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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자살예방 게이트키퍼’가 놓치는 것들

입력
2018.08.21 18:13
수정
2018.08.21 19:48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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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 싶어요.” 상담을 업으로 삼으면 피할 수 없는 문장이다. 심장이 두근대고 허우적대던 초창기를 지나, 6년 차가 된 지금은 전문기관에 연계하거나, 대응 매뉴얼을 만들어 나가며 침착함을 잃지 않으려 노력한다. 하지만 모든 대비가 무용지물이 된 채, 여전히 어찌할 바를 모르는 순간이 있다. ‘죽고 싶어요.’가 아닌, ‘죽을 거예요. 안녕히 계세요.’라는 글. 즉, 유서를 남기는 경우다.

처음으로 유서를 받은 것은 3년 전, 몇 년간 인연을 맺었던 내담자가 자살을 암시하는 편지를 보내 왔을 때였다. 이제는 정말로 세상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은 다 한 것 같다며, 자신을 쉬게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미 결정은 끝난 뒤라고 말했다. 그저, 길지 않은 생에서 자신을 돌보아준 몇몇 사람들에게 마지막 인사나 남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글을 다 읽기도 전에 머리털이 쭈뼛 서는 것을 느꼈다. 편지를 보낸 것은 4시간 전 새벽. 한시가 급했다. 아는 개인정보라고는 전화 연락처와 이름. 하지만 역시나, 전화는 받지 않았다. 다급한 마음으로, 자살예방 전화에 도움을 청했다. 하지만 경찰에 신고하는 것이 맞을 거라고 말했다. 아차, 그랬다. 자살예방 전화는 ‘죽고 싶어요.’를 위한 서비스였다. 이미 ‘죽기로 했어요.’라는 사람에게는, 위치 추적을 할 권한도, 출동할 권한도 없었다.

손떨림은 심해져만 갔다. 경찰에 위치추적 신고를 요청했다. 가장 먼저 받은 안내는 “허위신고이실 경우 1,000만원의 벌금이 부과됩니다.”였다. 그 아이의 주소를 묻는 말에 대답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개인정보는 이름과 전화번호밖에 모른다는 말에, 저쪽에서는 ‘이 전화 또한 수천 건의 허위신고 중 하나가 아닐까.’ 당연히 그런 생각을 할 법도 했다.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다급했다.

그 찰나, 메시지가 왔다. “애 연락됐어요!” 내가 경찰에 신고하는 사이, 다른 사람들이 그 친구에게 연락을 계속 취하고 있었고, 다행히 닿은 것이다. 긴장이 풀리며 다리가 휘청한 채로 나는 그 자리에 한참을 앉아 있었다. 조금씩 진정이 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디까지가 허위신고였을까? 만약 위치추적으로 출동했는데, 그 애가 당황한 나머지 어? 아니에요. 전혀 그런 일 없어요. 경찰 아저씨 가세요. 라고 말했다면 나는 허위신고자가 되는 것이었을까? 상담가인 나도 당황스러운데,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주춤하진 않을까? 그리고··· 20대 중에 친구 집 주소를 아는 애들은 얼마나 될까?’

국무총리실에서는, 올해 초 '자살예방 게이트키퍼 100만명 양성 계획'을 발표했다. 2020년까지 자살률을 확실하게 줄일 것이라는 취지였다. 하지만 아쉽게도 예방교육의 방향성은 여전히 ‘죽고 싶어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왜 죽고 싶은지 묻고, 방법을 준비해 두었는지 묻고, 전문기관과 연계할 수 있도록 하는 것들, 즉 상대방과 ‘대화’를 할 수 있는 경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하지만 모든 자살 희망자들이 힌트를 남기지는 않는다. 어제까지 너무 명랑하게 지내다 오늘 떠나버릴 수 있다. 그런 누군가가 SNS에, 카카오톡 메시지로, 문자 메시지로 자살을 일방적으로 통보해 버렸다면 이것은 또 다른 문제가 되어버린다. 예방이 아닌, 즉각적 신고의 문제인 것이다. 미리 알고 예방하는 것만큼이나, 당장 닥친 상황에서 허둥지둥하지 않게 하는 방법들, 그리고 허위신고 방지를 위한 경찰 내부의 신고 및 접수 체계 재정비가 선행되어야 하지는 않을까. 100만의 예방 도우미 양성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5,200만의 잠재적 ‘최초 발견자’에 대한 대비가 아닐까. 누군가가 쓴 생의 마지막 편지를 언제, 어디서, 누가 맞닥뜨릴지는 아무도 모른다.

장재열 청춘상담소 좀놀아본언니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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