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고은경 기자

등록 : 2016.05.31 14:23

[고은경의 반려배려] 백화점 옥상에 살던 꽃사슴 라라

등록 : 2016.05.31 14:23

지난 해 10월 백화점 옥상 동물원에 살던 라라는 머리를 돌리고 자신의 용변을 먹으며 살다 구조됐다. 카라 제공

지난해 10월 부산 중앙동 롯데백화점 광복점 옥상 동물원에 살던 꽃사슴 ‘라라’의 정형행동(定型行動ㆍ우리에 갇힌 동물에서 나타나는 무의미한 반복행동)을 담은 동영상이 온라인에 확산하면서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낸 일이 있다.

홍콩인 관광객 루이 차우가 우연히 미니 동물원을 방문했다가 라라를 본 후 충격을 받고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사슴이 미쳐가고 있다’는 제목의 동영상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것이었다.

부산시는 당시 이곳을 ‘도심 속에 숨어 있는 힐링 장소’라고 소개했다. 하지만 그곳에 살던 라라에게는 힐링은커녕 고통의 장소였을 뿐이다. 2분짜리 동영상 속 라라는 밤낮으로 머리를 뱅뱅 돌리고, 자신의 용변을 먹으면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었다. 영상은 250만이 넘는 조회 수를 기록하며 퍼졌고, 라라를 구해달라는 요청이 거세지자 백화점은 라라를 원래 키우던 사육사 주인에게 돌려보냈다.

라라는 동화 속 사슴처럼 해피엔딩을 맞이 했을까. 현실 속 라라의 집 찾기 여정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라라를 돌려 받은 사육사는 5년 전 어미를 잃은 어린 사슴을 우유를 먹여가며 자식처럼 돌보았고, 라라 역시 사육사와 산책을 즐길 정도로 사육사를 따랐다. 하지만 사육사는 여건상 라라를 더 이상 돌볼 수 없었고, 이를 안타깝게 여긴 동물보호단체 카라는 라라를 위한 평생 집 찾기에 들어갔다.

백화점 옥상에서 살면서 정형행동을 보이던 라라는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6개월 만에 안식처를 찾았다. 카라 제공

태어나서 다른 사슴 무리와 어울려 본 적이 없었고, 사람을 따르는 라라에게 행복한 보금자리는 어디일까. 다행히 라라는 아직 어려 사육사의 도움과 적응기간을 거치면 사슴 무리에 합류할 가능성이 있었다. 따라서 사슴들과 어울릴 수 있을 동물원을 알아봤지만, 라라를 받아줄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라라가 꽃사슴이 아닌 판다나 몸값 비싼 다른 동물이었으면 사정이 달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식용으로 팔려나가는 사슴 한 마리가 무리에 합류될 때까지 정성껏 돌봐줄 시설이 나서지 않은 것이다.

카라는 다른 사슴과 살아갈 수 없다면 라라가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지 않으면서 동시에 사람과 유대관계를 이어갈 수 있는 곳을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반년이 지난 4월이 되어서야 라라는 강원 양구의 한 가족의 품에 안길 수 있었다.

라라는 그나마 운이 좋은 편일지도 모른다. 라라의 모습을 보고 즐거워하지 않고 안타깝게 여긴 관광객이 있었고, 혼자 안타까워하는 데 그치지 않고 라라의 고통을 사람들에게 알렸으며 이를 도와주고 싶어 하는 마음들이 모였다. 동물보호단체는 6개월에 걸쳐 전국 곳곳을 다니며 라라가 살아갈 공간을 찾아 주었다.

백화점 옥상 동물원에 살다 구조된 라라는 강원 양구에 새 안식처를 찾았다. 카라 제공

멸종위기 동물도 아닌 사슴 한 마리 살 곳을 마련하느라 이렇게 많은 인력과 시간이 동원되어야 하는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멸종위기종이라고 해서 지켜야 할 생명이고, 사슴은 흔하므로 함부로 취급해도 되는 생명은 아닐 것이다.

건물 안이나 옥상에 설치된 미니 동물원은 시설이 동물에 대해 적절한 배려 없이 사람들의 눈요기를 위해 마련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수많은 제2의 라라들이 이런 좁은 공간에 갇혀 고통받으며 제대로 된 관리를 받지 못하고 있다.

사람들은 잠깐의 즐거움을 위해 동물들을 쉽게 동물원이라는 곳에 가두지만, 그곳의 동물들을 다시 정상적 삶이 가능한 곳으로 돌려보내는 데는 배 이상의 노력이 따른다는 것을 라라의 사례가 말해주고 있다.

고은경기자 scoopkoh@hankookilbo.com

▶홍콩 관광객 루이스 초이가 촬영해 유포한 백화점에 살던 라라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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