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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 분투기] 아이를 맡기면 죄인이 되는 세상

입력
2017.01.19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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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에도 난이도 차이가 있다. 쉽게 가는 육아가 있는 반면 산 넘어 산이라고 할 만큼 끝도 없이 고비가 찾아오는 육아도 있다. 보통 딸보다는 아들이, 기질이 순한 아이보다는 예민한 아이가 고난도 육아를 선사해줄 확률이 높다. 안타깝게도 예민한 내 아들은 육아의 난도로 따지자면 최상급이다. 어릴 때부터 잘 자지도 먹지도 않았고 성미가 급해 안전사고가 잦았다. 머리가 커지면서 이제는 하고 싶은 일만 하려 하는 탓에 양치질 시키기가 하늘의 별 따기이고 외출 한 번 하려면 준비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처음에는 몰랐다. 내 아이만 유독 키우기 어렵다는 사실을 말이다. 육아란 기본적으로 어려운 일이니 모든 아이가 다 힘들 줄로만 알았지 편한 아이가 있다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같은 시기에 아이를 낳은 친구들의 딸을 만나거나 또래가 모인 곳에 갈 때면 한눈에 비교가 되었다. 왜 내 아이만 이렇게 다루기 어려울까. 대체 누구를 닮아 이럴까. 공연히 남편을 원망하기도 했다.

그래도 나는 엄마이니 내 탓도 큰 만큼 그 사실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지만 문제는 어린이집 선생님이었다. 한 공간에 여러 아이가 같이 생활하다 보니 선생님 입장에서는 손이 많이 가는 아이와 덜 가는 아이가 뚜렷이 구분되는 까닭이다. 선생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내 아들은 ‘힘든 아이’다. 굳이 자세한 설명을 덧붙이지 않아도 이해가 됐다. 집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 새지 않을 리 없으니. 그래도 선생님이라는 존재는 엄마보다 무섭고 어려울 테니 좀 낫지 않을까 싶었는데 겁이 없어서인지 어린이집에서도 제집처럼 행동하는 모양이었다. 아이를 맡긴 지 반년쯤 지났을 때 어린이집 담임선생님 얼굴이 반쪽이 됐다. 꼭 내 아들 탓만은 아닐 테지만 매일 같이 수첩에 사고 친 이야기, 통제하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적혀 올 때면 나는 늘 죄인이 되어버렸다. 행여나 내 아들만 미움 받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커졌다.

그렇게 늘 노심초사하며 등원을 시켰는데 하루는 하원 길에 선생님께서 상담해 오신다. “아이를 잘 다루는 엄마만의 방법 같은 게 있나요? 요즘 아이가 유독 더 말을 안 듣네요.” 가뜩이나 신경 쓰고 있던 차에 선생님께서 그렇게 직접 표현을 해 주시니 가슴이 뜨끔했다. 머릿속을 굴려 이 방법 저 방법을 알려드렸지만 사실 그 정도는 선생님도 다 알고 계실 터이니 스스로도 답변이 참 군색하다 싶었다. 집에서는 달래도 혼내도 말을 듣지 않을 경우 아이가 스스로 납득 할 때까지 기다려 줄 수 있다지만 여러 아이를 같이 통솔해야 하는 선생님은 기다려주는 데도 한계가 있을 테고, 아동 학대에 예민한 시대다 보니 사랑의 매도 들 수 없을 것이다. 때로는 얼마나 난감할지 상상이 갔다. 그런 선생님의 상황과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엄마 입장에서는 선생님이 계속 힘들다고 표현하니 서운한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아이 맡긴 죄인이라고 엄마의 이러한 마음은 선생님께 표현하기 어렵다. 그저 난도가 높은 아이를 맡긴 엄마가 약자가 될 뿐이다. 아이를 등 하원 시킬 때마다 ‘세상 모든 아이가 말처럼 쉬울 수는 없다고, 힘드시겠지만 사랑으로 지켜 봐 달라’는 말이 턱밑까지 차오르지만 어린이집 문 앞에 서면 말문이 막혀버린다. 선생님의 고된 노동과 적은 보수를 모르는 바도 아니고 우리나라 어린이집의 구조적 한계와 문제 역시 잘 알기에 더욱 입 밖으로 말을 꺼내기가 어렵다. 그저 웃는 얼굴로 아이를 부탁하면서 오늘도 무사히 다녀오기를 속으로 빌 뿐이다.

내 아이를 남의 손에 맡기는 일이 당당한 시대가 왔으면 좋겠다. 엄마가 자신을 위해 아이를 맡기는 일이 죄가 아니라 당연하고 떳떳하다고 인식하는 시대다. 힘든 아이를 맡겨서 미안할 게 아니라 함께 터놓고 소통해서 방법을 찾아 나가면 좋겠다. 하지만 아직은 한없이 높기만 한 어린이집 대문 앞에서 엄마들의 한숨만 깊어질 뿐이다.

이정미 전업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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