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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기 싫어하는 걸 억지로 보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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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기 싫어하는 걸 억지로 보냈는데…”

입력
2017.05.10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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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중국 산둥성 웨이하이시 타오쟈쾅터널에서 전날 발생한 유치원 통학버스 화재사고 현장을 방문한 유족들이 헌화한 뒤 현장을 바라보고 있다. 웨이하이=연합뉴스
10일 중국 산둥성 웨이하이시 타오쟈쾅터널에서 전날 발생한 유치원 통학버스 화재사고 현장을 방문한 유족들이 헌화한 뒤 현장을 바라보고 있다. 웨이하이=연합뉴스
웨이하이시 유치원 참사 유가족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김미석(왼쪽)씨와 이정규씨.
웨이하이시 유치원 참사 유가족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김미석(왼쪽)씨와 이정규씨.

“아침에 유치원에 가기 싫다고 마른 기침을 하다가 구토까지 한 아이를 억지로 달래서 보냈는데….”

중국 산둥(山東)성 웨이하이(威海)시 타오쟈쾅 터널에서 9일 오전 발생한 중세한국국제학교 부속 유치원 통학버스 화재로 사랑하는 딸 가은(5)양을 잃은 김미석씨는 말을 잇지 못했다. 가은양과 함께 희생된 나머지 한국인 원생 9명의 가족도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며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10일 사고대책본부가 마련된 창웨이(長威)호텔에서 기자들과 마주한 유족들은 누구랄 것도 없이 망연자실했다. 상률(4)군을 떠나보낸 이정규씨도 “아이가 ‘버스가 뜨겁다’면서 유치원에 가지 않겠다고 떼를 썼다”면서 “아이가 사고 조짐을 먼저 알았던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고 울먹였다.

유족들 대부분은 기업 주재원이나 자영업자로 평범하게 살아온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의 젊은 부부들이다. 참사를 당한 가족들끼리는 한 집 건너 대부분 알고 지내는 사이라고 했다. 웨이하이 교민 사회가 그리 넓지 않다 보니 충격도 그만큼 크다. 이번 사고와는 무관하지만 창웨이호텔을 찾은 한 교민은 “아이 키우는 입장에서 그냥 집에 있을 수 없었다”고 했다.

유족들의 가장 큰 바람은 사고 원인을 명확하게 규명하고 책임 소재를 가리는 일이다. 하지만 유족들은 벌써부터 벽에 부닥친 모습이다. 한 유족은 “웨이하이시정부가 오늘 오전 현장방문을 약속해놓고도 사고 장소를 서둘러 정리해버렸다”면서 분통을 터뜨렸다. 실제 이날 오전 기자가 찾아간 해당 터널은 입구에서부터 여전히 매캐한 냄새가 진동해 전날의 참사를 짐작케 했지만, 왕복 2차선 도로의 한 편에 일부 기름자국이 남아 있는 걸 제외하고는 사고의 흔적을 찾기 어려웠다. 유족들은 이날 오후 늦게야 사고 현장을 직접 방문해 이미 정리된 현장을 황망한 듯 바라봐야 했다.

다른 유족도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 리커창(李克强) 총리도 관심을 보인다 하고 산둥성과 웨이하이시정부 고위층이 현장을 지휘한다지만 실제 돌아가는 상황은 너무나 불투명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족들은 전날 참사 소식을 전해듣고 현장으로 달려갔지만 아이들 시신이 안치된 병원조차 전달받지 못한 채 시내 곳곳을 헤매야 했고, 결국 희생자들의 DNA 검사 결과가 나온 뒤 자정이 넘어서야 겨우 아이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사고가 발생한지 무려 15시간이 지나서였다.

유족들은 유치원을 운영하는 중세한국국제학교 재단 측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은 듯했다. 이정규씨는 “학교 측이 차량 관리를 제대로 했는지에 대해 꼼꼼하게 따져봐야 한다”면서 차량 내부 소화기ㆍ비상망치 비치 여부, 유치원 차량 규정 준수 여부 등을 언급했다. 한 유족은 “재단 측이 사고 원인을 밝히기보다 보상과 장례 절차에 관심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참사를 전하는 기사에 달린 일부 네티즌의 댓글에 유족들은 또 한번 상처를 입었다. 한 유족은 “이 곳의 교육환경이 열악하고 한국어를 배울 수 있는 유치원으로 아이를 보내기 위해 통학버스를 태운 건데 마치 대단한 욕심이라도 부린 것처럼 비난하는 글들을 보니 억장이 무너졌다”고 했다. 다른 유족은 “함께 아파해달라는 얘기는 못하겠지만 꽃 같은 아이를 잃은 부모 심정을 조금만 이해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날 새벽 안치실에서 가은이를 만나고 온 김미석씨는 “아이들이 뜨거운 불길에 뒤엉키다 보니 왼쪽 무릎이 부러지고 얼굴도 심하게 훼손돼 있었지만 어제 입은 분홍색 원피스 조각이 허벅지에 붙어 있어 금방 알아봤다. 토끼를 유난히 좋아하던 우리 딸이 지금이라도 문을 열고 들어올 것만 같다”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웨이하이=양정대 특파원 torc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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