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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문학 집착하는 문단, 재미 추구하는 대중과 거리 멀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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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문학 집착하는 문단, 재미 추구하는 대중과 거리 멀어져

입력
2015.06.22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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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0개 넘는 문학상 '그들만의 잔치'

작가들 문학상 스펙 위해 쓰고 싶은 글보단 문단용 글 써

소수의 베스트셀러 작가 고정불변… 출판사들 낯뜨거운 모시기 경쟁

신경숙 작가의 표절 사태를 지켜보는 출판업계는 깊은 한숨을 토해내고 있다. 문단의 병폐를 바로잡을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가뜩이나 안 읽히는 한국문학이 회복하지 못할 불신과 불황의 늪에 빠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사실상 이번 사태의 밑바탕에는 독자를 잃은 한국문학의 오랜 위기가 자리잡고 있다. 작가와 평단, 출판사 모두 순문학주의의 성채에 갇혀 독자 대중을 외면하면서도, 몇 안 되는 베스트셀러 작가 모시기에 혈안이 돼 비판의 책무를 방기한 이중적 행태의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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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 한국소설에 흥미 잃어

“요즘 우리끼리 모이면 늘 하는 말이 ‘큰일났다’예요.”

문학 출판사의 편집자 A씨는 표절 사태가 터지기 전부터 한국문학이 시장에서 전혀 팔리지 않는 위기 상황을 이렇게 말했다. 일년 중 가장 뜨거워야 할 여름 소설시장이건만 눈에 띄는 신작도 없고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한국문학은 아예 실종 상태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의 여파가 있다고는 하지만 이 위기를 일시적인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

A씨에 따르면 지난 몇 년 새 국내 소설의 초판 출간 부수는 1,000~1,500부로 줄었다. 2000년대 중ㆍ후반만 해도 소설은 아무리 지명도가 낮은 작가여도 초판 발행부수가 3,000부 이하로는 떨어지지 않았다. 과거 문학이 문화 콘텐츠의 핵심이던 시절에는 초판을 5,000부씩 찍기도 했는데, 최인훈 작가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다. 문학과지성사 이근혜 편집장은 “시집은 대부분 출간 두어 달 정도 지나면 증쇄에 들어가는 반면 소설은 초판도 다 팔리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그나마 시는 극소수이지만 고정독자를 가지고 있는 반면, 소설은 소비기반이 급격히 와해되고 있는 실정이다.

‘시장 위축’ ‘영상 시대’라는 말로 설명하기엔 해외 소설에 대한 반응은 뜨겁다. 지난해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한국 소설이 실종된 자리는 요나스 요나손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조조 모예스 ‘미 비포 유’ 등 외국 소설들이 채웠다.

사실 수십만 부 판매가 보장되는 국내 몇 안 되는 소설가 중 하나가 신경숙씨다. 그밖에 판매가 보장되는 소설가는 공지영 김진명 김훈 이외수 조정래 황석영씨 정도다. 문제는 베스트셀러 작가라고 불리는 이 명단이 지난 10여년간 거의 변화가 없다는 점이다. 위 작가들의 평균 연령은 64.8세. 2000년대 이후 새롭게 등장한 작가는 박민규 김애란씨 정도로, 한국 소설시장의 명운은 십 수년째 이 소수의 작가들에 달려 있는 것이다.

소설이 팔리지 않으면서 출판사들은 돈 되는 작가에 더욱 목을 매고 있다. 자음과모음은 황석영 김연수 백영옥씨 등 팔리는 작가들을 모셔오면서 2013년 사재기 의혹에 휘말렸다. 한 유명 작가는 사석에서 “신작 출판사를 경매 방식으로 선정해 가장 많은 돈을 주는 곳에서 책을 내겠다”고 공공연히 말하기도 했다. 2010년에는 문학동네에서 출간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1Q84’가 대박이 나자 다음 소설의 판권을 따내기 위한 출판사들의 이전투구가 벌어져 두고두고 입방아에 올랐다. 업계에서는 판권을 따낸 민음사가 최소 16억원을 선인세로 지급했다는 소문이 돌았고 출판사는 이를 부인했다.

신씨의 표절 의혹이 제기되자마자 창비가 앞장서서 전면 부정하고 나선 것도 출판사들이 인기 작가의 눈치 보기에 급급한 현실을 그대로 드러낸다. 김명인 문학평론가는 “개인의 윤리 문제로 돌려버릴 게 아니라 작가와 출판사 모두가 반성해야 할 일”이라고 지적했다. 권성우 문학평론가도 자신의 페이스북에 “(신씨의 작품을 가장 많이 발행한) 문학동네야말로 ‘신경숙 신화화’에 가장 많은 책임을 져야 한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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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상 통해 밀어주고 끌어주는 문단

독자라는 동력을 잃어버린 한국 소설계는 별개의 힘으로 움직인다. 문학상을 중심으로 출판사와 출판사 문예지의 평론가, 작가가 밀어주고 끌어주는 메커니즘이다. 문학평론가 B씨는 이를 “문단의 독자적 생태계”라고 표현한다.

국내 문학상은 2013년 이미 390개를 넘어섰다. 문학상 심사위원들은 주류 출판사의 편집위원이나 원로 문인들로, 이들의 취향과 기준은 작가의 창작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문학상은 곧 ‘좋은 작가’라는 직인이며, 책 인세로 살기 힘든 현실에서 문학상 상금은 작가들에게 긴요한 생계수단이다.

문학상 수상 결과가 꼭 시장에서의 반응과 일치할 필요는 없다. 대중성은 떨어져도 문학성이 뛰어난 소설을 판별하고 격려해 주는 게 문학상의 역할이다. 그러나 실상은 제 출판사에서 책을 낸 작가나 친한 선후배 작가를 밀어주는 통로가 된다는 게 문제다. 대중에겐 완전히 무명이어도 심사위원의 취향에 맞고 좋은 관계를 유지한 작가들은 여러 문학상을 두루 석권하는 것이 그런 이유다. 심사위원 풀도 좁아 권력 집중화는 갈수록 심해진다. 문학상 수상이 쌓이면 대학 문창과 교수로 임용될 기회가 열리고, 이들이 다시 편집위원이 돼 문학상을 심사하면서 악순환이 반복된다.

그러는 사이 문학의 예술성을 신봉하는 심사위원과 읽을만한 소설을 찾는 대중 사이의 괴리는 화해할 수 없이 커졌다. B씨는 “한국문학의 주인은 독자가 아니라 문단”이라며 “이는 한국소설이 재미없어지는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고 말했다. 소설가 C씨는 “요즘 젊은 작가들은 자신이 쓰고 싶은 것과 심사위원이 좋아하는 기준 사이에서 고민한다”며 “대중으로부터 외면 받고 문단에서도 열외되면 작가는 갈 곳이 없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자가발전 시스템을 구축해 독자와 멀어지고 있는 문단을 어떻게 해야 할까. 소설가 E씨는 “결국 시장에서 승부를 봐야 한다”고 말한다. 순수문학의 판타지에 사로잡혀 있는 문단이 각성하기 위해선 독자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말이다. 그는 “문학의 예술성 운운한 결과 노벨상 작가라도 나왔다면 할 말이 있겠지만 그 결말은 권력화와 고립뿐”이라며 “영화나 음악 같은 경우 지나친 자본화를 우려할 판이지만 문학은 반대로 어느 정도의 산업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선영기자 aurevoir@hankookilbo.com

황수현기자 sooh@hankookilbo.com

박준호 인턴기자(동국대 불교학과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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