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말 편찬기준이 제시되는 한국사 국정 교과서에서 남북한 단독정부 수립을 어떻게 다룰지도 쟁점이다. 해방 이후 미ㆍ소 군정을 거쳐 남북한 정권 수립에 이르는 3년 여의 시기다.
남북한 중 누가 먼저 단독정부를 수립했느냐가 관심사다. 특히 1946년 6월“남쪽 만이라도 먼저 정부를 수립하자”는 이승만의 이른바‘정읍 발언’에 대한 서술이 주목된다.
진보학계는 이 발언이 분단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한시준 단국대 사학과 교수는 “좌우합작 노력이 수반되던 중 38선 이남에 단독 정부를 수립해야 된다는 주장을 이승만이 처음으로 공론화했다”며 “(이승만은) 분단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말했다.
반면 보수 진영은 1946년 2월 이미 북한 지역에 정부에 해당하는 북조선 임시 인민위원회가 성립됐기 때문에 정읍 발언은 분단과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이 문제가 보수세력에게 얼마나 민감한지는 2013년 교육부가 이 시기를 다룬 검인정 교과서의 서술 순서를 수정하라고 명령한 점이 증명한다. 기존 검인정 교과서에는 남한에서 벌어졌던 미ㆍ소 공동위원회 개최, 정읍발언, 5ㆍ10총선거를 서술한 뒤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출범 등 북한에서 벌어진 사건을 다뤘다.
저자들은 관례에 따른 서술이라고 주장했지만, 교육부는 북한정권 수립이 정읍발언보다 명백히 선행(先行)했음을 보여주도록 시간 순으로 사건을 서술하도록 명령했다. 한철호 동국대 역사교육학과 교수는 “국정 교과서에는 정읍발언이 아예 누락되거나 공산주의 정권 수립을 막기 위한 불가피했다는 식으로 발언을 미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통일 후 북한에 대한 남한의 주권행사 여부와 관련 있는 1948년 12월‘유엔총회 결의문’관련 서술도 주목된다. 현행 검인정 교과서에는 1948년 유엔총회에서 “대한민국을 한반도 내 유일한 합법 정부로 승인했다”는 내용이 서술돼 있다. 기존에는 역사학계의 통설대로 “유엔 감독 하에 선거가 치러진 지역에서 유일한 합법 정부’라고 기술돼 있었지만 2013년 교육부가‘한반도 내 유일한 합법 정부’로 수정 권고를 내렸기 때문이다. 대신 결의문 세부 내용을 사료로 게재, 다른 해석의 여지를 뒀다.
그러나 국정교과서에는 이 같은 사료를 싣는 것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황교안 국무총리가 3일“유엔도 대한민국이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임을 승인했다”고 공식 언급했기 때문이다. 왕현종 연세대 역사문화학과 교수는 “1965년 한일 기본조약을 맺을 때도 일제 식민지 피해 보상 문제에 대해 한국 정부가 한반도를 대표하는지 문제에 대해 논란이 있었는데 명확하게 매듭지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국제법적으로 논쟁적인 사안을‘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해 국내정치에 이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제주도민의 단정반대운동이었던 제주 4ㆍ3 사건의 의미를 축소하고 국가의 민간인 학살책임을 은폐할 가능성도 높다. 현행 검정 교과서에는 국가가 이 사건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무고한 주민 수만 명을 희생시켰다는 내용이 서술 돼 있다.
하지만 최근 군이 교과서 서술에 참여할 가능성을 비치면서 축소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국방부는 앞서 2008년 교육과학기술부에 “4ㆍ3 사건을 대규모 좌익 세력의 반란 진압 과정에서 주동 세력의 선동에 속은 양민들도 희생된 사건으로 서술해야 된다”는 내용의 공문을 보낸 바 있다.
김민정기자 fac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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