짜 사장’ 이지현(35)씨 아이디어다. 올 4월 ‘달밥’이란 이름의 가정식 식당을 차린 그는 “성공해도, 실패해도 예비창업자들에겐 모두 재산이 될 거란 생각에 격주 월요일마다 식당을 개방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경력단절 여성이나 청년창업자에게 우선 기회를 준다”는 나름의 운영원칙도 세웠다. 물론 재도전도 가능하다.

달밥은 겉보기엔 작은 식당이지만, 들여다보면 사실상 모든 공간이 예비창업자들의 창업 실험대로 꾸며져 있다. 식당 벽에 걸린 유화는 신인작가의 작품으로, 그 자리에서 구매도 가능하다. 진열대에 놓인 꽃과 잡지, 냉장고의 반찬도 알고 보면 모두 ‘남의 집 물건들.’ 수수료는 똑같이 판매금액의 10%다. 가게를 얻기 부담되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고, 이씨 본인도 약간의 수익을 얻을 수 있어 좋단다. 이곳에 그림을 갖다 놓은 한 신인작가는 “보통 목 좋은 ‘숍인숍(Shop in shop)’의 수수료가 30% 이상인 걸 감안하면 상당히 유리한 조건”이라고 했다.

밤에는 ‘야학’도 열린다. 예비창업자 또는 창업신인들을 위한 자리인데, 회계사인 이씨가 직접 자영업자들을 대상으로 종합소득세 신고 및 납부, 세율 계산, 절세 방안 등 실용 세법을 가르치거나 핸드드립 커피, 캘리그래피(손 글씨 예술) 등 창업 실용강좌도 열려 인기가 높다.

회계사 일도 하고 있는 이씨는 “몸이 3개라면 좋겠다”며 한숨을 쉬면서도 “달밥 개업은 인생 최고의 선택”이라고 했다. 아직 시작단계지만, ‘노력하는 모든 이들이 잘 먹고 잘 사는 세상’을 만들고자 한 설립 목표가 하나하나 실현되는 걸 느끼는 재미가 크단다.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서울 마포구 망원동에서 ‘달밥’을 운영하는 이지현씨가 5일 가게에서 활짝 웃고있다. 서재훈기자
서울 마포구 망원동에서 ‘달밥’을 운영하는 이지현씨가 5일 가게에서 활짝 웃고있다. 서재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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