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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낙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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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낙엽은...

입력
2003.10.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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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두에 밟히는 낙엽 소리에 가슴이 아파오고 창문 밖 떨어지는 노란 은행잎을 보면 일손을 놓게된다. 그러나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 일년에 한번, 낙엽이 떨어질 때쯤이면 누구나 첫사랑의 손을 살며시 잡던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갈 권리를 부여 받기 때문이다. 낙엽은 계절의 정표이자 내년 봄 찬란하게 다시 만나자는 약속이라지만 아무리 굳은 맹세가 있다 해도 헤어짐은 언제나 슬픈 법. 낙엽의 정서에 하릴없이 젖는 것은 살아있는 자의 특권이라고 위로해보자. 소설가 이윤기, 가수 강인봉, 디자이너 박윤수, 영화감독 용이 등 가을의 정서에 관해 할말이 많을 것 같은 네 사람이 낙엽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도대체 우리에게 낙엽은 무엇일까./김신영기자 ddalgi@hk.co.kr 사진 박서강기자 pindropper@hk.co.kr

■낙엽은 작은 예언서

이윤기 (소설가·번역가)

작년에 뵐 때보다 좀 더 여위신 것 같네요. 이런 소리를 자주 듣는다. 그러면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추수(秋水)라는 게 있는데 아세요? 늦가을이 되면 산은 그 몸속에 품고 있던 물을 밖으로 내보내는데 이걸 '추수'라고 한대요. 초가을이 되었으니 내 몸이 추수 내보낼 준비를 하나 봐요.

오동잎이 떨어진다. 천하의 가을이 오는 모양이다. 낙엽은 추수의 다른 이름이다. 나무의 가지는 대체로 그 나무의 우듬지 모양을 그대로 그리는 것 같다. 가지의 모양은 대체로 그 나무의 잎에서 재현되는 것 같다. 임자 잃고 구르는 낙엽의 엽맥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일은 그 나무의 우듬지를 바라보는 일이다. 이렇듯이 부분으로써 전체의 모습을 어림짐작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프랙탈(fractal) 이론'은 주장한다. 따로 배우지 않았어도 우리 모두 어렴풋이 알고 있던 이론이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신화 시대 최고의 예언자는 시뷜레다. 시뷜레는 사람들의 팔자를 하나하나의 나뭇잎에다 기록한다. 시뷜레에게, 나뭇잎은 작은 예언서다. 예언을 듣기 위해 시뷜레의 거처로 들어가는 사람은, 열린 문으로 바람이 들이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바람이 들이치면 나뭇잎이 흩날리고 만다.

시뷜레는 흩날린 나뭇잎을 다시 채곡채곡 거두어 들이지 않는다. 우리의 운명이 적힌 시뷜레의 작은 예언서는 들이친 바람에 날아가 버렸을 수도 있다. 하지만 눈밝은 사람에게는 꼭 자신의 예언서가 필요하지 않다. 아무 잎에서나 인간의 운명을 읽을 테니까. 나는, 떨어진 한 장의 낙엽에서 추수를 읽는다. 진리 앞에서 나는 늘 슬프다. 가을 다음은 겨울이다. 진리다. 그렇다면 낙엽은 슬픈 예언서가 아닌가? 하지만 그렇기만 한가? 겨울 다음은 봄이다.

■낙엽은 책갈피

용이 ("봄날의 곰을…" 감독)

촬영에다 편집, 개봉…. 영화 데뷔작 '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 때문에 시간 가는 줄 몰랐는데 차창에 노란 은행잎이 후두둑 떨어져 앉는 바람에 가을인 것을 알게 됐다. 꽃이 피면 봄이고 눈이 오면 겨울이라지만 낙엽처럼 계절의 오고 감을 적나라하게 상징하는 것도 드물지 않을까.

아직 인생을 논할 수 있는 나이는 아니나 요즘은 삶이 두꺼운 책 같다는 상상을 많이 한다. 책이 여러 장으로 나뉘어 있는 것처럼 인생에도 어떤 의미에서 단락은 물론 처음과 끝이 있으며 한 장 한 장 넘기는 재미 또한 꽤 괜찮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책을 읽다 보면 다시 들춰보고 싶은 어구가 있다. 책갈피는 어디까지 읽었는지 표시해두는 것이 주 역할이다. 하지만 나는 책을 보다가 후에 다시 찾아보고 싶은 멋진 어구가 있는 페이지에 책갈피를 꽂아두곤 한다. 그러지 않고서 막연히 '그 때 그 어구'를 찾는 일이 얼마나 불가능한지 시도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낙엽은 흔적 없이 지나가는 세월 사이에 표시를 해두라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누구나 낙엽을 보면 자신의 일년을, 하루를, 지난 세월을 돌이켜보거나 기억하게 된다. 낙엽을 보면 낡은 향기가 나는 삶의 구석구석 꽂아놓은 책갈피를 다시 찾아 그 때 그 감성을 느껴야 할 것 같은 생각이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기억이 적혀있는 부분, 철이 없어서 힘들어 하던 스물한살 시절의 단락….

