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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월회 칼럼] 자본주의라는 스펙

입력
2016.06.21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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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과 면담을 하다 보면 종종 미래를 어떻게 준비해야 하느냐는 질문을 받곤 한다. 그럴 때면 내심 교수라고 해서 무슨 뾰족한 수가 있겠냐는 말이 턱밑까지 차지만, 얼른 다시 삼킨 후 짐짓 숙연한 어투로 이렇게 말한다. “20, 30년 후 우리 사회의 상수가 무엇일지 따져보는 건 어떨까.”

한 사회의 상수라 함은 그 사회구성원이 무얼 하든 간에 코고 작은 영향을 상시적으로 받게 되는 주요 인자를 말한다. 영어를 떠올려보면 쉬이 이해된다. 지금까지 우린 무엇을 하든 영어를 익혀야 했고 영어를 잘하면 그만큼 기회를 많이 잡을 수 있었다. 지난 1950년대 이래 미국이 우리 사회의 중요한 상수 역할을 수행해왔기 때문이다. 그럼, 영어 외에 20, 30년 후까지 우리 사회의 상수가 될 만한 것으론 어떤 것들이 있을까.

그중 하나는 틀림없이 자본주의일 것이다. 우리 사회가 향후 20, 30년 사이에 자본주의가 아닌 다른 체제로 전환될 가능성이 과연 얼마나 될까. 전 지구적 차원서 자본주의가 다른 무엇으로 대체될 가능성은 또 얼마나 될까. 이 물음에 필자처럼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답을 한다면, 자본주의를 공부하는 게 미래를 대비하는 확실한 ‘스펙’이 된다. 이는 우리 사회의 절대다수가 필자와 같은 답을 지녔을 것이기에 더욱더 그렇다.

자본주의 공부의 핵심 가운데 하나는 그것의 역사에 대한 공부이다. 이것이 미래를 준비하는 확실한 스펙인 까닭은 다음과 같다. 첫째, 자본의 생리를 꿰뚫어볼 수 있다. 자본주의는 300년 남짓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이 세월 동안 자본주의가 보여준 성장과 발전은 참으로 대단했다. 영국에서 발원한 후 유럽의 주류가 됐고, 신대륙의 발견과 제국주의적 행보를 통해 아시아 등 제3세계로 진출, 지금은 전 지구촌을 석권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자본주의는 꾸준히 자신을 갱신해왔다. 산업자본만으로 어찌할 수 없게 되자 금융자본을 창출해냈고, 산업화시대가 정보화시대로 전환되자 지식을 핵심 자본으로 포섭하며 이윤을 지속적으로 창출해냈다. 물론 순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빈익빈 부익부, 제국주의, 환경오염, 인간소외 등 많은 병폐가 지속적으로 노정됐고, 대공황과 대규모의 국제적 금융위기와 같은 심각한 사태도 여러 차례 겪었다.

이러한 족적은 자본의 생리를 잘 드러내 준다. 자본주의 역사에는 자본을 한 기업에서 국가 차원으로, 지역 차원으로 또 세계 차원으로 어떻게 확장해갔는지, 숱한 병폐와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며 자기 진화의 기회로 역이용했는지 등이 집적되어 있다. 이를 그저 시험 보려 달달 외우는 게 아니라 내 삶에 필요한 지혜로 섭취하고자 익힌다면, 자본의 생리는 내 삶의 살아 움직이는 밑천이 될 수 있다.

둘째, ‘문제구성능력’을 키울 수 있다. 문제구성능력은 시험문제 같은 것을 잘 출제하는 역량을 뜻하지 않는다. 그건 현재에서 아직은 드러나지 않았지만 미래에선 문제가 될 가능성이 큰 것들을 미연에 찾아내, 그 적절한 해결방안을 마련할 줄 아는 역량이다. 주어진 문제를 잘 푸는 역량, 기존 매뉴얼대로 일을 잘 처리하는 역량, 다시 말해 ‘문제해결능력’보다는 한층 상위의 역량이다. 이는 새로운 매뉴얼을 구성할 줄 아는 역량이기 때문이다.

지난 세월, 자본은 자기 이익의 더 큰 실현과 확장을 위해 끊임없이 판세를 읽고 다면적으로 국면을 독해해왔다. 자본은 참으로 많은 것을 가졌고 그 결과 지킬 것이 엄청나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하여 큰 힘을 지녔다고 해서, 문제해결능력이 남다르다고 해서 안주할 수는 없었다. 자본주의 역사에 문제구성능력이 발휘된 예가 실하게 담겨 있는 까닭이다. 또한 자본주의 공부가 문제해결능력의 구비를 넘어 문제구성능력의 신장으로 나아갈 수 있는 이유기도 하다.

한편 자본주의는 천 년 중세를 뒤엎고 근대란 새로운 하늘을 연 존재다. 또한 근대 이후 지금까지 수백 년간 변신에 갱신을 거듭하며 성장과 확산을 지속해왔다. 자본주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익히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자본주의 공부가 지니는 절대 이점의 하나가 이것이다. 자본주의 역사를 내 역량의 제고를 위해 공부하다 보면 내게도 그런 힘이 시나브로 깃들기에 그렇다.

게다가 망외의 소득도 있다. ‘건강한 자본주의’의 실현에 기여하게 된다는 점이 그것이다. 자본주의를 공부하는 이들이 많아질수록 이른바 ‘금수저 자본주의’ ‘헬조선 자본주의’ 등이 자본주의의 악한 변종임을 알게 된다. 무릇 아는 사람을 기망함은 쉽지 않다. 또 자본주의를 알아야만 자본에 휘둘리지 않고 자본을 부릴 수 있게 된다. 건강한 자본주의가 구현될 여지는 그래서 넓어진다.

다만 이러한 미래 준비법도 다른 준비법과 마찬가지로 위험요소를 안고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자본주의를 속속들이 알고자 하다 보면 어이없게도 ‘종북’이니 ‘좌빨’이니 하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 대가 없는 성취는 없는 셈이니 모쪼록 개의하지 말기를!

서울대 중어중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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