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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라인 파크에서 서울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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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라인 파크에서 서울로까지

입력
2017.05.29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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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내려다본 하이라인 파크. 사진(이하) Friends of the High Line 제공
하늘에서 내려다본 하이라인 파크. 사진(이하) Friends of the High Line 제공

내가 하이라인 파크를 찾았던 건 전 구간이 개방된 직후였던 2014년 9월 즈음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말 감동 받았다. 독특한 공원은 ‘자연을 모방했지만 자연의 한 축으로 거듭났다’는 생각이다. 나도 모르게 당시 걸었던 풍경의 한 조각을 떼어내 마음 속 어딘가에 각인시켰다. 색소폰 연주자의 리듬에 맞춰 폭 좁은 산책로를 해맑게 웃으며 걷던 시민들, 태양을 숭배하는 서구인들이라 태닝 베드에 누워 일광욕을 하던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 도심을 관통한 오아시스는 푸름이 넘실댔고, 건물 사이로 흐르는 녹색 오솔길처럼 느껴졌다.

시민들을 위한 공간으로 태어난 하이라인 파크.
시민들을 위한 공간으로 태어난 하이라인 파크.

공연을 위한 무대가 한 켠에 마련됐고 곳곳에 설치 미술품이 놓여 있었다. 중심 축에서 벗어나 가지처럼 뻗어나가려다 끊어진 부분은 도심을 내려다보는 전망대로 기능한다. 도심 한복판에 이런 공원이 있다는 건 실로 축복 같았다. 조경과 건축을 맡은 회사는 제임스 코너 필드 오퍼레이션과 딜러 스코피디오 & 렌프로. 어린 시절 하이라인 근처에 살았던 건축가의 추억이 배어든 설계라는 깨알 같은 홍보 문구가 곁들여졌음은 물론이다.

곳곳에 선베드를 비롯한 휴식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곳곳에 선베드를 비롯한 휴식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이제는 명실상부 맨해튼 서쪽의 명물로 거듭난 하이라인 파크는 애초 노후되어 삼십여년 간 방치됐던 화물열차를 위한 철로였다. 반만 년 역사를 품은 우리와는 달리 실용성을 우선하는 미국인들은 자신들의 짧은 역사 속에서 '유물'을 만들어내는 실력이 탁월하다. 그렇게 노후된 철로는 짙푸른 생명을 입어 새롭게 태어났다. 뉴욕시 당국자와 디자이너, 건축가는 물론 인근 건물주와 세입자, 시민의 만족을 끌어냈던 성공적인 도심 개발 프로젝트였다.

건물 사이로 공중 산책로가 생긴 셈이다. 오래 전 철길은 그렇게 의미를 찾았다.
건물 사이로 공중 산책로가 생긴 셈이다. 오래 전 철길은 그렇게 의미를 찾았다.

단계적으로 개장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한층 풍성해지는 도심 재개발의 성공 사례다. 30번가 부근에는 소리 나는 벤치에 앉아 피크닉을 즐기기 좋고, 11번 애비뉴 다리에서는 허드슨 강의 근사한 풍광이 펼쳐진다. 철재 교량은 옛 모습 그대로 있으며 1980년 철길이 폐쇄되면서 제멋대로 자라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인터림 통로(Interim Walkway)는 정말 인상 깊었다.

서울로는 서울역 철길을 관통하는 자동차 전용 고가를 모태로 만들었다. 사진 서울시청 제공
서울로는 서울역 철길을 관통하는 자동차 전용 고가를 모태로 만들었다. 사진 서울시청 제공

때는 2017년 5월. 맨해튼 남서부 미트패킹 지역 갠스부르트 가에서 시작해 북서부 34번 가를 잇는 공원은 머나먼 서울의 풍경에도 영향을 끼친다. 분명 하이라인 파크를 참조(?)했다고 고백하는 서울시 관계자의 멘트를 꺼낼 필요도 없이 흡사한 구석이 많다. 서울로는 과거 서울의 중심으로 기능한 서울역을 관통하는 고가도로였다. 당연히 자동차 전용도로였으며 근대화의 깃발을 드높인 개발 논리의 상징과도 같다.

중구 만리동을 향한 서울로의 끝은 촬영 포인트로 기능한다. 사진(이하) 김훈기 기자
중구 만리동을 향한 서울로의 끝은 촬영 포인트로 기능한다. 사진(이하) 김훈기 기자

시계를 거꾸로 돌려 공모전을 실시했던 2년전 장면을 되새겨보자. 서울시는 모두 7명의 건축가를 초청해 심사를 진행했고 MVRDV팀이 1위, 건축가 조성룡 팀이 2위, 조민석 팀이 3위에 올랐다. 개인적으로는 2등에 랭크된 조성룡 건축가의 설계안이 가장 의미가 깊었다고 평가하지만 결과적으로 공중정원을 기획한 위니 마스의 설계안으로 진행됐다. 이해당사자에 가까운 남대문 상인들과 건축 분야의 전문가들을 비롯한 온갖 설왕설래의 홍수 속에서 지난했던 과정이 끝났다. 공사가 한창 진행될 때 한국일보 사옥 20층 옥상에서 내려다봤고, 극심한 출퇴근 정체 속에서도 불평을 미뤘다. 개장 직후부터 예상대로 다양한 의견이 흘러나오는 걸 보고 읽는 중이다.

