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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이 무기… 사건 수임 싹쓸이하는 전관 변호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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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이 무기… 사건 수임 싹쓸이하는 전관 변호사들

입력
2016.05.06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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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검사 연고 앞세우고 편법 변론 다반사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내게 사건을 맡기지 않으면 후배 검사들에게 연락해 판을 키우겠다.”

검찰 고위 간부 출신의 A 변호사는 자신을 고문변호사로 둔 의뢰인이 형사고발 사건을 15년 경력의 B 변호사에게 맡기고 착수금을 지급하자 으름장을 놨다. 의뢰인은 B 변호사에게 “A 변호사가 사건을 왜 B 변호사에게 주었느냐고 따졌다. ‘내 입을 막고 싶으면 사건을 내게 맡기는 편이 쉬울 것’이라고까지 엄포를 놨다”고 전했다. 우여곡절 끝에 B 변호사는 A 변호사가 요구한 1억원의 절반 정도를 수임료로 받고 사건을 맡아 해결하기는 했다. 하지만 그는 5일 “전관(前官)의 압력을 실감했다”며 전관의 지나친 영업 행태를 털어놨다.

정운호(51ㆍ수감 중) 네이처리퍼블릭 대표 사건에서 전관 변호사들의 비상식적인 수임료가 논란이 되면서, 전관들이 동기나 후배들과의 연고를 무기로 사건을 싹쓸이 수임하거나 선임계를 내지 않고 편법 변론하는 행태가 도마에 오르고 있다.

대한변호사협회에 따르면, 2011년부터 올해 5월까지 선임계 미제출과 연고관계 선전금지 위반으로 과태료 처분을 받은 변호사는 15명인데, 이중 전관이 9명이다. 법조계의 한 인사는 “의뢰인이 전관의 부당행위를 적극 폭로해 드러난 건만 이 정도”라고 말했다.

기소 전 전관의 위력은 ‘플리바기닝(plea bargainingㆍ유죄 협상제)에 있다’는 얘기는 법조계에서 심심찮게 나돈다. 11년 차의 C 변호사는 “검사 출신 전관 변호사는 보통 검찰 수사 과정에서 의뢰인이 자백하도록 한다. 검찰과 전화 통화를 하든 밥을 먹든 하면서 ‘이만큼 자백을 시킬 테니 구속은 면하게 해 달라’는 식이다”라고 말했다. 검찰 출신 전관 변호사의 주특기라고 할 수 있다. C 변호사는 “사건 수사 검사나 부장 검사와 친분 관계가 있는 전관을 콕 찍어서 선임하는 경우도 있고, 사건을 배당하는 차장 검사와 친분이 있는 전관 변호사를 선임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말이 통하는’ 검사가 수사를 맡을 수 있도록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의미다.

재판이 시작되면 형을 가볍게 하는 것은 물론, 재판절차 상 편의를 확보하는 데에도 전관의 연고 관계가 활용된다. 5년 차의 D 변호사는 “판사와의 친분을 이용해 재판 과정을 질질 끄는 것도 전관의 능력”이라며 “변호사 접견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구치소의 환경과, 선고를 받으면 가야 할 교도소의 처우가 크게 다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재벌 등 재력가 의뢰인에게 구치소에서 머무는 기간을 늘려 접견을 빙자한 휴식 시간을 갖도록 하거나, 재판 중 보석과 구속집행정지 등을 얻어내는 것이 변호사의 일이다.

일부 대형 로펌들은 굵직한 형사사건이 아니더라도 변호인단에 전관을 ‘히든카드’로 꼭 넣는다. 국내 매출액 5위권 대형 법무법인의 K 변호사는 “범죄사실상 우리가 불리할 듯한 형사재판에는 전관을 한 명 투입하는 편”이라며 “재판부와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서”라고 귀띔했다. 법정 밖에서 재판장이나 주심판사와의 전화 등을 통해 ‘은밀한 변론’이 이뤄지고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정운호 사건으로 확인됐듯, 재판장이나 검사 등과 연고 관계가 있는 변호사들을 총동원해 사건의 고비고비마다 맞춤형으로 투입하는 등 전체 판을 짜는 ‘코디네이터’ 변호사는 비교적 최근의 현상으로 업계에서도 관심사다. 특히, 법관 출신 전관들이 코디네이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E 변호사는 “브로커들은 출신 고교나 연수원 동기 등 겉으로 드러나는 기준으로 전관 선임에 개입하지만 같은 학교 출신이라도 사이가 안 좋을 수 있어 이런 식으론 운 좋게 한번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오히려 변호사와 결혼한 친인척이 있는지, 연수원 지도교수 관계, 최근 빚었던 동료나 변호사와의 갈등 여부 등 내밀한 정보는 판사 출신 전관들이 우위에 있을 수밖에 없다. E 변호사는 “변호사들끼리도 자기가 사건을 맡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면 (판사 출신 변호사 등에게) 변호사를 구해 달라는 요청을 한다”고 귀띔했다. 판사 출신 L 변호사는 “비정상적 수임료 배분 등을 종합해 볼 때, 정운호 사건을 맡은 최 변호사가 사실상 전관 프리미엄으로 브로커 노릇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비판했다. 최 변호사는 네이처리퍼블릭의 고문변호사 자리를 노려 왔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非)전관 변호사들은 전관들의 ‘개업인사’ 경력 선전부터 막아야 법조계의 전관비리를 어느 정도 차단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흔히 신문에 실리는 개업인사에는 법원이나 검찰에서 거친 임지는 물론 출신 고등학교, 대학교, 사법연수원 기수까지 고스란히 적혀 있어 브로커들의 ‘먹잇감’이 된다는 것이다. E 변호사는 “브로커들은 데이터베이스에 개업인사 자료를 차곡차곡 모아뒀다가 누군가의 사건이 배당되면 연수원 동기를 찾아 장사한다”며 “법조계의 복합적인 문제를 없애려면 전관의 경력 선전을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원일 기자 callme11@hnkookilbo.com

손현성 기자 hshs@hankookilbo.com

박지연 기자 jyp@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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