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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순 칼럼] 사랑의 정치학

입력
2015.03.10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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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상호성 자발성 바탕해야

나라 민족 신 자식 등을 앞세워

일방적인 사랑 강요 행태 멈춰야

사랑-이 말처럼 ‘아름다움’과 ‘위험성’이라는 역설적 이중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 있을까. 사랑은 인간에게 살아있음의 전율과 기쁨을 경험하게 한다. 그러나 동시에 사랑은 타자를 향한 폭력과 증오감 또는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고 확장하는 기제로 사용되곤 한다.

뉴욕시의 전 시장이었던 줄리아니가 지난달 18일 “대통령은 미국을 사랑하지 않는다”며 이어 “그는 여러분들과 내가 이 나라에 대한 사랑을 키우며 자란 방식으로 자라지도 않았다”라는 공식적인 발언을 했다. 방송매체에서는 오바마의 나라 사랑에 대한 토론을 하기도 하고, 그의 애국심에 대한 설문조사를 하기도 했다.

그런데 여기에서 ‘오바마가 나라를 사랑하는가 아닌가’ 보다 중요한 물음은, 줄리아니와 오바마의 ‘나라 사랑’ 이 담고 있는 구체적 ‘내용과 가치가 어떻게 다른가’ 라는 것이다. 자신의 방식과 다르다고 하여 줄리아니가 오바마의 나라사랑을 전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사랑의 이름으로 벌어지는 왜곡된 위험성을 잘 드러낸다.

종교인들은 ‘신(神) 사랑’의 이름으로 자신들의 기준에 맞지 않는 사람들에게 육체적인 죽임은 물론 사회적 죽임과 폭력을 행사한 ‘죄의 역사’를 만들어 왔다. 부모들은 ‘자식 사랑’의 이름으로 자기집착적인 사랑 방식을 자식들에게 강요하는가 하면, 통치자들은 권력에의 집착과 야망을 ‘나라 사랑’으로 포장하여 국민들의 자율적인 판단 기능을 통제하는 도구로 차용하곤 한다.

그런데 우리가 기억해야 할 중요한 두 가지 사랑의 원리가 있다. 사랑이란 상호성과 자발성에 근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랑이 일방적으로 강요되는 순간, 그 행위는 ‘사랑’이라는 이름을 더 이상 지닐 수가 없다. 예를 들어서, 사랑의 이름으로 타자에게 성적관계를 강요할 때 그것은 사랑의 행위가 아닌 성폭력으로 전이된다. 나라와 민족에 대한 사랑의 이름으로 국기 게양과 같은 특정한 행위를 강요하게 될 때, 그 행위는 더 이상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없게 된다. ‘신 사랑’의 이름으로 물질적 헌신을 강요할 때, 그 행위들은 더 이상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없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강요성은 은밀한 방식들을 통해서 자발성의 옷을 입고서 우리의 판단을 흐리게 한다.

개인들 또는 집단들이 자신들의 권력, 야망, 욕심을 확대하는 통로로 ‘사랑’이라는 고귀한 개념을 차용하는 현실 속에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사랑이라는 순수하고 아름답기만 한 것 같은 이름에, ‘사랑의 정치학’이라는 개념을 적용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이 ‘사랑의 정치학’은 광복 70주년을 맞이하여 국민의 ‘나라 사랑’을 장려한다는 취지로 국기 게양의 의무화를 추진하는 정치적 주장 속에도 은밀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작동되고 있다. 복잡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가 ‘비판적 사유하기’를 더욱 치열하게 해야 하는 이유이다.

‘나라 사랑’의 이름으로 국민의 복지보다 정치적 권력의 유지와 확장에만 관심 두는 정치인, ‘민족 사랑’의 이름으로 타자에 대한 폭력을 정당화하는 폐쇄된 민족주의자, ‘자식 사랑’의 이름으로 아이의 삶보다 자신의 명예와 욕심에 집착하는 부모, 또는 ‘신 사랑’의 이름으로 성적 소수자들에 대한 증오를 확산하고, 세력 확장과 물질적 기반 확장에만 집착하는 종교인들-이러한 행위들은 ‘사랑’이라는 고귀한 가치를, 추하고 위험한 도구로 전락시킨다. 이제 나라, 민족, 신, 자식 등 다양한 옷을 입은 ‘사랑의 이름’ 앞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물음들과 진지하게 씨름해야 한다. ‘누가’ 사랑의 내용과 기준을 정하고 있는가, 그 사랑은 ‘누구의 이득’을 확대하는데 도움을 주는가, 그리고 ‘어떠한 가치들’을 우리 사회에 확산하고 있는가.

강남순 미국 텍사스크리스천대 브라이트신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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