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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피디아] 종이 밖으로 나온 문학

입력
2017.06.15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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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예능프로그램 '알쓸신잡 통영편'에 출연한 소설가 김영하(오른쪽)가 박경리 작가의 소설 '김약국의 딸들'을 출연진들에게 소개하고 있다. '김약국의 딸들'은 방영 후 평소 대비 219배 더 팔렸다. tvN 화면캡처
tvN 예능프로그램 '알쓸신잡 통영편'에 출연한 소설가 김영하(오른쪽)가 박경리 작가의 소설 '김약국의 딸들'을 출연진들에게 소개하고 있다. '김약국의 딸들'은 방영 후 평소 대비 219배 더 팔렸다. tvN 화면캡처

# 소설가 김영하 TV, 팟캐스트서 소설 소개 활발

서점 운영하고 시인이 시낭송회… 시 웹툰 개척도

‘책 안읽는 시대’ 시장부진 탓 출판 외 활동 이어져

소설가 김영하는 지난해 가을 난생 처음으로 희곡을 썼다. 샤머니즘이 난무하는 궁중잔혹사를 뼈대로 한 작품은 극단 돌곶이(연출 변정주)가 무대화 할 예정이다. 김 작가는 “애초에 연극 만들 생각으로 희곡을 썼고, 책으로 낼 계획은 없다”며 “예전에는 작가가 집에서 글 쓰는 사람이었다면 이제는 독자에게 ‘문학적 경험을 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작가니까 기본적으로 소설을 쓰지만 동시에 팟캐스트에서 책을 들려주고, 강연이나 낭독회에 가서 문학에 대해 말해요. 살면서 비인간적인 일을 당할 때, 이런 문학적 경험이 ‘내가 인간이고 타인과 공감할 수 있는 존재’라고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죠. 희곡 쓰기도 그 일환입니다.”

이달 초부터 tvN 예능프로그램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알쓸신잡’)에 고정 출연하는 김 작가는 방송 내내 한국 작가들의 소설을 읽고 들려주며 시청자들에게 ‘문학적 경험’을 선사하고 있다. 1회에 소개한 박경리 작가의 소설 ‘토지’와 ‘김약국의 딸들’, 2회에 소개한 김승옥 작가의 소설 ‘무진기행’은 온라인서점 예스24 집계 기준 각각 평소보다 6배, 219배, 5배 더 팔려나갔다.

전통적 문학 형식, 종이를 벗어나 ‘문학하는’ 작가들이 늘고 있다. 김영하 작가처럼 팟캐스트 등을 통해 문학작품을 소개하는가 하면 시를 웹툰으로 그리거나, 손수 문학 전문 서점을 운영하며 독자와 접점을 넓히며 문학 활동의 범위를 확장시키는 행위가 많아지고 있다.

박상순(왼쪽) 시인이 서울 신촌의 시 전문 서점 위트앤시니컬의 목요 낭송회에서 자작시를 읽고 있다. 2만원 유료의 낭송회는 매주 매진일 정도로 인기가 좋다. 위트앤시니컬 제공
박상순(왼쪽) 시인이 서울 신촌의 시 전문 서점 위트앤시니컬의 목요 낭송회에서 자작시를 읽고 있다. 2만원 유료의 낭송회는 매주 매진일 정도로 인기가 좋다. 위트앤시니컬 제공

문학을 읽고 그리는 작가들

변화에 가장 적극적인 곳은 시단(詩壇)이다. 최규승 시인은 최근 문예지 ‘쓺’ 4호에 기고한 ‘시인 ‘님’과 팬‘분’의 탄생’에서 젊은 시인들을 “시보다 앞에 나서 활동하는 시인들”로 규정하며 “이전과 다른 시로 일군을 이루었다기 보다 시인들 스스로 이전의 시인과 다른 새로움으로 움직이는 것이 이즈음 시인들”이라고 소개했다. 시인이 직접 자작시를 읽어주는 낭독회,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시인이 시를 추천하는 일이 유행처럼 번지면서 시인 팬덤 형상으로 시집이 팔리는 “시의 팬시화 현상”을 빗대 표현한 것이다.

