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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석배 계명대 음악공연예술대학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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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석배 계명대 음악공연예술대학 학장

입력
2017.07.15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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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석배 계명대 음악공연예술대학 학장. 성악의 본고장인 이탈리아 밀라노 국제성악콩쿠르 ‘마그다 올리베로’에서 그의 이름을 딴 상을 제정해 수여하고 있다.
하석배 계명대 음악공연예술대학 학장. 성악의 본고장인 이탈리아 밀라노 국제성악콩쿠르 ‘마그다 올리베로’에서 그의 이름을 딴 상을 제정해 수여하고 있다.

“지방에서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세계적인 무대로 진출하기 어려울 거란 학생들의 우려를 깨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성악의 본고장인 이탈리아 밀라노 국제성악콩쿠르 ‘마그다 올리베로’에는 한국인의 이름을 딴 상이 있다. ‘하석배상’이다. 한국에서 후학을 양성하며 국제 콩쿨에서 큰 성과를 낸 하석배 교수의 활동을 높이 평가해 2015년부터 수여하고 있다. 동양인 성악가 이름으로 제정된 최초의 특별상이다. 3등 정도에 해당하며, 수여자는 한국인으로 한정하고 있다.

“앞으로 이런 상들이 많이 늘어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그중에서도 서울이 아닌 지방에서 활동하는 친구들은 외국에 나오면 실력과 상관없이 잔뜩 위축됩니다. 그런 친구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이는 하 교수 본인의 경험이기도 했다. 그의 고향은 경상남도 진주다. 음악 교육환경이 부족해 대학교 진학 전까지 1주일에 한 번씩 서울로 올라가 레슨 받았다. 초등학교부터 성악 콩쿨에 나간 이후, 경남 쪽에서는 ‘하석배 이름이 있으면 지원하지 마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상을 휩쓸었지만, 서울로 대학을 진학한 뒤 상황은 바뀌었다. 처음 좌절감을 맛보았다.

“전국에서 내로라는 친구들이 모인 곳이라 실력으로 두각을 드러내기도 힘들었죠. 거기다 사투리도 심하고 혼자서 자취생활을 한 까닭에 행색도 꾀죄죄했으니 음악 외적인 요인 때문에라도 위축될 수밖에 없었죠.”

- 이탈리아에는 서울도 지방도 없었다

대학교 2학년 때 기회가 찾아왔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디션이 그 계기였다. 학교별 경쟁도 치열했고 자신감도 많이 떨어진 상황이라 큰 욕심 없이 오디션을 봤는데 결과는 당당히 합격이었다. 자신감이 생겼다.

장학금을 받고 미국에 진출하려고 준비하다가 교수님의 권유로 이탈리아 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비행기 안에서 이태리어를 공부했을 만큼 갑작스런 결정이었지만, 그래도 자신감을 잃지 않으려고 애썼다.

“이탈리아에 가자마자 놀라운 경험을 했어요. 첫 수업 때 제 노래를 들은 담당교수가 ‘누구에게 배웠냐’면서 ‘가르쳐준 선생님께 감사해라. 발음도 좋고 너무 잘 한다’는 칭찬을 쏟아냈습니다. 그 한 마디에 더 이상 두려울 게 없었습니다.”

이태리로 떠난 지 2년 만에 베르디 파르마 비요띠 비냐스 등 세계 최고 권위의 국제 성악 콩쿨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27살 때였다. 이후, 30살이 되기 전 30여 개 국이 넘는 나라의 200여 개의 극장에서 수백 번의 공연을 했다. 그는 “여름옷을 싸들고 나가서 겨울에 집으로 돌아올 만큼 바쁜 나날이었지만 늘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었기에 하루하루가 즐거웠다”고 말했다.

- 지방과 세계는 이미 한 무대

한국으로 돌아온 것은 37살 무렵이었다. 10여 년간 해외 투어 공연을 하며 경험을 쌓다가 국립오페라단 아이다 공연을 위해 대구를 찾았다. 그때 계명대학교에서 테너 자리가 비었으니 학생들을 가르쳐 달라고 요청했다. 제의를 흔쾌히 받아들여 대구에 자리를 잡았다.

“화려한 유럽 무대를 뒤로 하고 왜 서울도 아닌 대구로 오는 건지 의아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오랜 시간 챙겨드리지 못한 부모님께 효도도 하고, 소위 ‘지방’ 딱지 때문에 힘들어하는 학생들에게 용기도 주고 싶었습니다.”

한국에 오자마자 학생들을 독려해 적극적으로 콩쿨에 내보냈다. 대부분 ‘부끄러워서 못 나가겠다’는 반응이었지만, ‘어차피 부끄러울 거면 일찍 부끄러운 게 낫다’고 다독였다. 처음엔 어려워하던 친구들도, 좋은 성적을 받으며 자신감을 붙여나갔다.

“지금은 인터넷이 발달했기 때문에 조금 나아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지방에 있어 할 수 없다는 위축감이 있습니다. 큰 착각입니다. 서울을 가도, 밀라노를 가도, 도쿄를 가도 다 비슷합니다. 지금 있는 곳에서 최선을 다하면 세계의 무대에서도 잘한다는 걸 학생들에게 알려주고 싶어요.”

- 사랑하는 음악을, 사랑받는 음악으로

5년 전 계명대학교 음악공연예술대학 학장을 맡았다. 행정 업무가 많다. 지인들 중에는 “음악 하는 사람이 업무 때문에 힘들겠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지만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학교 일을 하며 사람들을 많이 만납니다. 세상을 배우는 것이죠. 음악만큼이나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방송에도 열심이다. 마니아가 아닌 대중에게 클래식을 알리고자 MBC ‘오늘 아침 이문세입니다'의 클래식 코너에 출연해 매주 1번 라디오 생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같은 맥락으로 고전 가곡을 현대 사람들 귀에 맞게 세련되게 고치는 작업도 하고 있다. 오페라는 어디서든 많이 들을 수 있고, 작업도 많이 이루어지는데 반해 가곡 작업은 접하기도 쉽지 않고 작업하는 사람들도 거의 없다. 가곡이 다시금 사랑받기 위해서는 최근의 취향에 맞는 요소를 넣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원본을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편곡하고 있다. 독창회 때마다 조금씩 선보이면서 완성도를 높여가고 있다.

“대중이 외면하는 무대는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대중들이 클래식에 관심을 가지고, 공연장에 올 수 있도록 좋은 음악을 알리는 일, 그리고 찾아오신 분들에게 멋진 공연을 들려드리는 일, 둘 다 놓칠 수 없습니다. 늘 바쁘지만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두 작업 모두 멋지게 해내고 싶습니다.”

윤희정기자 yoo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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