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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희 칼럼] MB, 이번엔 할 만한 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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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희 칼럼] MB, 이번엔 할 만한 일 했다

입력
2012.08.22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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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이면 마무리 국면이다. 노다 일본총리의 유감편지를 청와대가 반송하는 걸로 양국 간의 외교적 공방은 거의 끝났다. 일본의 국제사법재판소(ICJ) 제소는 무시하면 그만이다. 양국민의 정서적 앙금은 더 깊어졌지만 어차피 실리와 명분이 복잡하게 작동하는 국제관계의 속성 상 크게 우려할만한 것은 아니다.

결산 시점에서 무엇보다 거슬렸던 건 국내의 자중지란 양상이다. 일본에서도 강온 양론이 있었지만 방법론 수준이었다. 반면 우리의 논쟁은 MB의 독도방문과 일왕 사과요구 발언 자체를 원천적으로 문제시하고 조롱하는 데서 비롯됐다. 70% 가까운 일반국민의 긍정평가와 상관없이 정치권과 전문가집단, 인터넷 블로그나 댓글에서는 이런 투의 비판이 봇물을 이뤘다.

이전에 대통령으로서 가장 시원하게 독도문제에 대처한 이는 노무현일 것이다. 그는 2004년 4월 특별담화를 통해 일본을 진정한 평화의지 없는 불신국가로 정면 규정하고 독도문제를 더 이상 조용한 외교로 다루지 않을 것임을 천명했다.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 놓겠다"던 YS의 객기와는 다른 엄중한 공적 선언이었다.

민주당이 지난해 공식입장으로 "왜 대통령은 독도를 가지 않는가"고 질타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므로 형식논리상 이번 MB의 독도방문은 이런 흐름에 대한 자연스러운 응답이다. 결국 비판론자들 주장의 핵심은 꼴 보기 싫고, 뭘 해도 마음에 안 드는 MB가 했기 때문이라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 된다.

대표적인 비판 논거가 '뜬금 없는 시점'이다. 그러나 최근 일련의 일본측 행태를 보면 차마 그런 주장을 할 수 없다. 피 끓는 심정으로 세운 위안부 소녀상 철거를 일본총리가, 그것도 정상회담 자리에서 요구했다. 역사교과서 왜곡은 갈수록 노골화하고, 방위백서 등 도처 공식문건에 독도 영유권을 명문화하는가 하면, 얼마 전에는 일본인이 잠입해 그 슬픈 위안부 소녀상에 '독도는 일본 땅' 말뚝을 박았다. 이 정도 상황에서 어떤 점잖은 대응을 해야 하는가.

시점이 최적인지는 몰라도 최소한 나쁘지는 않다는 점은 다른 면에서도 설명된다. 지금은 한중일 3국의 확연하게 달라진 국가위상에 따라 동북아 질서가 급속하게 재편돼가는 과정이다. 중국이 굴기해 거침없이 제국의 팽창을 도모하고 있고, 국력이 전 같지 않은 일본은 기존 미일 중심의 기득권을 유지하려 안간 힘을 쓰고 있으며, 이미 만만치 않은 국가로 성장한 한국 역시 그 중심에서 확고한 위상을 확보하기 위해 전력을 기울여야 할 때다. 이 민감한 세력 재편기에 일본의 독도 야욕에 대한 단호한 대응은 우리의 권리를 분명하게 못 박는 대단히 상징적인 행위다.

"독도 방문은 그렇다 쳐도 일왕에 대한 사과요구는 지나쳤다"는 비판도 그렇다. 일왕은 그들에게나 절대적 존재이지 다른 나라 입장에선 똑같은 국가원수다. 더구나 일국의 왕비가 참살 당하고, 그 가계(家系)에 의해 국권침탈의 치욕을 당한 피해자 입장에서 달리 보아줄 이유는 없다. "예의를 잃었다"는 일본인들의 비난을 근거 삼는 비판은 그러므로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정작 예의를 갖춰야 하는 쪽은 애매한 표현으로나마 여러 번 사과하고도 행동은 전혀 다른 일본이다.

다만, MB의 독도 방문이 정교하게 계획되지 않은 정치적 산물이라는 비판은 정황상 충분히 개연성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이것도 이해하려 들자면 대통령의 통치행위에서 비정치성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비현실적이다. 남북정상회담조차 시기와 효과를 정치적으로 판단해 이뤄지는 법이니까.

MB의 실정(失政)을 줄곧 비판해온 입장에서도 이번에는 비판에 동의하기 어렵다. 오랜 역사를 통해 이해를 다퉈온 인접국가끼리는 자주 껄끄럽기 마련이다. 지레들 걱정하지만 이 긴장상황 또한 지나갈 것이며, 한일관계는 순환원리를 따라 또 어김없이 회복될 것이다. 그래도 우리의 확실한 의지만은 남을 것이다. 그거면 족하다.

이준희 논설실장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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