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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알기 쉬운 헌법

입력
2018.02.11 13:0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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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統領(대통령)으로 選擧(선거)될 수 있는 자는…’ 대통령 자격을 규정하고 있는 헌법 67조4항은 이렇게 시작한다. 번역투여서 극도로 부자연스럽다. 국민투표와 관련한 72조는 ‘~ 重要政策(중요정책)을 國民投票(국민투표)에 붙일 수 있다’고 아예 맞춤법이 틀렸다. 투표에는 ‘부칠’이 맞다. 공문서를 국민이 알기 쉽도록 어문규범에 맞추어 한글로 작성해야 한다는 국어기본법의 취지에도 불구하고 헌법은 한자 위주에다 문법 및 표기오류 투성이다.

▦ 1987년 개헌 이후 한번도 손을 보지 못한 탓에 헌법은 30년도 더 된 낡은 옷을 그대로 걸치고 있다. 국립국어원 통계에 따르면 헌법 136개 조항 가운데 110개 조항에서 어법이나 표현의 오류가 발견되고 있다. 정상 조항이 19%인 26개에 불과하다. 문법과 표현ㆍ표기 오류는 모두 234건으로 집계됐으며 가장 흔한 오류는 어려운 한자어나 모호한 표현이다. ‘국회는 선전포고, 국군의 외국에의 파견, 또는 외국군대의 대한민국 영역 안에서의 주류에 대한 동의권을 가진다’는 60조 2항의 ‘주류(駐留)’는 삼국지 같은 고전에나 나올 법한 한자어다.

▦ 어려운 한자어만큼이나 심각한 게 일본식 어투다. ‘~에 있어서’ ‘~에(서)의’ 등의 일본어 번역투가 수두룩하다. 문재인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리는 양정철 전 청와대 비서관이 최근 발간한 ‘세상을 바꾸는 언어’에서 이 문제를 지적했듯이 조사 ‘의’나 ‘~있어서’를 빼고 써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양 전 비서관은 ‘~에 대하여’ ‘~에 다름 아니다’ ‘~에 값한다’ 등도 고쳐 써야 할 일본어 직역투 표현으로 거론했다. 영어 번역 습관에서 나온 과도한 피동의 표현 또한 헌법의 표기 오류로 지목되고 있다.

▦ 6월 지방선거에 맞춘 개헌 논란이 벌어지는 한편으로 차제에 헌법을 알기 쉽게 고쳐 쓰자는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국립국어원에 헌법의 표기오류 실태조사를 의뢰했던 유은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고의 규범은 문법이나 표현의 오류도 없어야 한다”면서 우리말 헌법 개선안을 제안했다. 국회의원 70%이상이 한글전용 헌법에 찬성한다는 시민단체 조사를 감안하면 헌법이 새 옷으로 갈아 입는 게 어렵지는 않아 보인다. 여야는 권력구조 개편 방향이나 민주주의 형태 등을 둘러싼 논란을 하루 속히 매듭짓고 최고 규범의 언어를 정제하고 현실화하는 데 힘을 모으기 바란다.

김정곤 논설위원 jk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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