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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식의 세상만사] 북핵 대화, 의심과 기대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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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식의 세상만사] 북핵 대화, 의심과 기대 사이

입력
2018.03.08 17:47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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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북의 본격적 줄다리기 시작돼

위기 미루되 北 속셈에 춤추지 않으면

특별히 잃을 게 없다는 자신감 중요해

처음 적잖이 놀랐다. 이내 강한 의심이 솟았다. 이제는 돌다리를 두드리며 갈 수 있는 데까지 가보자는 생각이 구름처럼 인다. 방북 특사단에 김정은이 안긴 ‘6개항 합의’에 대한, 이틀 간의 심정 변화는 개인적 차원에 머물지 않는 듯하다. 국내외 언론과 전문가들의 눈길도 복잡한 다면체의 이쪽저쪽으로 초점이 옮겨지고 있다.

처음으로 남측에 노동당사 문을 열고, 리설주가 만찬에 동석하는 등의 무대장치와 “솔직하고 대담하다”는 특사단의 인상기 등은 눈과 귀를 어지럽힐 수 있으니 빼자. 남북정상회담을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연다거나 남북 정상 핫라인 개설한다는 등의 합의도 어느 정도 예상됐다고 치자. 나머지만으로도 김정은과의 합의는 충분히 놀랍다.

주된 놀라움은 미국과의 비핵화 대화에 김정은이 보인 강한 의욕에 쏠린다. “군사적 위협이 해소되고 체제 안전이 보장된다면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다” “비핵화 문제 협의 및 북미 관계 정상화를 위해 미국과 허심탄회한 대화를 할 용의가 있다” “대화가 지속되는 동안 추가 핵 실험 및 탄도미사일 시험발사 등을 재개하지 않는다”는 3개항에는 미국이 내세웠던 대화의 전제조건이 모두 담겼다. 게다가 8일 출국한 정의용 특사단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전달할 선물까지 따로 있다니.

의심이 솟고, 북의 속셈에 대한 궁금증과 걱정이 커지는 것도 이 대목이다. 당장 2012년 4월 집권 이래 그토록 핵ㆍ미사일 개발에 집착해 온 김정은이 “핵 무력이 완성되고 미 본토 대륙간탄도탄(ICBM) 공격이 가능해 진” 지금 왜 뒤늦게 미국과의 대화에 열의를 보이느냐는 의문이 인다. 핵심 3개항 합의에 붙은 ‘군사위협 해소 및 체제 안전 보장’ 조건, 2005년 6자회담 9ㆍ19 공동성명에서 ‘핵 폐기’를 약속하고도 이듬해 1차 핵 실험을 강행한 전력(前歷) 등에 비추면 합리적 의심이다. 북미대화가 북의 주한미군 철수 주장으로 이어질 게 뻔하다거나 아직 미완성 단계인 핵ㆍ미사일 전력의 완성을 위한 시간 벌기가 북의 노림수라는 관측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2000년 1차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정일은 김대중 대통령에 ‘주한미군 철수‘ 이야기를 꺼냈으나 DJ의 슬기로운 대처에 거둬들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의 핵ㆍ미사일 개발이 이른바 ‘레드 라인’을 넘지 않았다는 것도 미국의 태도에 비추어 사실로 여겨진다. 다만 주한미군 철수 요구는 그때그때의 자주국방 태세나 능력에 따라 대응해야지, 그런 요구가 나올 수 있다는 우려만으로 겁부터 먹을 게 아니다. 한편으로 북미대화로 북이 핵ㆍ미사일 전력 완성을 위한 시간 벌기에 성공할 것이란 관측은 미국의 정보ㆍ협상 능력을 경시한 결과다.

실은 훨씬 합리적 설명을 한미 양국 최고지도자가 내놓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8일 국가조찬기도회에서도 그랬지만, ‘평창’ 이래 “미국의 협력”을 빠뜨리지 않았다. 북미대화에 선행한 남북대화의 과속으로 자칫 동맹에 금이 갈 수 있다는 국내외 우려를 의식한 외교적 수사로 여겨지기 십상이었다. 그러나 트럼프 미 대통령이 수시로 고마움을 표한 “중국의 협력”과 함께 들으면, 미국이 유엔의 대북 제재를 주도하고 독자 제재까지 보태어 최종적으로 중국을 움직여 북의 경제 숨통을 조일 수 있었던 데 대한 구체적 평가에 가깝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대북 압박ㆍ제재, 특히 중국의 무역제재가 북 경제에 실질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 잇따랐다. 먹고 사는 문제는 어디서든 체제 불안 요인이다. 북 태도변화가 그런 현실적 요인에서 나왔다면 그 진정성은 굳이 따질 이유가 없다.

문재인 정부가 이런 우려에 귀 기울이는 한, 적어도 군사충돌 위기를 미루는 효과만큼은 분명한 남북대화와 북미대화 중재에 머뭇거릴 필요는 없다. 7일 청와대 회동에서도 확인됐듯, 대화 외의 다른 비핵화 수단이 있는 것도 아니다. 설사 북이 변덕을 부려도 대비태세만 확고하다면, 특별히 잃을 것도 없다. 자신감을 가질 만하다.

/ 주필 yshw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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