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도시보증공사 20여년 독점
개포 재건축 분양가 통제가 불 붙여
“분양가상한제, 갑질 형태로 부활”
대형건설사들 민간에 개방 요구
국회 예산정책처도 지원 사격
공정위는 다변화 방안 검토 중
국토부선 “출혈경쟁에 부실 우려”
2008년 이후 번번이 좌초됐던 주택분양보증시장 개방 논의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정부가 분양보증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를 통해 ‘디에이치 아너힐즈’(개포주공3단지 재건축) 분양가를 통제하고 나선 게 기폭제로 작용했다. “HUG를 통해 우회적인 분양가상한제를 시행할거면 차라리 이번 기회에 민간보증회사에도 문호를 개방하라”는 주장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 것이다.
4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공정거래위원회는 공공기관인 HUG가 독점하는 국내 주택분양보증 시장을 일부 개방해 보증기관을 다변화하는 방안을 규제 개선 과제로 채택할 지 여부를 검토 중이다. 공정위는 현재 국토교통부, 한국주택협회 등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하고 있다.
분양보증은 건설사가 파산 등으로 분양계약을 이행할 수 없을 때, 보증 기관이 분양을 대신 이행하거나 중도금 등 분양대금을 환급해주는 제도다. 아파트 완공 전에 분양대금(계약금 및 중도금)을 미리 납부하는 ‘선(先)분양’시스템을 위해 필요한 제도적 장치다. 현행 주택법은 30가구 이상 공동주택을 선분양할 때는 의무적으로 분양보증에 가입하도록 하고 있는데, HUG가 1993년부터 20년 넘게 분양보증 사업을 독점하고 있다.
분양보증 시장 개방이 처음 공론화된 건 2008년 이명박 정부 시절이다. 당시 정부는 ‘제3차 공공기관 선진화 계획’에서 2010년까지 분양보증 시장 독점을 폐지하고, 경쟁체제를 도입한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한 차례 연장안까지 발표됐으나, 이후 주택경기가 침체 국면에 접어들면서 논의는 흐지부지됐다.
하지만 최근 분위기가 달라졌다. 국토부가 산하 기관인 HUG의 보증 권한을 토대로 분양가 통제에 나서자 반대 급부로 시장 개방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HUG는 지난달 25일 디에이치 아너힐즈에 대한 분양 보증을 불허했다. 분양가(3.3㎡당 평균 4,310만원)가 주변 시세에 비해 지나치게 높다는 이유에서다. HUG는 분양가가 주변 시세의 10%를 넘지 않으면 보증서를 발급해 줄 수 있다는 ‘가이드라인’도 제시했다. 결국 디에이치 아너힐즈의 조합 측은 가이드라인에 부합하는 3.3㎡당 평균 4,137만원의 가격으로 분양보증을 신청해 이날 HUG로부터 보증서를 발급 받았다.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작년 4월 사라진 분양가상한제가 HUG의 ‘갑질’ 형태로 부활했다”며 “이게 모두 HUG의 독점 때문”이라고 반발했다.
국회 예산정책처도 최근 시장 개방에 대한 ‘지원 사격’에 나섰다. 예산정책처는 지난달 11일 ‘2015회계연도 국회교통위원회 결산 보고서’를 통해 “주택분양사업은 분양보증 가입이 의무화돼 있기 때문에 HUG가 분양 보증을 거절하면 건설사는 사업을 진행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며 “HUG가 분양보증을 독점하면서 주택공급량을 직접 조절할 수 있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주무부처인 국토부는 완강한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개방 이후 민간 보증기관 간의 출혈경쟁으로 보증기관의 부실이 커질 수 있고, 또한 주택사업의 공공성을 고려할 때 공공기관인 HUG 중심의 현 시장 구도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대형 건설사의 한 관계자는 “국토부 입장에서는 HUG의 독점권을 통해 분양가, 주택 공급량 등을 간접적으로 제어할 수 있기 때문에 이 권한을 잃고 싶지 않을 것”이라며 “이번에도 시장 개방이 쉽지는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