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 연장 땐 신규 채용 축소"… 500대 기업 70%가 밝혀
2020년 이후 수급 불균형 개선돼도 산업구조 변화 탓, 양질 일자리 부족
“내년부터 정년연장이 시행되면서 청년채용이 줄어들고, 베이비붐 세대의 자녀세대(에코세대)가 올해부터 2019년까지 노동시장으로 대거 진입하면 청년 고용절벽이 닥칠 수 있다. 청년들이 적시에 일자리를 찾지 못하면 노동력 상실에 따른 부작용이 개인을 넘어 우리 사회와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지난 20일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최경환 부총리의 이런 우려는 빈 말이 아니다. 우리 사회는 지금 청년실업 발(發) 복합 위기 직전에 와 있다. 사회생활의 출발점부터 기회를 놓친 세대는 미래 사회 전반에 먹구름이 드리울 수 있다. 문제는 쏟아지는 경고에 비해 뾰족한 대비책은 없는 상태라는 점이다. 향후 5년간의 청년고용 빙하기를 슬기롭게 넘기지 못하면 대한민국호의 성장동력도 급격히 약화될 거란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엄습하는 고용 빙하기
실업은 기본적으로 수요와 공급의 함수다. 매년 대학 및 대학원을 졸업하는 약 40만명의 일자리 수요에 비해, 이들이 원하는 양질의 일자리 공급량은 16만개(정부 1만8,000명, 공기업 2만2,000명, 30대 그룹 12만명)에 불과한 현실이 지금의 청년실업 사태를 이루는 골격이었다.
문제는 이 같은 수요ㆍ공급의 불일치가 향후 5년간 더욱 극심해진다는 점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달 말 발표한 ‘청년실업 전망과 대책’ 보고서에 따르면, 역대 최고 수준의 대학진학률(72.5~77.8%)을 기록했던 08~11학번 세대가 내년부터 2020년까지 매년 평균 32만명씩 취업시장에 쏟아져 나올 전망이다. 이들은 2차 베이비붐세대(1969~75년생)의 자녀인 2차 에코세대(90~96년생)와 겹쳐 인구규모도 크다.
반면 취업문은 크게 좁아진다. 내년 1월1일부터 공공기관과 300인 이상 대기업의 정년이 60세까지 일괄 연장되고 2017년부터는 300인 이하 중소기업에까지 확대 적용될 예정이다. 이에 따라 올해 1만6,000명인 대기업 은퇴자는 내년과 내후년 각 4,000명씩으로 반의 반토막까지 줄어들 전망이다. 올해 16만8,000명이 은퇴하는 중소기업 역시 내후년부터는 2년간 은퇴규모가 3만8,000명~4만명 수준으로 급감하게 된다.
이는 기업들의 채용 축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작년 말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조사에 따르면 500대 기업의 70% 가량은 “정년이 연장되면 신규 채용을 줄일 가능성이 높다”고 답했다. 기업들이 채용규모를 정할 때 1순위로 고려하는 것이 ‘적정인원’(48%). 경제여건(26%)이나 인건비 총액(20%)은 그 다음 문제였다. 결국 사람이 나가지 않으면 새로 뽑지 않는다는 얘기다.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 심화는 자연히 청년실업률 급등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미 월별 청년실업률이 10%를 넘는 경우가 속속 발생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두 자릿수 청년실업률이 고착화될 거라는 전망이 나온다. 특히 1주일에 36시간 미만 일하는 ‘불완전 취업자’까지 감안하는 청년 체감실업률은 올 6월 23%까지 치솟은 데 이어 향후 2~3년 내 30%를 위협할 것으로 예상된다.
무엇보다 큰 걱정은 취업시장에서 청년층의 소외현상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청년(15~29세)과 중장년층(30~59세)간 실업률 격차(2013년 기준 3.54배)는 이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고 수준이다.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지는 경우, 향후 극심한 세대간 갈등의 불씨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2020년 넘으면 문제 해소?
청년실업률 고공행진은 2018년을 정점으로 잦아들어 2025년엔 6.8%까지 떨어질 전망이다. 청년고용 빙하기가 표면적으로는 2020년 이후 해빙기에 접어든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는 인구구조 변화의 영향이 크다. 3~4년에 걸친 정년연장 충격기간이 끝나면 베이비붐 세대 은퇴자는 2019년 10만여명, 2020년 이후 20만명대로 다시 급증한다. 동시에 에코세대 이후 청년층 인구는 2018년 이후부터 감소세로 돌아설 전망이다. 청년고용 빙하기 때와는 반대로, 정상화된 기업들의 청년인력 수요는 어느 정도 유지되는 데 반해 청년층 공급이 크게 줄어들 거란 의미다. 한국고용정보원 분석에 따르면 2013년 40%에도 못 미쳤던 청년층 고용률(39.7%)은 2023년 50%에 육박(49.1%)할 걸로 전망된다.
꽉 막혔던 수요ㆍ공급의 불일치가 사라지면 문제는 해결되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청년들이 원하는 일자리를 얻지 못하는 본질적 불만은 사라지지 않을 걸로 본다. 산업구조 변화에 따라 ‘질 좋은’ 일자리는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는 탓이다. 김인석 대한상의 고용노동정책팀장은 “대학 졸업 후 중소기업에 가려는 사람이 갑자기 늘어나지 않는 한 청년층의 고용불만은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청년고용 빙하기의 후유증 역시 쉽게 치유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규용 한국노동연구원 노동통계연구실장은 “일자리 계층간 이동성이 크지 않은 국내 노동시장 특성상, 노동시장 진입시기의 일자리가 평생 고착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향후 5년간 양질의 일자리를 잡지 못한 계층은 줄곧 질 낮은 일자리에 머물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김용식기자 jawoh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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