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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석학 칼럼] 크렘린과 미국 대선

입력
2016.12.11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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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난 11월 초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개인적으로 연락해 미국 대통령 선거에 대한 사이버 공격을 하지 말라고 경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보다 한 달 전인 10월 제임스 클래퍼 미 국가정보국(DNI) 국장과 제 존슨 미 국토안보부 장관은 “러시아가 사이버 공격으로 미국 대선 과정을 방해했다”면서 러시아 최고위 관료들을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11월 8일 미 대선 이후 투표나 다른 선거 관련 장치에 해킹 시도가 있었다는 명백한 증거는 아직까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10만표 차이가 난 세 개의 핵심 주 선거의 정치과정에서 러시아의 사이버 간섭이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앞으로 그러한 러시아의 행동을 억지시킬 수 있을까. 억지는 누구를 막을지, 무엇을 막을지에 따라 달라진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국가가 무력을 사용하는 것을 막는 것이 무력 사용 수준에 미치지 않는 행동을 막는 것보다 쉬울 것이다. ‘사이버 진주만’ 같은 깜짝 공격의 위협은 과장됐을 공산이 크다. 전기나 통신처럼 중대한 사회기반시설은 공격에 취약하지만, 강대국들의 상호의존성이 이를 막아준다. 미국은 억지 수단을 사이버 공격으로 되갚는 것에 한정하지 않고 어떤 수단으로든 다른 분야를 공격할 수도 있다고 분명히 밝혔다. 누가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 실명을 거론하며 망신을 줄 수도 있고 경제적 제재나 핵무기를 쓸 수도 있다.

미국과 러시아를 포함한 다른 나라들은 무력 갈등에 관한 법률을 사이버 공간에도 적용하기로 동의했다. 사이버 작전이 무장 공격에 해당하는지는 어떤 방법을 쓰느냐보다 어떤 결과를 초래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재산이나 인명 피해를 주게 되면 무장 공격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무장 공격에 해당하지 않는 작전은 어떻게 막아야 할까. 전력망이나 금융 시스템과 달리 주요 타깃들(예를 들면 자유로운 정치과정)이 전략상으론 치명적이지 않은 회색지대가 있다. 전자를 파괴하는 것은 목숨과 재산에 해를 끼칠 수 있다. 반면 후자를 방해하면 뿌리 깊이 박혀 있는 정치적 가치가 위협을 받는다.

2015년 미국, 러시아, 중국 그리고 사이버 파워가 강한 나라들이 포함된 유엔의 정부전문가그룹(UNGGE)은 평화 시에 민간 시설을 타깃으로 하지 않는다는 규정에 합의했다. 이 합의는 2015년 11월 터키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 승인됐다. 그 다음달 우크라이나의 전력망이 사이버 공격을 당했을 때 일부 분석가들은 우크라이나와 하이브리드 전쟁을 계속 펼치고 있는 러시아가 사이버 무기를 사용했을지 모른다고 의심했다. 사실이라면 러시아는 직접 서명한 협정을 어긴 비열한 행동을 한 셈이 된다.

미국 대선과 관련한 러시아의 행동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미국 관료들에 따르면, 러시아 정보 기관들은 민주당의 핵심 고위급 인사의 이메일 계정을 해킹한 뒤 위키리크스에 이 내용을 제공해 선거유세 기간 동안 조금씩 누출시키면서 힐러리 클린턴에게 불리한 뉴스가 계속 나올 수 있도록 했다.

러시아가 민주당 선거 유세를 방해했다는 혐의는 회색지대에 있다. 러시아가 클린턴의 2010년 인터넷 ‘자유 어젠다’ 선언에 프로파간다로 반응했다는 해석도 가능하고, 2012년 푸틴의 선거에 대한 클린턴의 비판적 발언에 복수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동기가 무엇이든 러시아의 방해는 미국의 정치과정을 왜곡시키려는 것처럼 보인다.

오바마 정부는 그 전부터 사이버 공격이 얼마나 심각한지 파악하려 애썼다. 하지만 이러한 회색지대가 얼마나 모호한지 밝혀내려 하진 않았다. 2016년 오바마 대통령은 어려운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사이버 방법만 쓸 것인가, 제재조치처럼 부문을 초월하는 방식을 써서 대응할 것인가. 오바마 대통령은 이에 따른 잠재적 가능성이 얼마나 높아질지 추정해야 했다. 하지만 오바마 정부는 선거를 혼란스럽게 할 수도 있는 조치를 취하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투표 8일 전 미국은 핫라인을 통해 러시아에 미국 선거를 방해하지 말라고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두 나라의 핵위기감소센터(NRRC)를 연결하는 이 핫라인은 주요 사이버 사건들을 다루기 위해 3년 전 설치됐다.

오바마 정부는 이러한 경고가 성공적인 억지 조치였다고 평가했다. 러시아의 해킹 움직임이 둔화하거나 멈춘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부 정치평론가들은 러시아가 이미 자신들의 목표를 이뤘다고 말한다.

선거 3주 후 미국 정부는 선거 관련 인프라의 전체적 무결성에 대해 여전히 확신한다고 밝혔다. 사이버 안보의 관점에서 봤을 때도 자유롭고 공정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보 기관 고위직들은 러시아 사이버 방해공작의 보다 광범위한 영향에 대해 계속 조사하고 있다. 러시아는 클린턴에 대한 조작된 이야기로 유권자들에게 영향을 주려 했던 것 같다. 많은 가짜 뉴스가 두 나라로부터 자금지원을 받는 매체들인 RT(러시아투데이)와 스푸트니크에서 나왔다. 이것을 전통적인 프로파간다로 봐야 할까 아니면 뭔가 새로운 것으로 봐야 할까.

많은 정치평론가들은 2016 미 대선 과정에 러시아 정부가 공식적인 수준으로 개입한 것이 선을 넘은 행위라고 여기고 있다. 또 이를 용인해도 괜찮은 회색지대의 행동으로 치부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들은 오바마 정부가 러시아의 잘못을 공개적으로 밝혀야 한다고 요구했다. 미국 정보기관은 러시아가 한 일에 대해 파악한 것을 공개적으로 자세히 설명해야 하고, 관련성이 확인된 러시아 최고위 관료들에 대해 금융과 여행 제재를 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미국 관료들은 러시아의 사이버 공격을 파악하는 데 이용된 정보 수집 방법을 위험에 빠뜨리고 싶어하지 않으며 전쟁의 위험성을 키우는 것도 경계한다.

러시아의 미 대선 개입은 분수령이 됐다. 앞으로 서구 민주주의 국가에서 중요한 선거가 연이어 열린다. 분석가들은 러시아가 이로부터 어떤 교훈을 얻는지 면밀히 지켜보게 될 것이다.

조지프 나이 미국 하버드대 석좌교수ㆍ국제정치학

번역=고경석기자 ⓒProject Syndic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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