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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이니 팬덤'의 레드 라인

입력
2017.09.10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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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말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소통광장 국민청원 및 제안 코너에 '여성가족부 장관의 경질을 청원합니다'라는 글이 올라왔다. 9월 초까지 모두 8,700여명이 동의해 베스트 청원의 하나로 분류된 이 글은 "(정현백 장관이) 대통령의 인사권에 개입하면서 그것이 자신의 권한 내지 합당한 역할인 양 호도하고 근본적으로 사안의 본질을 흐리는 망동을 거듭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인사권 개입 운운은 정 장관이 성차별과 왜곡된 젠더 의식을 드러낸 탁현민 청와대 행정관의 경질을 대통령에게 건의하겠다는 발언을 지칭한다.

▦ 정 장관이 탁 행정관 경질 건의를 약속한 것은 국회 인사청문회 자리에서다. 하지만 진전이 없자 야당은 '문재인 정부 100일 TV 토크쇼' 논란이 제기된 지난 달 21일 약속 불이행을 따져 물었고 정 장관은 "의견을 전달했으나 결과에 무력했다"고 무력감을 토로했다. 당시 정 장관이 고군분투하자 임종석 비서실장이 "의견을 듣고 청와대는 종합적으로 판단했다"고 두둔해 일단락되는 듯 했다. 이른바 '문빠 댓글부대'가 분기탱천한 것은 정 장관이 지난 달 28일 "앞으로도 다양한 통로를 통해 노력하겠다"며 힘 없이 물러섰기 때문이다.

▦ 하지만 소관 사안에 대한 여론과 야당의 요구를 청와대에 전달하겠다는 장관의 발언을 문제 삼아 경질 청원을 제기하고 이것이 베스트 청원 반열에 오른 것은 문제제기 방식의 '레드 라인'을 넘었을 뿐아니라 문재인 대통령에게 짐만 지우는 일이라는 비판이 많다. 야당이 "직분에 충실한 여성부장관을 택할지, 무소불위의 황제 행정관을 택할지, 대통령이 답하라"고 나선 것만 봐도 그렇다. 한 진보 인사는 '한겨레21' 대통령 얼굴 표지사건과 박용진 민주당 의원의 '반찬 부실' 논란 때의 문자폭탄에 버금가는 '광기'라고 우려하기도 했다.

▦ '이니 굿즈'(문 대통령의 별명인 ‘이니’와 상품을 뜻하는 ‘굿즈(goods)’의 합성어)의 결정판인 '이니 시계'에 목을 매는 사람이 많아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의 스트레스가 보통이 아니라고 한다. 입 소문이 나자 구해달라는 요청은 많은데 증정 기준을 '청와대 초청 외빈'으로 못박아 놓아서다. 과거 개도 안 물어갈 정도로 흔했던 대통령 시계를 생각하면 '이니 팬덤(fandom)'으로선 고공 지지율 이상으로 무척 자랑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금도를 잃은 맹목적 팬덤은 흉기가 된다. 이번 청원소동은 결정적인 사례다.

이유식 논설고문 jstino57@hankooko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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