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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Biz리더] “이케아는 제품보다 가격을 먼저 디자인한다”

입력
2017.09.0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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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잡화점에서 시작한 이케아

28개국 340개 매장 보유

연간 7억8300만명이 방문

#2

소비자 조립 플랫팩 가구로

운송ㆍ보관비용 확 낮추고

‘가구도 소모품’ 인식 심어

#3

제3세계 아동노동 착취 비판

2차 대전 나치에 가담 논란에

“젊었을 때 큰 실수” 사과도

세계 최대 가구기업 '이케아' 창업자 잉바르 캄프라드. 이케아코리아 제공
세계 최대 가구기업 '이케아' 창업자 잉바르 캄프라드. 이케아코리아 제공

세계 최대 가구 기업 이케아(IKEA)가 1974년 독일에 진출할 당시 ‘이바르(IVAR)’라는 장식장은 82유로에 판매됐다. 이 제품은 꾸준한 인기를 누렸는데, 2004년 가격이 69.5유로로 떨어졌다. 제품 가격은 대개 시간이 지나면 오르는데, 30년 사이에 오히려 15%가량 인하된 것이다. 30년간 물가상승률과 임금 구매력(제품을 구매하기 위해 일 해야 하는 시간)을 감안하면 가격 인하 폭은 75%에 달한다.

28개국 340개 매장을 보유하고, 연간 7억8,300만명이 매장을 방문해 342억유로(45조8,105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이케아는 이처럼 낮은 가격으로 전 세계 고객을 열광하게 한다. 그 비결은 창업자 잉바르 캄프라드(Ingvar Kampradㆍ91)가 이케아 제품 전체에 적용하는 확고한 철학, “새로운 제품을 만들기 전에 가격표를 먼저 디자인한다”에서 비롯된다. 제품 가격을 낮게 책정하면, 소비자들이 더 많이 구매하고, 제품을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어 그만큼 다시 가격이 낮아지는 선순환 구조를 유지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철학은 이케아 제품 전부에 적용된다.

그는 자신의 저서 ‘어느 가구상인의 유언장’에서 “3,000마르크짜리 (비싼) 책상을 디자인하는 것은 어떤 가구 디자이너도 할 수 있는 일”이라며 “정말 훌륭한 디자인이란 기능적이고 멋진 모습이면서도 단 200유로의 가격으로 판매할 수 있는 책상을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섯 살 때부터 ‘장사’ 재미… 타고난 장사꾼

캄프라드는 스웨덴 수도 스톡홀름에서 남서쪽으로 400㎞ 떨어진 스웨덴 최남단 엘름휼트 지역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이 지역은 자갈과 바위가 많은 데다 1년 중 절반이 눈보라가 치는 척박한 곳이다. 그는 자연스럽게 생활력이 강하고 절약이 미덕인 환경에서 자라게 됐다.

어린 시절 상점을 운영하는 외가에서 할머니와 많은 시간을 보냈던 그는 다섯 살 때부터 ‘장사’를 시작했다. 성냥을 구입해 할머니나 주위 어른들에게 조금 더 비싼 값을 받고 되파는 식이었다. 재미를 붙인 ‘꼬마 사업가’는 직접 잡은 생선과 시계, 펜, 크리스마스 카드를 팔며 사업을 점차 확대했다.

캄프라드는 1943년 17세 때 아버지에게서 받은 돈으로 ‘이케아’라는 작은 잡화점을 열었다. 이케아란 이름은 그의 이름 이니셜 IㆍK와 그가 어린 시절 누볐던 농장 이름 엘름타리드(Elmtaryd), 고향마을 아군나리드(Agunnaryd)의 첫 글자를 조합한 것이다.

그러나 우연히 지역 장인들이 수공예로 만든 가구들도 매장에 들여와 판매하기 시작했다. 높은 판매율에 고무된 캄프라드는 가구사업과 생활용품 판매에 집중하기로 하고 1953년 처음으로 상설 가구전시장을 선보였다. 이듬해 300만 크로네(약 4억3,400만원)의 매출을 올릴 정도로 사업이 번창했다.

