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약 2건 외 법적 구속력 없어
MB정부 때도 본계약 성사 16%뿐
현대건설 MOU 2건은 무산 위기
‘이란 특수’에 잔뜩 들떠있어야 할 건설업계가 조용하다. 역대 최대 외교 성과라던 정부의 대대적인 홍보와는 딴판이다. 대부분 구속력 없는 양해각서(MOU) 수준이어서 실제 수주까지는 갈 길이 먼 탓이다. 박근혜 대통령 순방 중 체결키로 했다고 발표된 MOU 일부도 추가 검토를 이유로 진행이 중지되면서, 점점 더 먹구름이 끼는 양상이다. 순방 효과를 두고 엇갈린 업체간 희비도 향후 실제 수주 결과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9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이달 1~3일 한국과 이란 간 정상회담에서 양해각서(MOU) 및 가계약이 체결됐다고 발표된 것 중 우리나라 건설사들이 참여하는 프로젝트는 17개, 총 264억달러(30조원) 규모다.
발표된 실적만을 놓고 볼 때 이번에 가장 큰 성과를 낸 곳은 총 81억달러(9조4,000억원) 규모의 신규 계약들을 눈앞에 두고 있는 대림산업이다. 대림산업은 인프라 분야에서 ▦이스파한~아와즈 철도(53억달러) ▦박티아리 수력발전 댐(19억달러) 공사의 가계약을 다음달 중 체결할 예정이고 플랜트 분야에서도 ▦천연가스액 플랜트(NGL-2300) 건설(9억달러) 등을 논의 중이다.
현대엔지니어링(사우스파 12단계 확장공사 등)과 GS건설(사우스파 11ㆍ14단계 확장공사 등), 대우건설(테헤란 쇼말 고속도로 3공구 사업 등), 포스코건설(한류 문화복합공간 K타워 설립) 등도 나름의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된다.
이들의 공통점은 과거 이란 수주 경험이 있고, 2010년 제재조치 후에도 꾸준히 이 시장에 공을 들였다는 점이다. 대림산업은 한국 지사가 모두 철수할 때도 유일하게 한국인 직원을 이란 지사에 남겼고, GS건설은 지난해 조직개편을 통해 플랜트 전문가 1명을 이란 테헤란지사장으로 발령냈다.
반면 시공능력평가 10위 안에 드는 대형 건설사 중에 삼성물산과 롯데건설, SK건설, HDC현대산업개발 등은 이란에서 성과가 없었다. 아예 이란에 진출한 적이 없거나(롯데건설, SK건설, 현대산업개발) 주력지역이 아니었기 때문에 검토 중(삼성물산)이라는 이유 등으로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번 이란 특수가 실제 수주로 이어질 경우 일부 건설사들은 올해 해외수주 목표를 무난히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림산업의 경우 올해 해외 수주 목표액이 3조4,000억원인데 현재 언급된 프로젝트만 성사돼도 2배를 넘는 수주액으로 목표 달성을 하게 된다.
하지만 본계약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큰 것은 사실상 가계약 2건(이스파한~아와즈 철도사업, 박티아리 수력발전)에 불과해 나머지 프로젝트가 실현될지는 미지수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본계약 전 MOU 단계에서 이렇게 정부를 통해 줄줄이 발표된 적은 거의 없고 계약 형태도 일괄 정부계약(GA), 업무협력 합의각서(HOA) 등 우리가 처음 들어보는 생소한 개념이 많아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또 다른 건설사의 임원은 “가계약을 제외하면 이번에 정부가 맺은 계약들은 전혀 법적 구속력이 없다“며 “중간에 발주처가 더 좋은 조건을 내민 업체와 얼마든지 협상할 수 있기 때문에 실제 수주로 이어질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 때도 자원외교 등으로 96건의 MOU를 맺었다고 홍보했지만 이후 본계약으로 이어진 것은 16건에 불과했다.
벌써부터 일부 이런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현대건설은 현대로템과 공동으로 차바하~자헤단 철도공사(17억달러) 및 미아네즈~타브리즈 철도공사(6억달러) 등에 관한 MOU를 이란과 체결할 예정이었지만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는 상태다. 현대건설 측은 “발주처가 MOU 체결 직전 사업 조건 변경 등을 요청해 체결이 미뤄졌다”고 말했다. 또 이란의 한 언론은 8일(현지시간) 이란 건설 분야 공기업(CDTIC)의 알리 누르자드 최고경영자의 말을 인용해 “대우건설이 이달 초 MOU를 체결한 10억 달러 규모의 ‘테헤란 쇼말 고속도로’ 공사와 관련해 넉 달 안에 MOU 내용을 이행하지 못하면 계약이 해지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분명히 좋은 기회인 것은 분명하지만, 넘어야 할 난관이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라며 “향후 대응에 따라 업체들의 진짜 희비가 갈릴 것”이라고 말했다.
강아름 기자 sara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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