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삶과 문화] 대통령의 허위 광고

입력
2017.02.05 09:56
0 0

비선 실세 최순실씨의 태블릿 PC에는 흥미진진한 문서들이 많아서 발견 후 석 달이 넘도록 다양한 볼거리와 논란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그 안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후보 시절 홍보 CF 영상도 들어 있었다. 보도에 따르면 PC 안에 있는 영상은 대선 홍보 기간 동안 실제 방영된 영상과는 자막에서 약간 차이가 있다. 큰 차이는 아니지만 언론이 주목한 것은 대선 후보 영상광고까지 최순실이 손을 댔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정말 그렇다면 최순실은 그 어느 보좌관이나 비서관보다 더 열심히 일한 대통령의 일꾼이었다는 사실이 다시 한 번 확인된 셈이다. 교육부 일에서부터 동계스포츠영재센터와 미르재단을 설립하고 모금하는 엄청난 일을 했다. 그것만 해도 바쁠 텐데 대통령의 옷과 가방을 고르고, 미용사와 의사를 소개하고, 차관과 대사도 추천했다. 대통령 연설문을 고치고, 해외 순방 전날엔 꼭 청와대에 들어가 문고리 3인방과 회의를 했다는 증언도 있다. 그 와중에 딸 친구 아버지의 회사를 대통령에게 부탁하는 부지런함까지 과시했다. 그러니 대통령이 할 일을 최씨보다 더 알뜰하게 챙긴 측근은 아마 없을 것이다.

최순실씨의 PC에 있었다는 2012년 박근혜 대통령 후보의 광고는 여의도 한강에 해가 떠오르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이어서 남녀노소 많은 사람들이 도시와 농촌, 거리와 일터에서 밝게 웃는 장면들이 보여진다. 카피를 들여다 보자.

Song)내일은 해가 뜬다 내일은 해가 뜬다

자막)꿈이 이루어지는 나라 박근혜가 만듭니다

지역ㆍ계층ㆍ세대를 넘어 모두가 한마음으로 행복한 꿈을 이루는 나라!

내 적성 살려 만족해 / 100살까지 건강해 / 원하는 곳에 취업해

사업도 꼭 성공해 / 60세 정년 기뻐해 / 집 걱정 없이 행복해

아기의 미래 든든해 / 고용불안 없이 함께해 / 빚 걱정 줄여 뿌듯해

24시간 안심해 / 행복을 약속해 / 내일을 기대해

여Na)국민행복시대를 여는 밝은 해, 박근혜와 같이 갑시다.

남Na)준비된 여성대통령 박근혜

광고에서 ‘박근혜’는 국민들에게 행복한 내일을 열어줄 ‘밝은 해’였다. 다른 광고에서 박근혜 후보는 이렇게 약속했다. ‘어머니와 같은 간절한 마음으로 / 어머니와 같은 강인함으로 / 끝없는 책임감으로 / 따뜻한 섬세함으로 / 국민행복시대를 열겠습니다’. 그런데 광고의 약속은 단 하나도 지켜지지 않았다. 과장 광고를 너머 허위 광고다.

대부분의 상업 광고는 철저하게 감시 받는다. 의약품, 술, 담배처럼 국민 건강과 안전에 영향을 미치는 품목은 훨씬 더 까다로운 심의를 거친다. 효과와 효능은 구체적 증거를 명시해야 한다. 허위ㆍ과장 광고가 적발되면 벌을 받는다. 실례로 작년 12월 공정거래위원회는 배출가스 관련 허위ㆍ과장 광고 혐의로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에 과징금 373억 2,600만 원을 부과했다. 허위 광고 관련 과징금으로는 역대 최고 금액이다. 그리고 12만 6,000대를 리콜 하라는 명령도 받았다.

자동차 허위 광고의 벌이 이렇게 엄중한데, 대통령의 선거광고는 허위라도 괜찮은 것일까. 자동차보다 훨씬 더 큰 영향을 전국민에게 끼치는 대통령이라는 대체 불가능한 상품을 거짓 광고를 보고 선택한 국민들은 어디서 보상을 받아야 할까. 광고는 원래 과장하고 미화하기 마련이니 저 정도의 거짓말은 애교로 봐 줘야 하나. 그러나 연초의 기자간담회와 인터넷 TV 인터뷰를 보면 대통령의 허위 광고는 확신범이나 상습범이 한 일처럼 보인다. 무엇보다 희망을 품게 하고 절망에 빠트린 거짓말, 행복을 약속하고 불행에 밀어 넣은 거짓말, 연인원 1,000만 명의 국민들을 따뜻한 주말 휴식 대신 추운 광화문에서 떨게 한 거짓말, 차라리 한국을 떠나고 싶게 만든 거짓말… 4년 전 대선 광고 속의 거짓말은 아무리 너그럽게 생각해도 용서할 수가 없다.

(새누리당 박근혜 대통령 후보 TV광고 – ‘내일은 해가 뜬다’편 링크)

정이숙 카피라이터ㆍ(주)프랜티브 이사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