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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등록 : 2017.01.24 20:00
수정 : 2017.01.25 14:42

[이정모 칼럼] 인류세와 제로 에너지주택

등록 : 2017.01.24 20:00
수정 : 2017.01.25 14:42

지구는 살아있다. 실제로 지구가 생명이라는 뜻은 아니다. 대륙과 해양 그리고 대기의 모습뿐만 아니라 땅과 바다에 살고 있는 생명 역시 시시각각 변하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지구에 살고 있는 생명이 시간에 따라 변하는 모습을 두고 그것이 바로 자연의 신비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 변화의 방식이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멸종이다.

멸종이라는 말은 우리 마음을 무겁고 슬프게 만든다. 하지만 꼭 그렇게 볼 일만은 아니다. 멸종이란 자연에 다음 세대가 등장할 수 있게 앞 세대가 자리를 비켜주는 것이다. 마치 졸업과 같다. 학교가 아무리 좋다고 해서 졸업하지 않고 버틴다면 신입생이 들어올 수 없다. 선배들이 자리를 비켜주어야 신입생이 들어오는 것처럼 앞 세대의 생명들이 자연에서 자리를 비켜주어야 새로운 생명이 등장할 틈이 생긴다. 수많은 멸종을 거듭한 끝에 우리 인류도 등장했다.

멸종에는 일상적 멸종과 대멸종이 있다. 지금까지 지구에는 다섯 차례의 대멸종이 있었다. 멸종이든 대멸종이든 사라진 동물에게는 어떠한 도덕적 책임도 없다. 그들의 잘못이 아니었다. 단지 지구 환경이 바뀌었고 그 환경에 더 적합한 다른 생명들이 있었을 뿐이다. 대멸종에는 일정한 패턴이 있다. 대기의 산성도가 높아지고, 산소 농도가 떨어지며, 기온이 5~6도 정도 급격히 오르거나 떨어진다.

지금까지 가장 참혹했던 대멸종은 고생대에서 중생대로 넘어가게 된 계기였던 세 번째 대멸종이다. 최소한 100만 년에 걸쳐 일어난 세 번째 대멸종 기간 동안 95퍼센트 이상의 생물종이 사라졌다. 괜찮다. 그 자리에 새로운 생명이 생겨났다.

지금 우리는 여섯 번째 대멸종을 목격하고 있다. 그 속도가 엄청나게 빠르다. 학자들에 따라 의견이 많이 다르기는 하지만 그 기간이 대략 500년에서 1만 년 정도일 것으로 추정한다. 괜찮다. 우리에게 익숙한 생명들이 사라지는 게 안타깝기는 하지만 그 자리에 새로운 생명들이 가득 찰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설레기도 한다. 그런데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지금까지 다섯 차례의 대멸종을 보면 당시 최고 포식자는 반드시 멸종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최고 포식자는 우리 인류다. 그렇다면 문제가 달라진다.

어떻게든 여섯 번째 대멸종의 진행속도를 늦춰야 한다. 그래야 우리 인류가 조금이라도 더 지속할 수 있다. 문제는 어디에 있을까? 지난 다섯 차례의 대멸종과 견주어 보자. 대기 산성도는 오히려 조금씩 개선되고 있다. 산소 농도도 21퍼센트로 일정하다. 문제는 기온이다. 현재 지구 온도는 이미 산업혁명 이전보다 1도 정도 올라간 상태다. 5~6도까지는 아직 먼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기온은 2도까지는 완만하게 오르지만 2도에 도달하면 급격히 상승하게 된다. 기온 상승을 2도에서 막지 못하면 여섯 번째 대멸종은 금방 오고 말 것이다.

다행히도 우리는 절망 속에서 멸망을 묵묵히 기다려야만 하는 처지는 아니다. 지난 다섯 차례의 대멸종은 당시 생명의 잘못이 아니었지만, 지금 여섯 번째 대멸종은 우리가 자초한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기온 상승은 우리가 무턱대고 이산화탄소를 배출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자연이 하는 일을 우리가 막을 수는 없지만 우리가 하는 일은 우리가 그만 하면 된다. 어쩌면 아주 간단한 일이다.

기억하기 좋은 날짜다. 2015년 12월 12일 파리에서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 195개 협약 당사국은 2020년 이후 새로운 기후변화 체계 수립을 위한 최종 합의문에 서명했다. 우리도 서명했다. 합의문에 따르면 각 나라는 지구 평균기온의 상승을 2도보다 훨씬 낮게, 가능하면 1.5도까지 제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를 위해 각국은 온실가스 배출 규제목표를 유엔에 제출한 상태다.

2016년 11월 4일 발효된 협약에 따라 우리나라는 2025년부터 세워지는 모든 신축 건축물은 에너지를 자급자족해야 한다. (유럽연합 국가들은 2019년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과연 가능할까? 많은 분들이 걱정하든지 아니면 콧방귀를 뀌신다. 아니다. 가능하다. 서울시 노원구가 그것을 보여주고 있다.

노원구 하계동에는 올 가을 입주를 목표로 ‘제로 에너지주택 실증단지’가 세워지고 있다. 여기에는 아파트, 연립주택, 단독주택 등 다양한 형태의 121가구가 들어선다. 단열과 창호를 강화하고 에너지 회수 장치를 설치해 에너지 소비를 일반 주택의 절반으로 줄였다. 동시에 태양광 전지판과 지열 펌프로 에너지를 자체 생산한다. 계절에 따라 에너지 생산량의 차이는 있지만 생산한 에너지가 남는 계절과 모자라는 계절을 따지면 단지 안에서 사용하는 모든 에너지를 단지 안에서 생산하는 신재생에너지로 충당할 수 있다. 노원구의 제로 에너지주택 실증단지 건설이 다른 지역의 모범이 되기를 바란다.

여섯 번째 대멸종을 ‘인류세(人類世)’라고 부른다. 인류가 일으킨 멸종이라는 뜻이다. 지금까지 지구에 수많은 멸종사건이 있었지만 그 어느 것도 특정 생명의 책임이 아니었다. 그런데 인류가 다른 생명뿐만 아니라 자신마저 멸종시킬 수 있다니, 인간이 정말 대단하기는 대단한 존재다. 인류라고 해서 영원히 존재하지는 못할 것이다.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다. 그것이 자연의 이치다. 다만 인류의 멸종이 인류의 잘못이 아니라 자연의 선택이기만을 바랄 뿐이다.

만약에 나중에 외계인이 왔을 때 인류세의 시작점을 찾을 수 있을까? 아마 쉽게 찾을 것이다. 지층의 어느 지점부터 갑자기 방사능이 늘어나고 콘크리트와 플라스틱 덩어리가 쏟아지기 때문이다. 이때가 대략 1950년이다. 아마 외계인들은 인류세의 표본화석으로 닭을 찾을 것이다. 73억 지구인이 1년에 먹는 닭은 500억 마리, 5,000만 대한민국 국민도 매년 10억 마리의 닭을 먹는다. 아무리 봐도 외계인이 인류세 지층을 찾는 일은 누워서 떡 먹기일 것 같다.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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