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등록 : 2017.12.09 04:40
수정 : 2017.12.10 08:48

[SF, 미래에서 온 이야기] 사막화되는 지구에서 살아남으려면 이 책을 펼쳐라

<39> 프랭크 허버트의 ‘듄’

등록 : 2017.12.09 04:40
수정 : 2017.12.10 08:48

#1

미 오리건 모래언덕 모티프 삼아

작가 일생 바친 대하장편 시리즈

물고 물리는 지구의 환경 상징

생태주의로 접근한 최초의 SF

#2

이슬서 물 회수하는 소설 속 장치

세계 곳곳에 설치돼 연구 한창

사막화ㆍ황사 등 지구적 재난에

생존의 지혜 선구적으로 제시

미세먼지와 황사로 뿌옇게 보이는 서울 마포대교. 전 지구적인 온난화와 이로 인한 사막화가 진행되면서 우리나라 역시 몽골 사막에서부터 날아오는 황사와 미세먼지의 피해를 입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1895년 이래 최악의 가뭄에 시달렸다. 5년간 지속된 가뭄으로 저수지는 말라붙었고 1,250만 그루의 나무가 말라죽었다.

주 정부는 167년 만에 절수명령을 시행해 물 배급을 25% 줄여야 했다. ‘가뭄 종료’ 선언이 된 것은 겨우 올해 4월 7일이었다. 하지만 계속되는 지구온난화를 생각하면 이런 대규모 가뭄은 언제 다시 닥칠지 모른다.

캘리포니아주립대의 과학ㆍ환경정책 교수인 다니엘 페르난데스는 오래 전부터 ‘바람덫’과 ’이슬응결기’ 연구에 골몰하고 있다. 이는 프랭크 허버트의 SF 소설 ‘듄’에 나오는, 공기 중의 수증기를 수집해 먹는 물로 바꾸는 장치다. 지역사회에 물 관리 서비스 앱을 제공하는 스타트업 회사 워터스마트의 창립자 피터 욜레는 ‘사막복’에 꽂혀 있다. 마찬가지로 소설 ‘듄’에 등장하는, 몸에서 나는 수분을 재활용하는 옷이다. 이들은 사막화되어가는 캘리포니아를 구하려면 소설 ‘듄’의 지혜를 배울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캘리포니아주립대 다니엘 페르난데스 교수는 프랭크 허버트의 SF ‘듄’에 나오는 이슬응결기를 응용해 캘리포니아주 사막화에 대비하고자 연구 중이다. 페르난데스 연구실 홈페이지

비영리단체 포그퀘스트가 세계 곳곳에 설치한 안개잡이. 촘촘한 그물망이 안개를 잡아 물방울이 맺히게 한다. 포그퀘스트 홈페이지

하나뿐인 지구를 생각하게 하다

‘듄’은 허버트가 1963년부터 쓰기 시작해 죽을 때까지 썼으며, 이후 그의 아들이 속편을 이어가고 있는 대하장편소설이다. SF로서는 처음으로 인종, 종교, 정치, 지형, 문화, 역사, 환경을 포함한 생태계를 구현한 작품으로, 작가 아서 클라크가 “이 작품에 비견할 소설은 J.R.R. 톨킨의 ‘반지의 제왕’밖에 없다”고 평하기도 했다. 환경과 생태학을 다룬 첫 소설로 평가되기도 한다.

1959년, 기자였던 허버트는 미 농무부의 한 프로그램에 대한 기사를 쓰기 위해 오리건주 해안의 모래언덕을 조사하고 있었다. 농무부는 1930년대 이래 이 해변에 뿌리가 긴 유럽모래사초를 심어 모래의 이동을 막고 있었다. 허버트는 경비행기를 타고 모래언덕을 내려다보며 그 장엄한 풍경에 사로잡혔다. 태평양에서부터 불어오는 바람에 모래언덕이 동쪽으로 이동하며 모든 것을 파묻어 버렸다. 허버트는 “이 모래파도는 해일이나 다름없다. 심지어 죽음까지도 유발한다. 숲을 휩쓸고 호수를 망치고 항구를 메운다”고 기술했다.

허버트는 ‘그들은 움직이는 모래를 멈췄다’는 제목으로 기사를 썼지만 완성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미 모래언덕에 매료된 허버트는 조사를 계속했고, 장장 5년간 사막과 사막문화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 조사는 단편소설이 되었고 이어 SF 대서사시로 재구성되었다.