세계 최대 가구기업 '이케아' 창업자 잉바르 캄프라드. 이케아코리아 제공
세계 최대 가구기업 '이케아' 창업자 잉바르 캄프라드. 이케아코리아 제공

조립식가구, 불편해도 싸면 팔린다

캄프라드는 본격적으로 가구 사업을 시작한 초기 ‘카탈로그’ 제작을 위해 디자이너를 고용했다. 매장 방문 전 고객이 미리 원하는 가구를 선택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였다. 이 카탈로그는 1950년대 중반 이미 50만부를 발송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이케아 디자이너들은 카탈로그에 실을 사진을 위해 가구를 잘 배치한 후 촬영해야 하는데, 촬영 전후 옮길 때마다 큰 부피 때문에 매번 애를 먹었다. 한번은 탁자를 차 트렁크에 실으려다 네 다리 때문에 곤란을 겪게 됐다. 고민 끝에 네 다리를 떼어낸 채로 차에 실은 뒤 회사에 도착해 탁자를 다시 조립했다. 이 장면을 지켜본 캄프라드는 여기서 힌트를 얻어 ‘플랫 팩(flat pack)’ 콘셉트 가구를 개발했다.

‘플랫팩 가구’는 완성되지 않은 가구 부품을 납작한 상자에 담아 판매하면 소비자가 쉽게 집으로 가져가 직접 조립하는 가구를 말한다. 이케아를 상징하는 ‘플랫팩 가구’는 운송비와 보관비용을 낮춰 경쟁업체보다 훨씬 저렴하게 팔 수 있고 또 배송 과정에서 파손도 줄어든다. 캄프라드는 플랫팩 가구를 점차 확대했고, 큰 성공을 거뒀다.

이케아는 1963년 노르웨이에 매장을 열면서 해외에 진출을 시작했다. 이후 덴마크(1969년), 스위스(1973년), 독일(1974년), 미국(1985년), 영국(1987년) 등으로 영토를 확장해 나갔다. 2014년 12월 경기 광명시에 1호 매장(광명점)을 열면서 한국에도 진출, 지난해 매출 3,650억원을 기록하며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올해 10월에는 경기 고양시에 2호점도 개점한다. 안드레 슈미트갈(48) 이케아코리아 대표는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1조2,000억원을 투입해 2020년까지 한국 내 매장을 6곳으로 확대하고, 온라인쇼핑몰도 열 생각”이라며 공격적 투자를 예고하기도 했다.

해외에서도 이케아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저렴한 가격이다. 어떤 나라에서 팔리는 책장 가격이 얼마인지 먼저 조사하고, 경쟁사 제품 평균 가격보다 현저하게 낮은 가격을 책정한다. 그런 다음에 이 가격에 맞는 재료와 디자인, 납품업체를 선정하는 것이다.

잉바르 캄프라드는 자신을 다룬 책 ‘어느 가구상인의 유언장’에서 “우리는 디자인이 아름답고 기능이 뛰어난 가구와 집기들을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이 구매할 수 있을 만큼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해야 한다”며 “낮은 가격을 유지하려면 어떤 노력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경쟁자들과의 확실한 가격 차이는 필수적이다. 모든 영역에서 우리는 언제나 가장 저렴한 매장이어야만 한다”고 밝혔다.

2014년 12월 경기 광명에 문을 연 이케아 매장. 이케아코리아 제공
2014년 12월 경기 광명에 문을 연 이케아 매장. 이케아코리아 제공

“가구는 소모품, 더 쉽게 더 자주 바꿔라”

제작부터 판매에 이르기까지 ‘불필요한 친절함’을 철저히 제거하고 최소한의 비용만을 들여 고객에게 저렴한 제품으로 돌려주는 이케아의 전략은 한번 구매하면 거의 평생 사용하던 가구에 대한 소비자의 인식을 바꿨다. 가구도 소모품이라는 것이다.

