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미환
선임기자

등록 : 2017.03.17 20:00
수정 : 2017.03.20 03:55

전기ㆍ화학물질 없이 쾌적하게 살기… 가능합니다

[다른 생활 탐구] 7. 비전화공방 서울

등록 : 2017.03.17 20:00
수정 : 2017.03.20 03:55

비전화 냉장고ㆍ정수기 등 제작

농사 짓고 집 지으며 자급자족

모태인 日 공방의 철학 공유하되

대도시 서울에 맞는 방식 모색

전기 없이 살 수 있을까. 가능하지만 불편할 것이다. 전기가 끊어지면 모든 게 멈춘다. 2011년 3월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그해 9월 15일 국내에서 일어난 대규모 정전 사태는 전기에 의존한 삶이 얼마나 취약한지 실감케 했다.

지난해 초 개봉한 영화 ‘제5 침공’에서 지구를 침공한 외계인은 제일 먼저 전력을 차단함으로써 지구인을 무장 해제시킨다. 또다른 질문. 화학물질 없이 살 수 있을까.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화학물질의 위험을 보여줬지만, 아예 안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전기도 화학물질도 거리를 두기엔 너무 익숙해졌다. 사용을 최소화하면서도 풍요롭고 행복하게 사는 방법은 없을까. 그 가능성을 상상하고 실험하는 ‘ 비전화공방 서울 ’이 4월 불광동 서울혁신파크에 문을 연다.

‘비전화’는 전기와 화학물질 없이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과정을 가리킨다. 일본의 발명가 후지무라 야스유키(73)가 도치키현의 시골 마을 나스에 2000년 비전화공방 테마파크를 만들어 전파해 온 대안적 삶의 방식이다. 서울 공방은 나스 공방의 철학과 경험과 기술을 공유하되 대도시 서울에 맞는 비전화 방식을 개발하고 실천한다. 서울 지부로 출발해 3년 동안 함께 만들고 이후 독립할 예정이다.

비전화공방 서울 멤버들이 서울혁신파크 내 농사 지을 땅을 살펴 보고 있다. 비전화공방 서울 제공

전기와 화학물질을 전부 추방하자는 게 아니다. 에너지와 소비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삶에서 벗어나 ‘자립’하는 게 핵심이다. 플러그만 꽂으면 연결되는 전기, 소비로 해결하는 모든 것, 빠르고 편리하고 쾌적한 데 익숙해진 삶이 놓친 것들을 회복하려고 한다. 다 함께 생산하는 기쁨, 손과 발을 이용해 기술을 익히는 즐거움, 따뜻함이 느껴지는 인간 관계, 오감으로 느끼는 자연을. 플러그를 뽑은 다음 펼쳐질 가능성을 찾아 비전화 방식으로 집을 짓고 먹을 것을 키우고 생활에 필요한 도구를 만든다. 돈으로 사거나 전문가에게 맡기지 않고 스스로 삶을 재구성하는 데 필요한 지식과 기술과 태도를 익힌다.

서울 공방을 이끄는 강내영 단장은 “불편한 옛날로 돌아가자는 게 아니다. 비전화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모든 사람에게 이를 강요할 필요도 없다. 다만 다른 삶은 가능하다는 선택지를 늘리려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시민단체에서 일하던 그는 공부하러 일본에 갔다가 비전화공방과 인연을 맺었다. 비전화공방의 철학과 활동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으로 후지무라 선생이 그를 지목해 서울 공방을 맡겼다. 서울에 비전화공방을 만들자는 제안은 2015년 가을 박원순 서울시장이 했다. 서울시가 재정 지원을 하지만 운영은 자율이다.

일본 도치키현 나스의 비전화공방 카페. 비전화공방 서울 제공

일본 비전화공방의 집 짓기. 전기를 쓰지 않지만 쾌적하게 지낼 수 있다. 비전화공방 서울 제공

나스의 비전화공방은 약 3,000평 부지에 펼쳐진 체험 마을이다. 청년들이 1년간 공동 생활을 하면서 비전화 방식을 익힌다. 농사를 짓고 필요한 물건을 만들며 자립에 필요한 기술과 태도를 배운다. 이곳을 거쳐간 청년 1,000여 명이 일본 전역에서 비전화 생활을 전파하고 있다. 집, 작업실, 카페, 닭장, 목욕탕 등 나스의 시설은 건축이나 제작 경험이 없는 청년들이 전기와 화학물질을 쓰지 않고 돈을 적게 들이면서 몸으로 만든 것이다. 아마추어 솜씨라 어설프고 볼품 없을 것이라는 짐작과 달리 예쁘고 튼튼하고 쾌적하다. 비전화공방은 아름답고 즐거운 생활을 강조한다. ‘가난한 행복’으로 미화하거나 ‘윤리적 올바름’을 앞세워 궁상맞음을 견디는 건 비전화 방식이 아니다.

