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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정치보복’이란 말조차 민망하다

입력
2018.03.15 15:23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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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MB) 전 대통령이 검찰에 소환되자 언론은 “11년 만의 소환”이라고 했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당시 박근혜 후보 측에서 도곡동 땅과 다스(DAS)의 실소유주가 MB라고 폭로한 지 11년 만에 피의자로 소환돼 오랜 의혹을 제대로 밝히게 됐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MB와 측근들은 소환 순간까지도 이번 수사가 ‘정치보복’이라고 반발했다. 이번 수사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극단적 상황까지 몰고 간 MB 정부 때의 뇌물수사에 대한 보복이라는 시각이다.

▦ MB는 검찰 출두 때 수사가 “민생경제가 어렵고 안보 환경이 매우 엄중한 때 국민께 심려를 끼치고 있다”는 식의 입장도 발표했다. 지난 1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정치보복”이라며 격앙했던 것보다는 조심스러웠지만, 자신에 대한 수사를 공연한 정치보복으로 여기는 태도는 여전했다. 물론 보복까지는 아니라도, 이번 수사에 ‘정치적 성격’이 없지 않다는 점은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는 바다. 한 지도층 인사는 “적폐청산 창끝에 MB가 꿰인 형국”이라며 “조선시대 사화를 보는 것 같다”고 혀를 찼다.

▦ 하지만 일부 유사점이 있다고 해서 MB 수사나 적폐청산을 왕조 시대의 정치보복인 사화(士禍)와 동일시하는 건 부당하다. 사화는 ‘사림(士林)의 화’를 줄인 말이다. 곧 지조와 소신을 따른 선비들이 정파 싸움에 무고하게 화를 입었다는 안쓰러움이 말 속에 담겨 있다. 그러니 박근혜 전 대통령을 비롯해 국정농단에 연루된 김기춘 안종범 우병우 조윤선 같은 범죄자들을 어떻게 대쪽 선비의 표상이었던 조광조 같은 인물에 견줄 수 있겠는가. 나아가 MB는 그들보다 죄질이 더 나쁘다는 얘기가 많다.

▦ 다스 소송비 70억원을 삼성이 대납했다는 혐의부터 그렇다. 사실이면 다스가 자신의 소유든, 그 형의 소유든 MB는 국민을 배반한 셈이다. 민주화 이후 집권한 어떤 대통령도 사익을 위해 이토록 낯뜨겁게 기업으로부터 ‘삥’을 뜯은 사례는 없다. 대학 후배인 이팔성 전 우리금융 회장으로부터 받은 22억여원은 정치자금이라도 문제가 큰데, 그 중 수억여 원을 김윤옥씨가 받았다니 천박한 매관매직 뇌물이 따로 없다. MB는 정치보복을 주장하면 파렴치가 희석되리라고 기대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드러나는 범죄의 면면은 정치보복이란 말조차 민망할 정도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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