오리건주는 해안 모래언덕의 움직임을 안정시키기 위해 1930년대부터 유럽모래사초를 심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쌓이고 움직이는 오리건주의 거대한 모래언덕은 프랭크 허버트에게 ‘듄’을 쓰게 한 영감이었다. 오리건주립대 제공

‘듄’의 주인공은 ‘모래언덕(dune)’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인간 이전에 사막 그 자체다. 소설의 무대인 행성 아라키스는 별 전체가 모래로 뒤덮인 사막이다. 전체가 사막이기에 지구처럼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거나, 다른 곳에서 습기가 날아오기를 기대할 수도 없다.

이 별에서 물은 너무나 희소하여 신성하기까지 하다. 아라키스의 사막부족인 프레멘은 사막복을 입어 몸에서 나오는 땀, 소변을 전부 식수로 재활용하고, 바람덫과 이슬응결기로 대기 중의 수증기를 모으고, 지하저수지와 하수관으로 물을 저장하고 나른다. 사람이 죽으면 그 시체에서 마지막 한 방울의 수분까지 모은다. 물을 남에게 주는 것은 청혼을 뜻하며, 소중한 침을 뱉는 것은 신뢰를 뜻한다. 눈물이 귀하기에 울지도 않는다. 더해서 이 사막에는 모래 속을 기어 다니며 사람이고 기계고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는 모래벌레라는 괴생물체가 있어 가뜩이나 열악한 환경을 더 열악하게 한다.

이 끔찍하도록 척박한 별이 은하제국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까닭은 이곳이 멜란지라는 스파이스, 특별한 종류의 향신료가 생산되는 은하계 유일한 별이기 때문이다. 스파이스는 중독성과 부작용이 있지만 인간의 감각을 향상시키는 효과가 있어 우주선 항법사가 항로를 잡는 것을 도와주기 때문에, 스파이스가 없으면 제국간 통신과 수송시스템은 전부 붕괴되어 버린다.

모래벌레 또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 모래벌레가 바로 스파이스의 생산자며 식물이 없는 아라키스에 산소를 공급하는 유일한 자연이기 때문이다. 모래벌레는 물에 약하기 때문에 만약 아라키스에 비가 내리고 개울이 흘러 사람이 살기 좋은 환경이 된다면 멸종해버리고 말 것이다. 이 모래벌레는 아라키스를 황폐화시킨 주범이자, 아라키스의 생태계를 지키는 생명의 원천이며, 동시에 이 척박한 환경이 나아지지 않게 만드는 주범이다.

이렇게 서로 물고 물리고, 생명과 위협을 동시에 제공하는 아라키스의 환경은 하나로 이어진 지구의 자연을 생각하게 한다. ‘듄’은 하나의 별을 하나의 환경으로 단순화시키고, 다양한 자연과 동식물을 모래벌레라는 하나의 생물로 단순화시키는 시뮬레이션을 통해, 지구 또한 한정된 자원을 가진 하나의 닫힌 생태계임을 선명하게 느끼게 해 준다.

최초의 생태주의 SF인 ‘듄’은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 감독이 영화화를 추진하다가 결국 좌초됐다. 우여곡절 끝에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연출로 영화화된 1984년작 ‘듄’은 원작과는 거리가 멀다는 평가를 받았다. 유니버설픽쳐스 제공

SF 문화생태계의 시조

‘듄’은 워낙 일찍 유명세를 탄 탓에 역설적으로 그 자신보다 파생된 작품이 더 유명해진 편이다.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 감독이 제작하려 했던 ‘듄’ 영화는 살바도르 달리와 오손 웰스, 핑크 플로이드까지 참여한 대규모 프로젝트였지만 예산문제로 좌초되었고, 이 프로젝트는 대신 두 개의 전설적인 SF영화로 갈라져나갔다.

