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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석의 우충좌돌] 지지하면서도 비판하는 방식

입력
2017.05.16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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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적 지지와 맹목적 공격 구분해야

무조건 ‘진보’를 기준으로 재지 말고

부패ㆍ무능의 방지를 잣대로 삼으라

선거 전에 나는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면서도, 새 정부가 직면한 문제들의 막중함 때문에 마냥 신이 나지는 않았다. 출범 일주일을 맞은 현재, 대통령은 소탈하고도 당당하게 개혁을 시작하고 있다. 권위주의는 효과적으로 극복할 수 있을 듯하다. 그러나 개혁은 여러모로 만만찮은 일이다.

며칠 전 유시민씨는 이렇게 말했다. “이전까지 문재인 후보를 지지해준 언론이나 지식인도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 권력으로 보고, 공격을 해올 것이다. 이렇게 되면 문재인 정부는 실패한다.” 그래서 자신은 지지만 하는 “진보 어용 지식인이 되겠다”고 했다. 개인적으론 그런 태도도 가능하다. 그러나 그의 발언은 언론이나 지식인이 어떤 비판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뉘앙스를 담고 있다. 지지했던 사람들이 비판하면 정권이 실패한다는 말은 비판을 억누르는 논리로 작용할 수 있다. 쓴 소리는 필요하다. 지지하면서도 비판하는 말과 맹목적인 공격만 구별하면 된다.

칼럼을 쓰는 사람으로서 나는 오창민 경향신문 논설위원의 지적에 동의한다. “기자 입장에서는 노무현 정부나 문재인 정부처럼 ‘착한 정권’이 더 힘들다. 정권의 일거수일투족에 가슴을 졸이면서도 냉철한 관찰자 입장을 유지해야 하고, 비판 기사를 쓸 때는 마음이 편치 않다.” 또 “참여정부 시절 객관적으로 (평가)해주는 지식인이 너무 없어서 힘들었다”는 유시민의 말도 ‘객관적’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과도한 진영논리가 객관적 관찰을 어렵게 만든다.

무엇보다 비판하는 태도에서 다음 둘을 구별해야 한다. 하나는 언제나 ‘진보’의 기준을 일차적으로 들이대며 비판하는 태도이다. 이 태도는 ‘진보’의 기준이 제일 중요하며 또 보수가 아니면 모두 진보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한국 사회에서 ‘진보적(progressive)’이라는 개념이 매우 모호하게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에 이상하게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좌파가 힘이 없는 미국에서 민주당을 지지하는 ‘자유주의자(liberal)’는 ‘진보적(progressive)’이라고 여겨진다. 미국과 관련해서 ‘진보적’으로 번역된 말도 대부분 ‘progressive’이며, 중도(좌) 정도를 지칭한다. 그와 달리 한국에서 ‘진보’는 흔히 ‘좌파’와 동일하게 여겨진다. 여기서 기인하는 모호함과 혼동은 끔찍하다. 사상을 따지자면, 보수/중도우/중도좌/좌파라는 구별이 훨씬 낫다. ‘진보’라고 자처하는 당신, 자유주의자인가 중도(좌)인가 아니면 좌파인가?

그와 달리, 정부를 지지하면서 비판하더라도 ‘개혁에 도움이 되느냐 아니냐’를 기준으로 삼는 태도가 있다. 현재 다수가 동의하는 긴급한 개혁 과제에서 중요한 것은 이념보다 개혁이라고 할 수 있으며, 개혁의 핵심은 부패와 무능을 막는 것일 터이다. 검찰이 부패와 무능에 빠지지 않게 만드는 일은 어떤 정부든 해야 한다. 보수정부조차 검찰의 부패와 무능을 방치하면 부패한 정부일 뿐이다. ‘일자리 확대’ 정책에서도 이념이 기준일 필요가 없다. 증세 정책을 가능하게 할 정치적 실력을 갖추는 것, 또 재정지출을 확대할 경우에도 안정을 놓치지 않는 것이 핵심이다. 교육개혁에서도 제도들이 잘 기능하게 만드는 일이 이념보다 중요하다. 소모적인 경쟁 피하기, 점수 1점이 대학입학을 결정하지 않게 만들기, 그러나 필요한 경쟁력은 확보하기 등.

무조건 ‘진보’ 정부를 지지해야 한다는 사람들은 ‘진보의 함정’에 빠지기 쉽다. ‘진보’를 자처할수록, ‘진정한 진보’를 자처하며 비판하려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다. 공허한 이념싸움은 도움이 안 된다. 사회적 리스크가 확대되고 다양해진 90년대 이후 모든 정부의 일차 과제는 사회적 위기를 조절하고 개혁을 효과적으로 실행하는 일이다. 대통령은 이제까지 ‘진보’를 내세웠고 그 기치 아래 지지자들을 붙들었는데, 그것을 내세울수록 자칫 ‘진보의 덫’에 빠질 수 있다. 부패와 무능을 막는 것을 개혁의 기준으로 삼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다.

김진석 인하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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