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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민주주의 과정의 실패와 헌법재판

입력
2017.03.12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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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사건에서 헌법재판관 8인 전원 찬성으로 대통령에 대한 파면 결정이 내려졌다. 결정문에서 헌법재판소는 피청구인인 박 전 대통령의 법 위배행위가 헌법질서에 미친 부정적 영향과 파급 효과가 중대하므로, 국민으로부터 직접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 받았던 피청구인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수호의 이익이 대통령 파면에 따르는 국가적 손실을 압도할 정도로 크다고 판단하였다.

민주적 절차에 따라 적법하게 선출된 대통령의 신분상 지위에 관한 종국적 결정이 8인의 헌법재판관들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을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는 것인지를 두고 논의가 분분하다. 공법이론적으로도 민주주의 과정을 통해 선출된 공무원의 헌법상 지위에 대한 법적 판단이나 민주적으로 선출된 국민의 대리인으로서 국회의원들이 의회에서 적법한 절차에 따라 제정한 법률의 위헌여부에 대한 판단이 사법부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 그 정당화 근거는 무엇인지가 가장 핵심적인 주제 중 하나이다.

우선 생각해볼 수 있는 근거는 민주적 절차를 통해 선출된 주권자의 대리인으로서 공무원이나 의원들이 그 권한을 위임한 주권자의 의사에 반하게 행사하는 상황에 대한 대비이다. 이른바 주인-대리인의 문제상황이다. 이번 탄핵심판 결정문에 나타난 바와 같이 대통령과 같은 공무원이 위임받은 권한을 남용해서 본인 혹은 주변인의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상황이라면, 그리고 그 권한 남용을 행정부 내부적인 견제장치로 제어하거나 다음 선거에서의 새로운 정치적 선택을 통해 해결하는 것이 여의치 않은 경우라면 헌법재판을 통해 민주주의 과정의 실패를 교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경우 어느 정도의 권한 남용이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행위로서 헌법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헌법과 법률 위배행위인지에 대한 법적 판단이 중요하다.

다음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근거는 투표제도, 다수결원리 등에 터 잡고 있는 민주주의 자체가 절차적으로 국민들의 공법적인 의사를 정합적으로 결집해내는 데 실패하고 있을 가능성이다. 18세기 프랑스 사상가이자 수학자이던 콩도르세는 일정한 조건 하에서 다수결원리는 선택 대안들 사이에서 일관된 투표 결과를 제시하지 못할 수 있다는 이른바 투표의 역설을 수학적으로 증명한 바 있다.

선택 대안인 A, B, C를 두고 투표를 진행한 결과 A보다는 B가, B보다는 C가 선호되었는데, C와 A를 놓고 투표를 하면 C보다는 다시 A가 선호되는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민주주의 과정 속에서 선택의 대상인 의안을 상정하는 방식과 순서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결과가 도출될 수 있고, 의안을 상정하는 권한을 가진 정치적 주체의 의지에 의해 민주적 선택의 결과가 왜곡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정치와 입법의 과정에서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각종 이익집단의 역할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도 문제이다. 이익집단의 활동 상황에 따라 과다 대표되거나 과소 대표되고 있는 정치적 이익들이 있다면 그 정치적 결과를 사법심사 과정에서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교정할 수 있을 것인지가 중요한 문제로 등장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생각해볼 점은 민주주의 과정 속에서 모든 권위의 원천인 주권자의 의지가 장기적 관점과 단기적 관점에서 다르게 파악될 수 있음에 관한 것이다. 헌법적 가치에 따라서는 단기적인 선거와 여론의 국면에서 표출되는 주권자의 의지와 장기적인 헌법 가치의 수호를 명하는 주권자의 의지 사이의 괴리가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헌법재판은 단기적이고 가변적인 주권자의 의지와 장기적이고 일관성 있는 주권자의 의지를 헌법적으로 어떻게 조화롭게 구현할 것인지의 어려운 과제를 안게 된다.

이번 탄핵심판 과정에서 대한민국은 더할 수 없이 소중한 헌법 교육의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부디 그 과정에서 겪은 고통과 상처가 결국 더 나은 대한민국을 만들어나가는 자양분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허성욱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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