‘듄’의 시나리오 작가 댄 오배넌과 아티스트 한스 루돌프 기거는 리들리 스콧의 영화 ‘에이리언’으로 옮겨갔다. ‘듄’의 세계관은 ‘스타워즈’로 이어졌고, 행성 아라키스는 ‘스타워즈’의 첫 행성인 모래행성 타투인으로 구현되었다. 황제와 싸우는 예언의 소년 폴의 이미지는 주인공 루크로, 모래벌레와 융합한 레토 황제의 이미지는 괴물 ‘자바 더 헛’으로 이어졌다. 제다이와 포스의 개념도 허버트가 선불교에서 가져온 ‘듄’의 ‘베네 게세리트’와 그 가르침을 연상시킨다. 이 유사성을 심각하게 생각한 이들도 있었지만 허버트는 웃어넘겼고, 루카스가 아이디어를 가져간 듯한 여러 다른 SF 작가들과 함께 ‘루카스를 고소하기에는 우리가 너무 위대하지 모임’을 결성하는 것으로 넘어갔다.

게임계에도 비슷한 현상이 있었다. ‘듄’이 소설 내내 강조하는 자원수급과 운용, 환경조성의 중요성은 게임 개발자들에게 시뮬레이션 전투의 아이디어를 주었고, ‘듄Ⅱ’는 1992년 세계 최초의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RTS)게임으로 발표되었다. 역시 너무 일렀던 탓에 더 큰 유명세는 그 방식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블리자드사의 게임 ‘워크래프트’, ‘스타크래프트’가 차지했다.

최초의 전략시뮬레이션 게임으로 꼽히는 웨스트우드사의 ‘듄Ⅱ’.

사막화 앞에서 ‘듄’의 지혜를 생각하다

‘듄’이 출간된 지 54년이 지난 현재, 지구의 사막화는 가속화되고 있다. 유엔 사막화방지협약(UNCCD)에 따르면 지난 50년 동안 65만㎢가 사막이 되었고, 매해 6만~10만㎢가 사막화되고 있다. 중국 대지의 30% 이상, 몽골의 90%가 사막화되었고, 이는 심각한 황사를 일으켜 한국에도 직접적인 재난이 되고 있다.

하지만 소설 ‘듄’은 우리에게 사막화되어가는 지구에서 생존하는 지혜를 전한다. ‘물’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으며, 아무리 척박한 환경에서도 시스템과 기술, 그리고 약간의 상상력이 생존을 도와주며, 인간은 기술로 환경을 파괴할 수 있지만 기술로 재생시킬 수도 있다고.

2013년, 가뭄이 지속되던 캘리포니아주에서는 빗물을 받아 화장실 변기물을 내리는 용도로 쓰는 것이 허용되었다. 페르난데스 교수는 이미 세계 8개국에서 좋은 성과를 내고 있는 캐나다의 비영리단체 포그퀘스트의 ‘안개잡이’를 캘리포니아에 세우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촘촘한 그물망에 이슬이 맺히게 하는 단순한 장치로, 바람이 좋은 날에는 이 장치 하나로 하루 평균 식수 30리터를 모을 수 있었다. 포그퀘스트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듄’에 등장하는 생태학자와 거의 유사한 제안을 한다. 안개가 많이 끼는 지역에 묘목을 심고, 우선은 안개잡이로 모은 물로 나무를 키운 뒤 나중에 묘목이 자라 자생하게 되면 그 숲이 물을 제공하게 된다는 것이다.

여전히 미 농무부는 오리건주 해안 모래언덕에 유럽모래사초를 뿌리고 있다. 이 식물은 인간이 계속 살피지 않으면 쓸려가 버리거나 뿌리가 짧은 다른 식물에 잠식되어 버린다. 이들은 모래를 안정시키고 인간의 거주지를 보호하고 있지만, 환경의 변화로 해안생물 서식지가 파괴되는 점은 해결해야 할 또 다른 문제다.

김보영ㆍSF 작가

프랭크 패트릭 허버트

1920년 10월 8일~1986년 2월 11일. 미국의 SF 작가. 2차 세계대전 동안 미 해군에서 사진사로 근무했고 이후 기자로 활동했다. 1959년 오리건의 사막을 취재하다가 지구의 생태계와 환경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1970년 제정된 ‘지구의 날’ 행사의 첫 번째 연사 중 하나였고, 자신만의 생태시범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태양열 집열기, 풍력발전, 메탄 연료발전기로 자체에너지 생산을 하는 집을 지어 살기도 했다. 1963년부터 일평생 ‘듄’ 시리즈를 썼고, 그가 죽은 뒤 그의 아들과 다른 작가들이 13권의 속편을 더 출판했다.

<소개된 책>

프랭크 허버트 지음

김승욱 옮김

황금가지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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