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준호의 실크로드 천일야화] <47> 세계 3대 미항 리우데자네이루
코르코바두 언덕의 ‘구원의 예수상’은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랜드마크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양 팔을 벌리고 서 있는 예수상은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상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부활해서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 같다. 하늘에서 360도 회전하며 아래로 찍은 예수상 영상을 보면 마치 세상이 그의 발 아래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높이 704m의 코르코바두 산 정상으로 가기 위해서는 중턱에서 모노레일로 갈아타야 했다. 예수상 형상의 기념품 가게를 지나 탑승역으로 넘어가는 곳에 짝퉁 사진포인트가 있었다. 한 개의 벽면 전체를 예수상 사진으로 꾸며놓은 곳이었다. 그 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면 마치 진짜 예수상 앞에서 찍은 것 같다. 물론 촬영료를 내야 했다. 노 머니 노 포토다. 짝퉁 예수상 앞에서 어설픈 연기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진짜 예수상이 바로 위에 있는데 더더욱 그랬다.
산 정상은 중턱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짙은 구름으로 시계 제로 상태였다. 5m 앞이 보이지 않았다. 모노레일에서 내려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예수상 앞으로 가보니 인종과 국적이 다른 사람들이 한 가득 계단과 바닥에 서 있었다. 기린처럼 목을 빼고는 이제나저제나 구름이 걷히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구 반대편을 돌아 코르코바두 산까지 올라와놓고 정작 예수상을 보지 못하지나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언뜻 스쳤다.
사진을 보면 이곳 예수상 주위로 코파카바나 해안, 팡지아수카르, 이파네마 해변 등 경치가 예술이었다. 바로 앞 사람도 보이지 않는데 산 아래 경치가 보일 리 없었다.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다.
20분쯤 지난 후 갑자기 환호성이 터졌다. 바람이 구름을 살짝 밀어내면서 예수상이 조금씩 눈에 들어왔다. 오랜 기다림 끝에 회색의 세계가 걷히면서 38m 높이의 예수상이 팔을 벌린 채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카메라 셔터가 이곳 저곳에서 동시에 터졌다. 앉아서 찍어도 예수상이 앵글에 들어오지 않자 바닥에 드러눕는 사람도 있었다.
구름이 다시 예수상을 덮고 있어 몇 초 순간에 인생샷 한 장을 건져야 했다. 다시 회색의 세상으로 돌아왔다. 예수상을 한 번 보고나니 기다리는 시간이 더 초조해졌다. 바람은 그후 두 세 차례 구름을 밀어내 줬지만 깨끗하게 걷어내지는 못했다.
예수상 기단부에는 조그만 예배당이 있었다. 잠시 침묵과 명상과 기도가 섞인 상태로 앉아있다 기념품 판매소를 들렀다. 기념품은 단연코 예수상이 주류를 이뤘다. 가톨릭신자인 어머니를 드리려고 작은 예수상을 하나 골랐다. 진짜 예수상과 같은 재질의 돌로 만들었다고 해서 솔깃했다. 꽁꽁 싸매서 포장했는데 귀국해보니 팔 한쪽이 떨어져 있었다. 5초 본드로 붙이긴 했지만 자국은 여전하다.
세계 7대 불가사의에 포함된 이 조각상은 브라질이 포르투갈로부터 독립한 지 100주년을 기념해 만들어졌다. 1926년 설계를 시작해 5년 후인 1931년 완공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흔히 ‘빵산’으로 부르는 팡지아수카르가 예수상 아래 보이지만 구름 때문에 결국 보지 못했다. 하지만 직접 그곳에 가서 ‘VIVA COREA’(한국 만세)라고 낙서 벽에다 써놓고 왔으니 소원은 풀었다. 현지 가이드로부터 빵산 이름을 들으니 갑자기 ‘조다리’가 생각났다. 미국 교포들은 뉴욕 맨해튼과 뉴저지를 잇는 조지워싱턴 다리를 줄여서 이렇게 불렀다.
해발 396m의 팡지아수카르는 설탕빵이라는 말이다. 자꾸 보니 설탕으로 된 빵처럼 보였다. 케이블카를 2번 타고 우르카 언덕과 팡지아수카르를 올랐다. 구름 없는 팡지아수카르에서 내려다 본 리우는 그림 같았다. 리우가 호주 시드니, 이탈리아 나폴리항과 함께 세계 3대 미항으로 꼽히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리우의 명소 중 메트로폴리타나 대성당을 빼놓을 수 없다. 지름 104m, 내부 높이 68m의 원추형 건물은 전혀 성당과 닮지 않았다. 종탑과 예수상, 마더 데레사 수녀의 동상이 성당 건물 임을 짐작케했다. 천정의 십자가 문양과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로 유명한 이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면 2만명의 신자들이 자리를 가득 메운다고 하니 어마어마한 규모다.
리우의 거리에서 태극기를 볼 수 있는 곳이 있었다. 관광 명소로 자리잡은 셀라론 계단이었다. 계단 수는 215개, 높이는 125m다. 여행객들은 계단 중앙 명당 자리에 앉기 위해 긴 줄을 서 있었다. 칠레 출신 예술가 호르헤 셀라론이 세계 각국서 수집한 타일을 붙여 만든 계단은 리우는 물론 브라질의 상징이 됐다. 마침내 2,000여개의 타일 속에서 태극기 찾기에 성공했다.
리우데자네이루를 떠나면서 직업병처럼 표기법에 의문이 생겼다. 외래어표기법의 한계를 자꾸 실감하게 되는 것이다. 지명이나 인명이 특히 그렇다. 해당 국가 공용어를 기준으로 한다면서도 관용어를 따른다. Rio de Janeiro는 1월의 강이란 뜻이다. 현지 발음은 ‘히우데자네이루’에 가깝다. 영어식 발음에 따르면 우리 귀에 익숙한 ‘리오데자네이로’다. 하지만 맞는 표기법은 리우데자네이루라고 하니 어지럽기만 하다.
北京을 북경 대신 베이징이라고 부른 지가 좀 된다. 덩달아 서울의 중국식 표기도 ‘漢城’에서 ‘首爾’로 바꿨다. 발음 위주로 돌아섰지만 불완전하기는 마찬가지다. 중국 돈을 일컫는 위안은 元이라고 쓴다. 현지 발음은 누가 들어도 ‘위엔’이다. 중국인들도 표준어를 정립하기 위해 발음을 영어로 써놨다. 병음이라고 한다. 元은 yuan이라 쓰지만 an의 발음은 ‘엔’으로 읽는다. 모든 중국어 병음에 an이 붙으면 엔으로 읽어야 한다. 이 영어식 발음표기법을 우리식 영어발음으로 표기했는지 알 길이 없지만 항상 오자에 민감한 기자 입장에서는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니다. 포르투갈어를 아는 한국인이라면 절대 ‘리우데자네이루’로 표기하는데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글ㆍ사진=전준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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