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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수데텐란드와 개성공단

입력
2016.02.1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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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 유럽은 전운이 감돌았다. 히틀러의 나치당이 집권한 독일은 강력한 국가재건을 부르짖으며 대외적 팽창정책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시작이 1936년 독일군의 라인란트 진주였고 두 번째가 1938년 체코슬로바키아의 수데텐란드 병합이다. 당시 체코 영토였던 수데텐란드는 독일인이 대거 이주해 살았는데, 지역 나치당이 독일과 합병을 끊임없이 요구했다. 이를 빌미로 히틀러는 수데텐란드 병합을 요구하며 체코를 위협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영국과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가 뮌헨에서 마주 앉아 협상을 벌였고 그 결과 1938년9월30일 체결된 것이 뮌헨협정이다. 협정의 요지는 제 1차 세계대전에 이어 또다시 유럽이 전쟁에 휩싸이는 것을 막기 위해 수데텐란드를 독일에 넘겨주는 대신 독일은 전쟁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정작 당사자인 체코를 배제한 채 이뤄진 협정을 통해 수데텐란드는 하루 아침에 독일로 넘어갔다.

회담을 마치고 런던으로 돌아간 네빌 체임벌린 영국 수상은 구름처럼 모인 군중을 향해 “여기 유럽의 평화가 있다”고 협정문을 흔들었다. 그로부터 1년 만에 독일은 폴란드를 침공하며 제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지금 개성공단 사태를 보면 수데텐란드가 떠오른다. 정부가 조업중단을 선언하고 북한이 맞받아 폐쇄한 개성공단은 유럽평화를 위해 희생된 수데텐란드처럼 졸지에 희생양이 돼 버렸다. 그 바람에 쫓겨난 우리 입주기업들은 하루 아침에 모든 것을 잃을 처지에 놓였다.

입주기업들이 가장 원통해 하는 것은 정작 개성공단의 운영주체 중 하나였는데도 철저하게 소외돼 미처 피해를 최소화할 틈이 없었다는 점이다. 마치 뮌헨협정에서 배제된 체코슬로바키아 처지가 된 셈이다. 정부는 정책의 긴급성과 불가피성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며 입주 기업들에게 유감이라고 밝혔지만 과연 그것이 최선이었는지 의문이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를 끌어내기 위해 우리가 먼저 조치를 취해야 하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겠지만 시점 조율을 통해 우리 국민인 입주기업 관계자들의 피해를 줄이려는 노력을 더 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영국과 프랑스가 뮌헨협정에 서명한 것은 크게 두 가지를 오판한 때문이었다. 전쟁에 대한 공포심이 당시 영국, 프랑스보다 뒤졌던 나치 독일의 군사력을 지나치게 위협적으로 보이게 했고, 수데텐란드를 떼어주면 나치 독일이 얌전해 질 것이라는 허황된 기대를 가졌다. 잘못된 판단이 그릇된 결과를 낳은 셈이다.

우리 정부의 개성공단 조업 중단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과연 폐쇄로 이어진 우리 정부의 개성공단 조업 중단이 효과적인 대북 제재를 이끌어 내면서 북한의 핵개발 포기를 가져올 수 있을까. 더 이상 견디지 못한 북한이 손을 들고 미사일과 핵 개발을 모두 포기할 까.

정부는 개성공단 폐쇄 근거로 북한이 개성공단 노동자들의 임금을 핵과 미사일 개발에 전용한 자료를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개성공단을 폐쇄하지 않고 운영에 협조한 건 설명이 되지 않는다. 장거리 미사일 개발로 이어지기 전에 개성공단을 폐쇄하지 않은 이유와 진작에 입주기업들의 철수를 지시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 지.

그러다 보니 정부의 전격적인 개성공단 조업 중단 조치를 쉽게 납득하기 힘들다. 하물며 정부를 믿고 들어 갔다가 삶의 기반을 잃게 된 입주기업들의 배신감과 실망이야 오죽할까. 정부의 절대적인 존립 근거는 국민들의 신뢰다. 이렇게 되면 입주기업들 뿐만 아니라 많은 국민들의 정부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게 된다.

체임벌린이 항구적인 평화 보장으로 믿었던 뮌헨협정은 실패한 정책으로 평가 받는다. 역사의 가정은 의미 없지만 영국과 프랑스가 뮌헨협정 대신 다른 방법을 찾았다면 제 2차 세계대전의 비극을 막을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훗날 정부의 개성공단 조업 중단은 어떤 평가를 받을 지 궁금하다.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져 입주기업들만 고통을 겪고 끝난 정책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최연진 산업부장 wolfpa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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