‘시인 팬덤 현상’을 주도하는 낭독회는 도서정가제 시행 후 동네에 문학 전문 서점을 운영하는 문인이 생기며 활성화됐다. 지난해 6월 유희경 시인이 신촌에 연 시 전문 서점 위트앤시니컬은 시집 한 권과 음료 한 잔을 주는 유료 낭송회 티켓을 2만원에 선보였는데 45인석이 거의 매주 매진을 기록한다. 여세를 몰아 지난 봄 합정동에 2호점까지 낸 유 시인은 “낭독회의 주 대상은 기존 시 독자보다, 시가 여전히 어렵다고 느끼는 독자”라며 “낭독은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시에 대해 가지고 있는 환상, 낭만성과 부합되는 형식”이라고 말했다. “아무리 살벌한 내용을 담고 있어도 시인의 목소리로 울리면 퍽 아름답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2007년 등단한 신미나 시인은 ‘시 웹툰’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 “종이책이라는 틀이 답답해” 2015년 11월 네이버 ‘도전만화’에 소소한 일상을 그리고 그에 어울리는 시를 소개한 시 웹툰은 한 회에 100개 이상의 댓글이 달리며 큰 화제를 모았고, 한달 만에 출판사 창비에 ‘스카웃’돼 창비 네이버 블로그에 연재됐다. 신 시인은 “시 쓸 때 종이책이라는 틀이 답답했다. 시를 다른 방식으로 읽어보면 어떨까 고민하다 독자가 시 읽을 때 ‘내 얘기’라고 경험하는 부분을 그림으로 그리기로 했다”고 말했다. 누적 조회수 10만건을 기록한 시 웹툰은 지난주 책으로 묶여 출간 2주 만에 3쇄를 찍었다. 신 시인은 “웹툰에 그릴 유머를 고민하다 일상이 더 유쾌해졌다. 시 쓰는 경향도 바뀌는 것 같다”고 말했다.

문학출판사들도 시류 변화를 적극 반영하는 추세다. 독자의 사연을 받아 ‘맞춤 시’를 써주는 민음사의 ‘주문제작 시 프로젝트’는 2015년 6월 시작해 시인 34명이 참여했다. 신청자 수는 200여명에 이른다. 창비가 올해 초 새로 선보인 문예지 ‘문학3’은 온오프라인으로 동시에 발간하고 문학을 주제로 한 ‘플래시몹’(서평회, 독자 참여 기획회의)도 간헐적으로 개최한다. 최규승 시인은 “이전에는 평론가들이 등단을 기준으로 시 경향을 분석해 시인들을 구분했다면, 이제는 시인이 자기 작품을 어떻게 독자와 만나게 하는지에 따라 구분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 시인은 “예전 신문이나 잡지에 시를 발표하는 수동적인 형식으로 독자에게 다가갔지만, 최근 젊은 문인들은 출판기념회처럼 낭독회를 열고 독자들 앞에 나서 걸 꺼리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신미나 시인이 동료들의 시를 소개하며 그린 시 웹툰의 한 장면. 창비 블로그 연재 후 책으로 출간돼 2주 만에 3쇄를 찍었다. 창비 제공
신미나 시인이 동료들의 시를 소개하며 그린 시 웹툰의 한 장면. 창비 블로그 연재 후 책으로 출간돼 2주 만에 3쇄를 찍었다. 창비 제공

문학 시장 부진이 팬덤 문화 만들어

변화의 배경에는 문학 시장 위축이 있다. 국내 최대서점 교보문고가 2006년부터 2015년까지 판매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해 분석한 ‘소설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까?’에 따르면 2010년 이후 소설 판매 신장률은 줄어들고 있고, 2015년의 경우 판매 신장률이 전년 보다 20.8%나 떨어졌다. 한국 소설은 더 심각해 2015년 판매 신장률이 25.5% 감소했다.

문학 독자가 ‘늙어간다’는 점도 특징이다. 2006년 소설 독자 중 20대 비중은 45.0%, 30대는 23.8%, 40대는 16.0%, 50대는 3.4%, 60대 이상은 0.9%였다. 하지만 이 비율은 2016년 29.9%, 27.0%, 26.4%, 9.6%, 2.7%로 바뀌었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구매 감소로 곧바로 이어질 청년층의 독서 이탈을 해소하지 않는 한, 문학의 앞날이 밝아질 일은 없을 것”이라며 “초연결시대, 하이 컨텍스트 시대에 독자는 작가와 깊은 감성적 교감을 바라고 작가가 적극적으로 소통할 때 팬덤이 형성되며 작품집 구매로 이어지는 현상이 두드러진다”고 진단했다.

등단 45년만인 올해 초 처음으로 종이를 벗어나 웹에 장편소설을 연재한 이외수 작가가 “책을 너무 안 읽는 시대가 왔다. ‘서점만이 시장인가’ 생각하게 됐고 다른 방식으로도 얼마든지 독자층을 확보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웹에 먼저 연재했다”고 밝혔다. 노 작가도 도서 인구가 줄고 있는 현실에서 타개책을 모색하고 있다는 것이다.

‘종이를 나온’ 작가들의 작품 경향이 달라지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최규승 시인은 “낭독회나 SNS 인용이 늘면서 시가 서정성을 띠는지, 서정시를 쓰기 때문에 이런 문화가 활성화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최근 (젊은 시인들의) 시가 이전 세대보다 서정적인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장은수 대표는 “작가가 작품으로 자기를 처음으로 브랜드화하기 때문에 이런 변화가 작품 경향 자체를 바꾸진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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