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구 기자

등록 : 2018.05.17 04:40
수정 : 2018.05.17 10:15

여성안심화장실? 비상벨도 없어요

[강남역 살인사건 2주기]

등록 : 2018.05.17 04:40
수정 : 2018.05.17 10:15

인근에 CCTVㆍ경비원도 없어

위급상황 때 도움 요청 못해

“인기척에 소스라치게 놀라고

화장실 근처 남자만 봐도 불안”

서울 강남역 인근 건물 1층에 설치된 여성안심화장실. 강진구 기자

“화장실 근처에 남자가 서 있기만 해도 불안해요.”

직장인 김나연(27)씨는 서울 강남역 살인 사건이 발생한 2016년 5월 17일 이후로 공공화장실을 되도록 이용하지 않는다. 성별이 분리된 곳이어도 안전하지 않다고 느껴서다. 김씨는 “제때 화장실을 못 가더라도 공공화장실은 가지 않으려는 편”이라며 “어쩔 수 없이 이용할 때에도 화장실이 안전한지부터 습관적으로 확인한다”고 토로했다. 늘 긴장 속에서 화장실을 가는 스스로에게 짜증낸 적도 하루 이틀이 아니다.

강남역 10번 출구 인근 빌딩 상가 2층 공용화장실에서 20대 남성이 이유 없이 20대 여성을 살해한 지 2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여성이 화장실 사용을 꺼리는 등 사회적 사고후유장애(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사건이 발생했던 서초구를 비롯한 여러 지방자치단체는 일부 공공화장실을 여성안심화장실로 지정했지만, 많은 시민이 “아직도 불안한 부분이 많다”고 비판하고 있다.

실제로 여성안심화장실 다수가 안전에 취약했다. 강남역 인근에 위치한 서초구 지정 여성안심화장실은 총 9곳. 이 중 오후 10시 이후 심야시간에 사용할 수 있는 화장실은 7군데였다. 그런데 이 7개 중 화장실 내 위급 상황 시 외부로 알릴 수 있는 비상벨을 설치한 곳은 한군데도 없었다. 심지어 화장실 인근에 폐쇄회로(CC)TV와 경비원이 없는 건물도 있었다.

이에 대해 구청 관계자는 “여성안심화장실 설치 기준은 남녀 구분 및 CCTV 설치 여부, 조도, 청결도 등”이라며 “비상벨 및 24시간 개방은 기준 사항이 아니며, 화장실 앞에 CCTV가 설치된 곳이 많지 않아 건물에 설치만 돼 있어도 허가한다”고 말했다. 그마저도 강남구 관할인 강남역 11번 출구 인근 강남역거리에는 여성안심화장실이 하나도 없다.

강남역 살인사건 2주기를 앞둔 16일 서울 동작구 성평등도서관 여기를 찾은 한 시민이 이곳에 보관중인 추모쪽지를 보고 있다.성평등도서관 '여기'는 강남역 살인사건 직후 시민들이 강남역 10번 출구 등 전국에 남긴 3만5000여건의 추모쪽지를 보관하고 있는 곳이다. 뉴스1

여성들은 화장실 안전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남녀 공용화장실이 분리되고, 여성안심화장실이 설치됐다고 해서 화장실이 성범죄로부터 자유로워진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최근 친구가 ‘몰카’ 범죄 피해를 당했다는 현모(25)씨는 “성폭력으로부터 안전한 공공화장실은 없다고 생각한다”며 “친구의 몰카 피해를 접한 이후로는 여자 전용화장실에서도 바깥 인기척에 소스라치게 놀란다”고 말했다. 일부 여성은 ‘잠금 장치가 제대로 설치돼 있는지 확인한다’ ‘화장실 내부에 구멍이 없는지 살펴본다’ 등 안전한 화장실을 확인하는 자신만의 방법을 온라인에 공유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화장실 안전설비 개선과 동시에 성평등 인식이 사회 전반으로 확대돼야 한다고 조언한다.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처장은 “강남역 살인 사건 이후 많은 성폭력 문제가 제기됐으나 가시적으로 달라진 것은 없다”며 “화장실 안전 조치를 넘어서 애초 성폭력이 발생하지 않도록 성평등 의식이 정착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배복주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상임대표는 “강남역 살인 사건은 여성 전체가 겪는 트라우마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남녀가 신뢰 및 공존할 수 있는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서울시와 시 여성가족재단은 ‘성평등정책ㆍ현장자료 디지털아카이브시스템’을 연말까지 구축해 강남역 살인 사건 당시 시민들이 포스트잇에 작성한 추모 메시지 3만5,000점을 디지털화해 영구 보존하고 시민들에게 공개하기로 했다. 시는 수만 장의 포스트잇 메시지가 당시 여성들의 공분과 공감을 상징하는 등 의미가 크다고 보고 이를 모두 한 장씩 스캔해 남기겠다는 방침이다.

강진구 기자 realn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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