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김덕영
독일 카셀대 교수

등록 : 2017.04.09 16:03
수정 : 2017.04.09 16:03

“교황이 가꾼 포도원을 부수는 멧돼지, 루터를 파문하라”

루터와 종교개혁 500년<6> ‘종교개혁 3대 저작’ 출간

등록 : 2017.04.09 16:03
수정 : 2017.04.09 16:03

루터를 파문시킨 교황 레오 10세. 루터의 대척점에 있었다 해서 레오 10세만이 유난히 사악했다고 보긴 어렵다. 레오 10세는 예술인 후원으로 유명한 메디치 가문 출신으로 이 초상화도 라파엘로가 그렸다.

라이프치히 논쟁이 끝나고 요한 에크는 로마 교황청에 루터를 고발했다. 그러나 교황청은 신성로마제국 황제 선출이라는 복잡한 정치적 문제에 연루되어 있었기 때문에 곧바로 루터에 대한 조치를 취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1520년 1월 루터에 대한 이단재판이 재개되었으며, 그 결과 라이프치히 논쟁이 벌어진 지 1년 후인 그 해 6월 15일 루터의 파문을 경고하는 교황 레오 10세의 교서 ‘주여 일어나소서!’가 작성되어 7월 24일 공표되었다. 이 교서의 초안은 그 해 5월에 나왔는데, 루터의 라이프치히 논쟁 상대자인 에크와 이탈리아 추기경들이 작업에 참여했다.

이 교서는 루터를 교황이 즐겨 사냥하는 ‘멧돼지’에 비유하고 있다. “주여, 일어나사 심판하소서. (중략) 숲에서 뛰쳐나온 멧돼지 한 마리가 (당신이 가꾼) 포도원을 파괴하고 있고 온갖 들짐승이 먹어 치우고 있나이다.” 이는 시편 7편 7절 “주여, 일어나사 내 적들의 노를 막으소서”, 80편 14절 “멧돼지들이 (주가 가꾼 포도나무를) 파헤치며 들짐승들이 먹어 치우나이다”를 변용한 것이다. 이어서 교황의 교서는 41개조에 걸쳐 루터를 이단으로 규정하면서 그의 저작을 불태우도록 하고 루터에게 60일 이내에 그의 주장을 철회하지 않으면 파문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멧돼지 vs 적그리스도” 격렬한 비난전

기독교가 지배하던 중세 유럽에서 파문은 그야말로 가혹한 형벌이었다. 파문된 자는 교회 공동체로부터 추방되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죽음을 당하고 그의 영혼은 구원의 가능성을 상실하기 때문에 영원한 저주를 받게 된다. 파문은 한 인간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종교적 조치였다. 그러나 루터는 이에 굴하지 않았다. 오히려 교황의 교서를 적(敵)그리스도의 교서, 그것도 저주스러운 교서라고 반박하면서 맞섰다.

이 와중에 교황의 지시로 마인츠, 쾰른 등에서 루터의 저작이 불태워졌다. 이 소식을 접한 루터는 그와 똑같이 대응하기로 작심하고 비텐베르크 동쪽 성문 바로 바깥에 있는 ‘성 십자가 교회’에서 동료들 및 학생들과 교황의 교서를 비롯하여 수많은 가톨릭 서적을 불태웠다. 교황의 교서가 공표된 지 정확히 60일째가 되는 날인 1520년 12월 10일의 일이었다.

고도로 계산된 ‘퍼포먼스’였다. 자신을 제도적으로 파문하려는 교황에게 신학적 파산을 선고한다는 메시지를 만천하에 고지하는 ‘화형식’이었다. 마침내 교황은 1521년 1월 3일 ‘로마 교황은 이렇게 말한다’라는 교서를 통해 루터를 파문했다. 그로부터 불과 4개월 후인 5월 8일 루터는 신성로마제국 황제로부터 제국 추방령을 받게 된다.

1521년 교황 레오 10세가 쓴 교서 '마르틴 루터의 오류에 관하여(Contra errores Martini Lutheri).

1519년 라이프치히 논쟁에서부터 1521년 루터의 파문까지 전개된 종교개혁적 사건들을 다음과 같이 루터와 교황의 관계로 요약할 수 있다. 교황을 적그리스도로 규정하는 루터와 그런 루터를 신의 교회를 파괴하는, 그리고 자신이 즐겨 사냥하는 멧돼지에 비유하는 교황. 그리고 그런 교황의 교서를 적그리스도의 저주스러운 교서라고 논박하고 공개적으로 불태우는 루터와 그런 루터를 이단으로 파문하는 교황!

치열한 ‘교파시대’의 개막

그 결과 루터와 교황은 서로에게 반기독교적인 존재가 되었다. 둘은 서로에게 적그리스도였을 뿐이며 신의 포도원을 짓밟는 멧돼지였을 뿐이다. 이제 서로 화해할 수 없는 두 신학적 체계가 양립하면서 투쟁하게 된 것인데, 이 투쟁은 짧게는 루터파가 공인되는 1555년까지 그리고 길게는 다른 개신교 교파들이 공인되고 개인의 종교적 자유가 인정되는 1648년까지 지속되었다. 1517년부터 1648년까지를 ‘교파 시대’라고 한다. 이는 ‘분열’의 시대라기보다 ‘분화’의 시대이다. 분화는 근대의 가장 중요한 지표들 가운데 하나이다.

루터가 공개적으로 교황의 교서를 불태우며 저항하던 1520년은 또 다른 측면에서 종교개혁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해이다. 그 해에 흔히 ‘종교개혁 3대 저작’이라고 불리는 세 권의 책이 출간되어 종교개혁의 신학적 프로그램이 제시되었다.

첫째, 1520년 8월에 독일어로 출간된 ‘독일 기독교 귀족에게 보내는 글’에서 루터는 교황권의 문제와 교회 및 사회의 개혁 문제를 다루고 있다. 여기에서 ‘만인사제직’에 대한 루터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그에 따르면 교회의 몸을 이루는 개인들은 평등하기 때문에 모두 사제의 권한을 갖는다. 교회에서 직책이 존재하는 이유는 모든 사람이 공적으로 봉사하거나 가르칠 수 없기 때문이다.

“교회의 모든 이가 사제다”

둘째, 1520년 9월에 라틴어로 출간된 ‘교회의 바빌론 유수에 대하여’에서 루터는 로마 교회법의 근본주제인 ‘성례전’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루터에 따르면 성례전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세워진 제도이기 때문에 ‘세례’와 ‘성만찬’만이 성례전에 속한다. 가톨릭에서 행하는 나머지는 인간이 만든 제도일 뿐이다.

셋째, 1520년 12월에 독일어로 출간된 ‘기독교인의 자유에 대하여’에서 루터는 칭의론(稱義論)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칭의’란 인간이 의롭다고 간주되는 것, 즉 구원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루터에 따르면 죄인인 인간은 행위를 통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믿음을 통해서만 의인이 된다. 기독교인을 자유롭게 하는 것은 외면적인 행위가 아니라 내면적인 믿음뿐이다.

이렇게 해서 루터는 1520년에 기독교의 핵심문제인 인간, 성직, 성례전, 교회, 신앙, 행위 등에 대한 새로운 신학의 토대를 구축할 수 있었다. 이 저작들에서 근대 신학의 기본 골격이 갖추어졌다. 그 이후에 전개되는 논의는 이를 확장하고 심화하는 과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덕영 독일 카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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