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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부총리를 양치기소년 만들어서야

입력
2017.07.24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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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사령탑은 부총리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달 21일 서울정부청사의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집무실을 방문, 사실상 이런 메시지를 공표했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 트로이카라고 할 수 있는 세 사람 중 누가 컨트롤타워인지 교통 정리가 필요하다는 세간의 지적을 의식한 일종의 ‘보여주기‘였다. 장 실장은 “경제 현안의 중심은 부총리”라고 강조했고, 김 위원장도 “부총리께 보고 드리고 지시 사항도 여쭙겠다”고 몸을 낮췄다. 경제팀 수장이 부총리란 원칙이 확인된 것은 다행스런 일이었다.

그러나 최근 문재인 정부가 부자 증세를 공식화한 과정에서 김 부총리가 경제팀을 과연 이끌고 있다고 할 수 있는지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하는 장면들이 노정됐다. 김 부총리는 그 동안 증세에 부정적이었다. 그는 지난달 15일 “소득세와 법인세 명목세율을 높이는 것은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지난 12일에도 “적어도 소득세 명목세율을 올리는 것은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못박았다. 19일 100대 국정과제가 발표된 뒤 178조원에 달하는 재원은 어떻게 마련할 것이냐는 질의에도 기획재정부는 법인ㆍ소득세 등 주요 세목의 세율 인상 없이 세입확충과 세출절감을 통해 재원을 충당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러나 이튿날인 20일 김 부총리가 주재한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김부겸 행안부 장관은 증세론을 불쑥 들고 나왔다. 같은 날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초대기업ㆍ초고소득자의 최고 세율을 올려야 한다며 구체적인 인상폭까지 제시했다. 이어 21일 오후 문 대통령은 부자 증세를 공식 선언했다. 그 동안 소득ㆍ법인세 인상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 온 김 부총리로선 민망하고 뻘쭘한 상황이 돼 버렸다. 그는 21일 오전에도 증세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되풀이한 것으로 알려졌다. 몇 시간 뒤 나올 문 대통령의 결심을 알지 못했을 가능성이 커 보이는 대목이다.

당정청이 일찌감치 증세에 대해 결론을 내린 뒤 문 대통령의 정치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김 장관과 추 대표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역할을 자임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정부가 178조원을 증세 없이 조달하겠다고 발표한 지 단 이틀 만에 이를 번복한 것은 국민에게 혼란과 멀미를 주기에 충분했다. 기조가 갑자기 바뀐 설명도, 여론의 수렴도 없었다.

무엇보다 컨트롤타워라고 공표했던 김 부총리를 딱 한 달 만에 양치기 소년으로 만든 것은 프로답지 못한 국정 운영이다. 그렇지 않아도 김 부총리는 ‘시어머니’가 많아 기를 펴기 힘든 상황이다. 진보 학자이자 사회 운동가 출신인 장 실장과 김 위원장은 차치하고 행시 대선배인 김진표(13회) 국정기획자문위원장과 이용섭(14회)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도 그(26회)에겐 어려운 존재다. 김현미(3선ㆍ국토교통부) 김영춘(3선ㆍ해양수산부) 여당 실세 중진 의원 장관들도 쉽지 않긴 마찬가지이다. 이럴 때 일수록 김 부총리에게 힘을 실어줘야 하는 데도 이번 증세 확정 과정에선 그러한 노력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김 부총리가 진정한 실세 부총리로 우뚝 설 방법은 없을까. 최근 경제계 원로에게 답을 구하자 그는 “대통령 독대가 힘”이라고 조언했다. 문 대통령이 김 부총리에게 독대 기회를 자주 준다면 그에게 힘이 실릴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그가 명실공히 경제 컨트롤타워가 된다면 판자촌 흙수저 상고 출신 첫 부총리는 결코 국민적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사실 그가 제대로 일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건 임명권자의 책무기도 하다.

그래야 적어도 선장의 부재로 대한민국 경제호를 살릴 골든타임을 허비하는 일은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야 너무 많은 사공 탓에 배가 산으로 가는 사태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박일근 경제부장 ikpark@hankookilbo.com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9일 청와대에서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준 뒤 악수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9일 청와대에서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준 뒤 악수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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