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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의 기쁨] 재벌ㆍ정치인 물의 빚은 후 ‘기부 카드’ 꺼내… 되레 기부 먹칠

입력
2017.12.09 04:40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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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수사 앞두고 유력인사들

여론 무마ㆍ재판 선처 위해 활용

MB는 다스 논란 등 잠재우려

17대 대선 前 “재산 헌납” 약속

청계재단 설립, 재산회피처 뒷말

한국은 선진국에 비해 갑부들의 고액 기부가 적은 편이다. 더욱이 대기업 총수와 유력 정치인 등 사회 저명 인사들의 ‘눈 가리고 아웅’식 기부행태는 기부에 대한 인식을 오히려 흐리는데 일조하기도 했다. 워런 버핏, 빌 게이츠 등 해외 갑부와 저명 인사들이 기부의 모범을 보여 기부 확산의 씨앗이 되는 것과 크게 비교되는 일이다.

대기업 오너나 정치인 등이 검찰 수사나 사회적 물의를 빚은 뒤 여론 무마와 재판 선처를 위해 기부 카드를 꺼내든, 모범적이지 않은 기부 사례가 종종 있었다. 2006년 2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삼성의 대선자금 불법지원 공모를 국가안전기획부가 불법도청 했던 ‘안기부 X파일 사건’과 삼성 에버랜드 편법ㆍ불법 상속 의혹이 잇따라 터지자 대국민 사과와 함께 8,000억원을 사회 기금으로 내놓겠다고 발표했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도 같은 해 4월 계열사 현대글로비스를 통해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자 1조원 상당의 글로비스 주식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밝혔다. 이듬해인 2007년 5월 항소심 공판에서는 “7년 동안 1,200억원씩 1조원을 기부하겠다”고 실행계획을 밝히며 600억원을 입금한 통장 사본까지 공개했다. 1심에서 징역 3년 실형을 선고 받은 뒤였다. 이재현 CJ회장도 2013년 조세포탈ㆍ횡령ㆍ배임 혐의로 실형을 선고 받은 상태에서 대법원의 파기환송 결정으로 서울고법이 선고를 앞둔 2015년 11월 청년희망펀드에 사재 20억원 기부 계획을 내놓았다.

졸속 기부 약속만 하고 제대로 지키지 않은 경우도 많다. 이건희 회장은 2008년 4월 삼성 특검 과정에서 4조5,000억원의 차명 재산이 드러나자 회장직에서 물러나며 “실명 전환한 뒤 삼성생명 주식을 뺀 나머지 중 세금과 벌금을 낸 나머지(1조4,000억원으로 추정)는 유익한 일에 쓰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이 약속은 10년이 되도록 지켜지지 않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해 ‘최순실 게이트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청문회’에 나와 “약속을 지키려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던 중에 갑작스러운 와병으로 타이밍을 놓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어머니, 형제들과 상의해 봐야겠지만 결정할 시기가 오면 그 돈을 정말 좋은 일에 다 쓰겠다”고 재차 약속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서울 강남구 사무실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서울 강남구 사무실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이명박 전 대통령은 17대 대선을 코 앞에 둔 2007년 12월 7일 선거방송 연설에서 “대통령 당락에 관계 없이 우리 내외가 살 집 한 채만 남기고 가진 재산 전부를 내놓겠다”고 밝혔다. 대선 기간 동안 BBK 의혹, 다스ㆍ도곡동 땅 실소유주 논란이 계속되자 이를 잠재우기 위해 파격적으로 내놓은 ‘전 재산 헌납’ 약속이었다.

하지만 이를 실행하기 위해 2년 후 설립된 청계재단은 두고두고 ‘편법 기부’ 논란을 일으켰다. 청계재단이 지원한 장학금이 첫 해인 2010년 6억1,915만원에서 2012년 4억6,060만원, 2016년 2억6,000만원으로 갈수록 줄어든 반면, 재단이 이 전 대통령의 재산과 함께 떠안은 빚 때문에 7년 동안 약 14억원의 이자를 부담했기 때문이다. 이 전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한나라당에 특별당비 30억원을 내며 발생한 이 빚을, 재단은 우리은행에서 50억원을 대출 받아 갚으려 했다. 청계재단이 사회 환원 창구가 아니라 MB의 재산회피처라는 뒷말이 나온 이유다. 또한 기부자와 밀접한 관계인들이 재단 운영을 도맡는 것은 오히려 상속세 탈루 수단으로 악용되는 셈이라는 논란도 계속되고 있다.

박두준 한국가이드스타 사무총장은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큰 인사들의 이런 행태는 국민들에게 ‘일이 터지면 기부하는구나’ 식으로 기부의 이미지에 타격을 줄 수 있다”며 “구체적 실행 계획과 함께 평상시 기부를 하는 모습을 보여야 긍정적 이미지를 키울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ankookilbo.com

오희수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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