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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칼럼] 비아그라와 '한국 외교'

입력
2015.05.10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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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인터넷을 사용하다 보면, 감시 받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대표적인 게 남성 성기능 개선제인 ‘비아그라’광고다. 국제면 기사에 관심 많은 독자들이라면 ‘경찰의 매춘 단속으로 미 프로농구(NBA) 출신 해설가 그렉 앤서니(47)가 철창에 갇혔다’는 2월18일자 기사를 기억할 것이다. 당시 보도는 상당 부분 미 언론을 인용했지만, 인터넷 검색포털 ‘구글’로 매춘 관련 사이트도 검색했다.

문제는 그 이후 벌어졌다. 갑자기 뉴욕타임스나 워싱턴포스트 등 미국 사이트를 열람할 때마다 컴퓨터 화면 좌측 혹은 하단에 낯 뜨거운 광고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비아그라 광고는 물론이고 ‘워싱턴의 각국 미녀를 만나보라’는 노골적 내용의 광고였다. 취재 목적이었지만, 마흔을 넘은 중년 아저씨가 ‘주책 맞게’ 이상한 사이트를 찾아간 게 구글의 광고 촉수에 걸린 것이다. 요상한 광고는 한 달 가량 열심히 정치ㆍ외교ㆍ예술ㆍ경제 등 고상한 주제만 검색한 뒤에야 사라졌다. 최근에는 체력 단련을 위해 인터넷 쇼핑몰에서 자전거를 검색하자, 줄기차게 자전거와 헬멧 광고가 따라 다니고 있다.

미국에서는 ‘구글’이 인터넷이나 모바일을 통해 2억명이 넘는 사람의 개인 정보를 축적한 뒤, 각자의 개성과 취향에 맞게 일대일 광고를 내보내는 건 흔한 일상이 됐다.

이런 일상은 대서양이나 태평양을 건너면 심각한 안보 위협이 된다. 미국 회사, ‘구글’이 미국인의 생활패턴을 축적하는 게 사생활 침해는 될지언정 미국 정부에게는 안보 위협이 되지 않는다. 반면 그 나라 시민의 행태 정보가 ‘구글’에게 빨려 들어가는 프랑스(구글 점유율 96%), 독일(97%), 일본(40%) 정부에게는 중대한 ‘사이버 안보’위협이다. 실제로 과거 미국 정보당국은 ‘구글’로부터 감시 대상자의 인터넷 아이디와 이메일, 휴대폰 번호, 연락처 정보, 친구 목록 등을 제공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연합(EU)이 최근 구글에 64억달러(약 7조원) 과징금을 부과하고, 구글의 검색 서비스와 다른 서비스를 분리하는 내용의 정책을 추진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자국의 사이버 안보를 지키기 위한 고육책인 셈이다.

그런데 지구상에서 ‘구글’발 사이버안보 위협에서 자유로운 곳이 몇 나라 있다. 그 중에서도 한국은 독보적이다. 구글의 검색시장 점유율이 1.7% 내외에 머물기 때문이다. 1위인 네이버(72%)는 물론이고 2위인 다음(18%)과 비교해도 10분의1에 불과하다.

전세계를 쥐고 흔드는 미국 자본이 한국에 상륙했다가, 쫓겨난 건 이 뿐만이 아니다. 외환위기 직후 월마트가 한국에 진출했다가 이마트 등 국내 토종 할인점에 밀려나 철수했고, 세계 최대 자동차업체인 GM도 한국 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비아그라 광고를 끌어들여 몇몇 분야에서 우리가 미국 자본과의 경쟁에서 강한 모습을 보이는 걸 소개한 이유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 때문이다. 지난달 말 아베 총리 방미 이후 한국에서는 “대미 외교전에서 완패했고 ‘동네북’ 신세가 됐다”는 자조 섞인 평가가 나오는 모양이다. 하지만 물리적 안보에서는 대미 의존도가 절대적이지만, 사이버 분야에서는 그렇지 않은 것처럼 아베 방미에 대한 평가는 관점에서 따라 다를 수 있다.

아베가 워싱턴에 도착한 4월27일 일본 국가신용등급(A+ → A)이 강등됐다. 우리 대통령이었다면 ‘나라는 망하는데 외유나 하고 있다’는 비난이 쏟아졌을 것이다. ‘한국 외교가 눈치 본다’고 욕먹지만, 명ㆍ청 교체기 인조와 광해군 외교의 점수를 매기는 기준으로 따진다면 탓할 일이 아닐 수도 있다.

스스로 경계함이 중요하지만, 지나친 노심초사는 득이 되지 않음은 사람이나 국가나 마찬가지다.

조철환ㆍ워싱턴 특파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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