동그란 콘크리트 화분에 식재된 수목. 뒤편으로 보이는 동그란 테는 그늘막 프레임이다.
동그란 콘크리트 화분에 식재된 수목. 뒤편으로 보이는 동그란 테는 그늘막 프레임이다.

백문이 불여일행 아니던가? 걸어봤다. 회현역에서 서울역 방면으로 걸어오면 하늘로의 시작점이 있었다. 하늘로에 오른 직후 좌우로 빌딩과의 연결로를 목격했다. 하나는 음식점이 즐비한 아케이드, 다른 하나는 호텔과 이어진다. 주체들과의 직접적인 목적과 이득을 떠나 협상을 통해 새롭게 만든 변화일 것이다. 목적지인 만리동을 향해 슬슬 걸어가니 인파가 불어나기 시작한다. 서울에 살고 있는 수목을 가나다 순으로 식재했다는 원칙을 떠올리며 푯말에 적힌 얘기를 꼼꼼하게 읽었다.

서울로에 식재된 나무에 부여된 의미.
서울로에 식재된 나무에 부여된 의미.

김재현 시민은 "아내와 함께 오래도록 좋은 추억을 기억할 수 있는 숲을 만들고 싶다"는 바람을 적었다. 분명 기증을 통해 숲을 조성하는데 일조했다는 뿌듯함으로 읽히는 문구이며 도심 속 인공정원을 만든다는 개념은 일정 부분 충족된 듯하다. 분명 관광객이었을 다수의 외국인을 비롯해 사진 찍느라 여념이 없는 연인과 15미터 아래 바닥이 보이는 동그란 투명 유리 위에 아이를 올려두고 즐거워하는 부모, 커다란 카메라를 들고 온갖 풍경을 찍는 사진작가풍의 사내들이 서울로의 주인공이었다. 콘크리트 화분과 수영장, 철망과 방방은 동그라미를 디자인 테마를 삼은 듯한 공통점을 품고 있었다.

서울로 슈즈트리는 예술품에 대한 수많은 논쟁을 불러왔다.
서울로 슈즈트리는 예술품에 대한 수많은 논쟁을 불러왔다.

논란의 중심에 선 슈즈트리에 이르면 서울역이 내려다보인다. "깊은 의미를 지닌 예술작품이냐 눈살 찌푸리게 만드는 설치품이냐"의 해석은 받아들이는 개인의 몫이다. 공론의 장이 깊어질수록 작가가 의도했던 담론의 논의는 거세질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기사를 쓰는 현재(5월 29일 18시 30분) 작품을 철거하고 있었다. 애초 예정했던 9일을 벌써 채웠으니 시간은 참 쏜살 같다. 얘기만 들었던 이들은 아쉽겠지만, 서울로를 찾아 작품을 직접 봤던 사람들은 호불호를 떠나 설치 예술품의 논란을 직접 체험했을 거다. 서울역 광장에서 올려다본 작품과 서울로에서 내려다본 작품의 간극은 보기보다 상당했다. 밤이 되면 한층 색다른 느낌을 자아내기도 했고, 실제 재활용의 활용이라는 개념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고만 말해두고 싶다.

서울로를 걷는 연인들의 모습에서 당위성을 찾는다.
서울로를 걷는 연인들의 모습에서 당위성을 찾는다.

지극히 현실적으로 마무리를 짓는다. 개인적으로 서울로의 존재적 의의는 보행권에 두고 싶다. 자동차 전용이었던 고가도로를 철거했다면 우리에게 어떤 것이 남았을까? 좋게 생각해봐야 빨라진 자동차의 흐름 정도 아닐까? 모티프가 됐던 뉴욕 하이라인은 기둥이 두 개라 진짜 흙을 두텁게 덮어도 구조적으로 별 문제가 없고, 철로 자체가 예전부터 건물 사이를 지났던 터라 자연스레 수많은 진입로를 만들 수 있었다. 보행로를 꿈꾸기에 완벽한 조건을 갖춘 하이라인 파크에 비해 서울로는? 태생적으로 빠른 차속을 위해 건설한 자동차 전용 고가도로 아니었던가? 자동차를 내쫓고 사람들이 공간을 되찾은 상징적인 공간에 더도 덜도 아닌 듯하다. 콘크리트 화분에 수목이 우거진 가까운 미래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최민관 기자 edito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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