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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한시적 전기료 인하, 비겁하다

입력
2018.08.0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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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조경태 의원이 지난 1일 국회 정론관에서 전기요금 누진제 폐지 법안 발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유한국당 조경태 의원이 지난 1일 국회 정론관에서 전기요금 누진제 폐지 법안 발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기요금 한시적 인하가 이뤄질 모양이다.

올해만큼은 아니지만 역시 무더웠던 2016년을 기점으로 전기요금에 대해 국민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전기요금에 대한 비판은 둘로 나뉜다.

우선 친원전론자들이다. 현 정부가 전력을 값싸게 생산할 수 있는 원자력발전소나 석탄발전소를 축소하기 때문에 국민들이 높은 전기료를 부담해야 한다고 비판한다. 여기에 더해 전력 부족으로 대규모 단전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고 공포를 조장하는 것도 피하지 않는다. 이 비판은 주장이 간결하고 선명한 만큼 숨기는 것도 많다. 석탄발전이 초래하는 공해는 논외로 하더라도 원전의 전력 생산비용도 절대 저렴하지 않다. 이미 포화상태인 원전 폐기물 처리, 아직 검증된 기술도 개발되지 않은 노후 원자로 폐쇄, 밀양 송전선 사태로 대표되는 발전과 송전 과정에서의 지역사회 갈등 비용 등을 모두 합산해야 하기 때문이다. 당장 저렴한 전기를 펑펑 쓰려고 이 엄청난 처리비용을 후세에게 넘기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나라 원전은 2023년까지 5기가 더 늘어나는 만큼 탈원전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다는 주장은 과장이다. 지금보다 속도를 더 줄이자는 주장은 원전을 영구히 유지하겠다는 말이다.

다른 하나는 주택용 전기료에는 엄격한 누진제를 적용하고 산업용과 일반용에는 느슨하게 적용하는 것에 대한 비판이다. 이런 전기요금제 때문에 우리나라 전력 생산량의 57%를 소비하는 산업체들이 전기를 절약하려는 노력을 소홀히 하지만, 14%만 소비하는 주택은 누진제가 무서워 불볕더위에도 에어컨을 제대로 켤 수 없다고 지적한다. 주택에만 무겁게 적용되는 절전 의무를 기업도 나눠서 져야 한다는 것이다.

활력을 급격히 잃고 있는 경제를 되살리는 동시에 에너지전환 정책도 추진해야 하는 정부는 이 두 진영의 전기요금 공격 모두에 취약하다. 대통령과 부총리까지 나서 기업에 투자확대를 요청하는 형국이라 “주택과 형평성을 맞추기 위해 산업용 전기료에도 엄격한 누진제를 적용하겠다”고 하기 힘들다. 그렇다고 전력생산 단가를 고려할 때 주택용 전기 누진제를 산업용 수준으로 완화하기도 어렵다.

정부의 곤란한 처지는 반대 세력에게는 좋은 공격 소재다. 당장 야당은 주택용 전기료 누진제 폐지법안을 들고 나왔다. 기록적 폭염으로 냉방기 없이는 잠시도 버티기 힘든 상황이 이어지면서 ‘전기료 폭탄’ 걱정이 커지는 와중에 이런 움직임은 소비자들에게 솔깃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궁지에 몰린 정부는 전력 성수기에 한시적으로 전기료를 인하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런 정책은 값싼 전기를 쓰기 위해 원전을 더 많이 가동해야 한다는 주장만큼 얄팍하다.

올여름 기록적 폭염은 지구온난화가 주요 원인이라는 점에서 우리 세대의 전력 과소비 습관과 무관하지 않다. 특히 한국의 1인당 전기 사용량 증가세는 OECD 회원국 중 가장 빠르다. 반면 미국 독일 일본 등 선진국은 2010년 이후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또 한국의 지난해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OECD 4위에 해당한다. 이런 부끄러운 기록을 지우고, 지구 온난화를 저지하기 위해서 전기 사용량을 줄여야 한다. 이를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은 주택용과 산업용 전기의 누진제 형평성을 맞추는 것이다. 그러면 기업의 절전 관련 투자가 늘고,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기술 개발도 더 빨라질 것이다.

탈핵을 선언했던 용기로 전기요금 인상 필요성을 국민들에게 설득해야 한다. 에너지 전환을 추진하며 전기요금도 인하하는 건 비겁한 포퓰리즘이다.

2차대전 때 히틀러의 위협에 맞서기 위해 당당하게 영국 국민에게 피ㆍ땀ㆍ눈물을 요구했던 윈스턴 처칠 같은 용기 있는 지도자 우리나라에는 없는 것일까. 더구나 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한 전기료 누진제 확대에는 땀과 약간의 눈물만 요구하면 된다.

정영오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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