한바탕 기억의 사이사이를 들춰보고 나면 낙엽은 '자! 올해는 어디에 갈피를 꽂아야 할지 결정 하라구'라며 흔적 없이 지나가는 세월을 그냥 두지 말라고 경고한다.

■낙엽은 추억

박윤수 (패션 디자이너)

낙엽을 생각할 때면 천천히 잎이 떨어지는 가을 정원이 먼저 떠오른다. 바닥에 낙엽이 켜켜이 쌓인 정원은 여름의 그것과는 또 다른 운치가 있다. 황폐해진 감성의 구석구석을 건드려주니 디자이너로서는 고마울 따름이다.

지난 금요일 용평에서 골프를 치다가 넋을 잃었다. 조금씩 쌓이기 시작한 낙엽이나 한창 화려한 단풍이 도시의 색상과는 너무도 다른 모양새를 뽐내고 있었다. 감탄만 할 것이 아니다 싶어 잠시 짬을 내 단풍 낙엽 다섯장을 주어 들었다. 부서질 새라 조심하면서 낙엽을 챙기자니 어린 시절 연애편지를 쓰던 기억이 되살아 나서 혼자 웃고 말았다.

고등학교 때 좋아하던 여자 친구가 있었다. 아쉽게도 집안 사정 때문인지 하와이로 이민을 가고 말았는데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시절인지라 밤낮없이 너무도 보고싶어 참을 수가 없었다. 지금처럼 이메일이 있거나 국제전화가 쉬웠던 시절도 아니었으니 마음을 전달할 유일한 방법은 편지 뿐.

소심하고 세심한 성격이었던 나는 거리에 떨어진 낙엽 중 예쁜 것을 골라 가져와서 편지지를 꾸미곤 했다. 통짜로 봉투에 넣기도 하고 작은 조각으로 잘라 코스모스 말린 것과 함께 모자이크도 하면서 편지지를 꾸밀 때면 낙엽이 어떤 말이나 글보다도 내 마음을 잘 전해줄 것만 같았다. 하와이에는 1년 내내 여름일 테니 한국의 낙엽이 그리울 거란 생각을 하면 가슴이 참 설레었었는데…. 이런 얘기를 집사람에게 하면 "당신도 그런 시절이 있었냐"며 웃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편지를 써본지도 참 오래다. 용평에서 집까지 조심조심 가져온 낙엽을 책상 위에 꽂아두고 감상하고 있자니 열심히 낙엽에 풀칠을 하던 30여년 전 내 모습을 추억하게 된다.

■낙엽은 무(無)가치

강인봉 ("자전거 탄 풍경" 멤버)

"낙엽은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 포화에 이즈러진 도룬시의 가을 하늘을 생각케 한다. 길은 한 줄기 구겨진 넥타이처럼..."

특별히 시를 사랑하지 않아도 교과서에 나오기 때문에 배우지 않을 수 없는 김광균님의 시 '추일서정' 중 한 구절이다. 가을날의 쓸쓸함과 감상을 여과 없이 느끼게 해 준다. 시에 대해 참고서나 학습지에 객관식 시험용 해설을 해놓았던 것이 기억 난다.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가치 없음을 의미함'이라나? 과연 시인은 낙엽을 가치 없다고 생각한 것일까?

다기능, 고부가가치가 미덕인 바쁜 시대에 낙엽을 보며 단상에 잠긴다는 것은 일종의 사치일 수도 있다. 머리가 좋아지는 음악, 집중력을 높여주는 방석 등 눈에 보이지 않는 효과를 보장하는 것에서부터 체형 보정 속옷, 디카페인 커피에 이르기까지 편리하고 유익한 기능이 제공되는 판에 '그냥' 하는 행동은 어쩐지 손해를 본다는 느낌을 갖게 하기 때문이다.

날씨가 좋아서, 그냥 거닐고 싶어 걷는다는 설명은 이제 먹히지 않는다. '5분은 빠르게 5분은 깊게 호흡하며 천천히 걷는 게 지방을 연소시키고 비만을 방지하니까' 걷는다는 사람이 많다. 산책에서 사색이란 단어를 떠올리는 것도 쉽지 않아졌다. 행동에는 이유가 있고 대가가 따라야 한다며 모든 일을 생산성이나 기능성의 수치화된 가치체계로만 받아들이는 시대에 낙엽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대부분의 사람은 더 나은 내일을 위해 현재를 희생하고 보다 빨리 목표에 도달하고자 선택을 거듭한다. 그래서 돌아가는 길이 더 빠른 길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다. 칼로리를 걱정하면서 그 요리의 진미를 맛 볼 수 없는 것처럼, 음계나 화성을 분석하면서 노래의 감동을 느낄 수 없는 것처럼 때로는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내게 다가오는 것들을 받아들여 봄 직하다는 생각을 한다. 궁극적으로 우리 삶을 풍요롭게, 가치 있게 해 주는 것들은 어찌 보면 가장 쓸모 없고 비생산적인 우리의 감성일 수 있기 때문이다.

가을, 낙엽의 '가치 없음'은 그래서 소중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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