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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식물정부

입력
2016.08.2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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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육강식이 지배하는 동물 세계와 달리 식물은 공존과 평화 속에서 살아간다. 식물 사이에도 햇빛을 더 받기 위한 싸움이 존재하지만 먹고 먹히는 동물 세계에 비할 바는 아니다. 이 같은 식물성에 주목해 작가 한강이 쓴 소설이 바로 ‘채식주의자’다. 작품 속 주인공의 육식 거부는 폭력과 탐욕의 거부다. 한강은 “나는 인간만은 식물이라고 생각한다”는 작가 이상의 메모를 오랫동안 생각했다가 ‘채식주의자’를 썼다고 한다. 1930년대의 이상과 2016년 맨부커상 수상작가를 연결하는 끈이 바로 식물성이다.

▦ 이승우의 장편 ‘식물들의 사생활’은 가족이 겪는 불안하고 위험한 사랑의 고통을 식물적 교감으로 극복하려는 작품이다. 여기서 식물성은 평화주의적 공존을 넘어 상처를 보듬고 치유하는 힘이다. 이인성의 에세이 ‘식물성의 저항’은 가만히 있는 듯해도 어느 순간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는 식물성의 잠재력을 보여 준다. 미술평론가 박영택의 ‘식물성의 사유’는 우주 자연과 인간 삶의 이치를 식물에게서 깨우치려는 사유의 태도를 담고 있다. 삶이 험하고 다툼이 많아질수록 식물성에서 대안적 상상력을 찾고자 하는 시도가 많아진다.

▦ 이와 달리 현실의 거친 세계에서 식물은 약하고 처량한 존재로 비친다. 살아도 산 것이 아닌 식물인간처럼 식물정부는 정부는 정부이되 기능을 못하는 정부다. 그러나 식물정부는 대개 야권의 힘이 강해져 정부여당이 제 마음대로 하지 못할 때 부리는 일종의 호들갑이다. 4ㆍ13 총선 직전 김무성 당시 새누리당 대표는 “새누리당이 과반을 얻지 못하면 박근혜정부는 식물정부가 될 것”이라고 했다. 정갑윤 새누리당 의원은 4ㆍ13 총선에서 야당이 승리했음에도 “야당이 국회의장을 맡으면 식물국회로 전락할 것”이라고 했다.

▦ 우병우 민정수석에 대한 사퇴 요구에 청와대는 “식물정부를 만들겠다는 의도”라고 주장했다. 식물정부를 만들기 위해 부패 기득권 세력과 좌파 세력이 손잡았다는 우스꽝스러운 분석도 내놓았다. 이에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은 “그렇다면 (지금은) 동물정부인가”라고 꼬집었다. 용어는 적합하게 사용해야 공감을 얻는다. 청와대의 말대로라면 우 수석의 사퇴를 요구하는 여권의 비박계조차 부패 기득권 세력이거나 좌파 세력 중 하나다. 우 수석 하나 없다고 식물정부가 된다면 참으로 허약한 정부다.

박광희 논설위원 kh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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