이케아는 고객에게 ‘가구는 소모품’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한 작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왔다. 사용하던 가구에 대한 집착을 떨치고 더 쉽게 그리고 더 자주 스타일과 가구를 바꾸도록 이끈 것이다. 우선 광고를 통해 빈번한 가구 교환의 장점을 적극 홍보했다. 미국의 일반 소비자는 소파보다 자동차를 더 자주 교체한다. 평생 식탁을 바꾸는 일은 1.5회에 불과하다. 이케아는 적극적인 캠페인을 벌여 그런 경향을 바꾸려고 했다. 한 텔레비전 광고는 길거리에 버려진 램프의 운명을 보여준다. 낡은 램프가 다른 쓰레기들과 함께 길가에 버려져 있다. 어둡고 세찬 비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한다. 시청자들의 동정심이 발휘되기 시작할 무렵 한 남자가 우산을 쓰고 나타나 스웨덴 억양으로 말한다. "이 램프가 안 됐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정신이 나간 사람들입니다. 램프는 감정이 없습니다. 그리고 새 램프는 훨씬 좋습니다."

독일인 역시 집안의 가구를 통째로 사들이고, 한번 사서 들여놓으면 영원히 지켜낼 듯 소중히 여기는 관습에 젖어 있었다. 이케아는 독일 홈페이지에 “이제는 누구나 쉽게 디자인 제품을 즐길 수 있기 때문에 자기가 쓰던 가구를 자식들에게 물려주려고 해서는 안 된다. 아이들 역시 어떻게 집을 꾸밀지 스스로 결정하는 재미를 누려야 마땅하다”는 문구를 잘 보이는 곳에 배치했다.

모든 나라가 이케아 스타일을 쉽게 받아들인 것은 아니다. 영국 소비자들이 단순하고 현대적인 가구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을 간파한 이케아는 “영국적인 것, 오 이제 제발 그만!”이라는 도발적인 슬로건을 내걸며 공격적인 캠페인을 펼치기도 했다. 영국 여류 작가 엘렌 루이스는 “이케아가 인테리어를 자주 바꾸는 세대, 이른바 ‘체인징-룸-제너레이션’을 만들어 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경영 일선서 물러난 지 30년… “할 일 많아 죽을 시간도 없다”

이케아를 글로벌 기업으로 키운 캄프라드는 재산이 517억달러에 달해 2013년 미국 포천이 선정한 세계 500대 억만장자 가운데 4위에 이름을 올렸다. 그는 ‘스웨덴의 스티브 잡스’ 로 추앙받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이케아의 불투명하고 복잡한 지배구조 때문에 비판을 받고 있다. 캄프라드는 이케아의 몸집이 커지자 경영권을 지키기 위해 지배구조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이케아는 아직까지도 비상장기업이다. 게다가 창업자인 캄프라드 가족이 소유한 별도 조직이 있다. 이 조직은 이케아 매장들이 사용하는 이케아의 상표권, 제품 디자인 등 지식재산권과 프랜차이즈 허가권을 가진 ‘인터 이케아 시스템즈‘를 보유하고 있다.

캄프라드는 1986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아직도 경영에 조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 매체 ‘비즈니스 인사이더’에 따르면 2년 전 캄프라드는 “곧 이케아를 세 아들에게 넘겨줄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자, “할 일이 많아 죽을 시간도 없다”며 보도를 부인했다. 이케아코리아 관계자는 “캄프라드 창업주는 이케아와 관련해 공식 직함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기업 문화나 기업 가치를 업데이트할 때 자문해주는 거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뿐만 아니라 이케아가 저가전략을 유지하기 위해 제3세계 아동노동을 착취한다는 비판도 있고, 캄프라드가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에 가담했다는 사실이 1994년 뒤늦게 알려져 논란이 일자 “젊었을 때 큰 실수를 저질렀다”고 공식 사과하기도 했다.

박민식 기자 bemyself@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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