비전화공방은 전기 없이 쓸 수 있는 비전화제품을 여럿 발명했다. 방사냉각과 대류현상을 활용한 냉장고, 햇빛에 말리면 재사용할 수 있는 제습기, 벼를 넣고 핸들을 돌리면 현미가 나오는 가정용 탈곡기, 태양열 식품 건조기, 커피 원두를 맛있게 볶아내는 로스팅기, 야자껍질 활성탄을 채워 넣은 정수기 등이 그것이다. 중학생 정도면 만들 수 있게 고안한 이 도구들은 반영구적일 뿐 아니라 사용하는 즐거움이 특별하다. 예컨대 불 위에서 손으로 직접 흔들어서 커피를 볶는 비전화 커피 로스팅기는 갓 볶아낸 신선한 커피의 향기와 맛, 커피콩 달그락거리는 소리로 감각을 깨운다. 한 잔의 커피를 마시기까지 커피 원두가 거치는 유통 과정을 줄여서 생산자와 소비자에게 모두 이득이 되는 윤리적 소비이기도 하다. 작은 수고로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다.

전기 없이 쓰는 비전화제품들. 왼쪽은 커피 로스터, 오른쪽은 활성탄을 이용한 정수기다. 비전화공방 서울 제공

또다른 비전화제품들. 왼쪽부터 냉장고, 제습기, 가정용 탈곡기. 전기를 쓰지 않는 반영구적 제품이다.비전화공방 서울 제공

주어진 대로 살 것인가, 바라는 대로 살 것인가. 비전화 생활의 최종 목표는 바라는 대로 사는 삶, 곧 ‘자립’이다. 기존 삶의 방식에 의문을 품고 다르게 살고자 해도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해서 또는 불확실한 미래가 두려워서 한 발짝도 내딛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비전화공방은 대안을 제시한다.

1년간의 대안적ㆍ자립적 삶에

동참할 청년들 25일까지 모집

서울 공방은 자립으로 가는 실험에 동참할 청년(만 18~39세)들로 비전화 제작자 1기를 25일까지 모집한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1년 동안 진행되는 이 실험을 강 단장은 “스스로 내 삶을 바꿔 나갈 체력을 키우는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비전화 생활기술을 배우고, 자급자족을 위한 유기농법 농사를 짓고, 책을 읽고 토론하고 공부한다. 제작기술은 목공, 금속, 기계, 전기 등의 기초와 비전화 건축, 비전화 냉장고 등 각종 비전화제품과 방사능 측정기를 망라한다. 농사 지을 땅은 서울혁신파크 안의 구 질병관리본부 테니스장 터다. 자연농법으로 토종벼를 재배하는 우보농장과 함께 도시형 유기농업 농장을 만들어 운영한다.

최종 목표인 자립으로 가는 훈련에는 ‘스몰 비즈니스’ 만들기가 포함돼 있다. 후지무라 선생이 고안한 ‘한 달에 이틀 일하고 3만엔 벌기’를 기획하고 실천해 본다. 3만엔이면 한화 34만원 정도. 시골에서 자급자족을 하더라도 불가피하게 필요한 현금을 꼭 필요한 만큼만, 사회와 이웃에 도움이 되는 착한 일을 해서 벌자는 거다. 이틀은 돈을 벌고 나머지 날에는 자급자족을 위한 생산과 제작 활동을 한다. 자립도가 높아지면 자연히 소비 지출을 줄일 수 있으니 돈이 없어 괴로운 삶에서 벗어날 수 있다. 여기서 자립은 각자도생의 생존 전략이 아니라 공생의 자세다. 친구나 동료들과 연대해서 경쟁 대신 나눔으로 서로를 지탱해준다. 삶의 전환을 위해 시골로 온 청년들이 자립에 실패해 도시로 되돌아가는 것을 보고 고안했다는 3만엔 비즈니스는 일본에서 폭발적 호응을 얻었고, 실제로 이를 실천해서 행복해진 청년들이 많다고 한다. 그러나 생활비가 많이 드는 대도시 서울에서도 가능할지는 해봐야 안다. 비전화공방 서울은 일본 비전화공방을 그대로 수입하는 게 아니라 서울형 모델을 개발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비전화공방 서울의 강내영 단장이 비전화 커피 로스터를 보여주며 설명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ssshin@hankookilbo.com

비전화공방의 제안은 비현실적인 이상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대로 살아도 될까 의문이 든다면 해볼 만한 실험이다. 전기와 화학물질에 포위된 채 돈과 소비에 휘둘리는 삶, 거기에 접속된 플러그를 뽑는 일은 결국 삶을 재구성하려는 몸짓이다.

비전화공방 서울은 여기에 동참하려는 이들을 위해 다양한 프로젝트와 워크숍 등을 진행할 예정이다. 첫 해인 올해는 비전화카페를 만드는 데 주력할 계획이다. 카페를 짓는 것부터 카페에서 쓰는 도구와 제공할 메뉴까지 전부 비전화 방식을 적용하려고 한다. 강 단장은 “더디더라도 천천히, 비전화 방식으로 가겠다”고 말한다. 서울 공방은 사무실 책상과 의자를 빌리거나 중고로 샀다. 돈 주고 새 것을 사는 편한 길을 버렸다. 지금 공방 사람들의 최대 고민은 냉온정수기다. 종일 플러그를 꽂아둬야 하는 정수기 대신 전기를 쓰지 않고 필요할 때만 물을 데우는 방법을 찾고 있다. 문제에 부닥칠 때마다 하나하나 해결해나가야 한다. 실험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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