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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서 자학 개그? 국민 우롱하는 국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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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서 자학 개그? 국민 우롱하는 국정원

입력
2014.03.1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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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고정보기관인 국가정보원의 '요원'이 되는 길은 험난하다. 정기적인 훈련을 받아야 하며, 난이도가 높은 여러 자격시험을 통과해야 조직 내에서 승진할 수 있거나 적어도 '요원'의 이름을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17, 18일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대선개입 혐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20~30년차 베테랑 국정원 요원들의 모습은 비루했다. 증인 신문 과정에서 그들 스스로 밝힌 국정원 요원의 실체는 "원래 기억력이 떨어져" 자신의 휴대폰 번호와 이메일 주소도 기억하지 못하고, 수개월 전 검찰 조사의 후유증으로 "초인종 소리에도 놀라 아직도 혼이 나가 있는" 나약한 존재였다. 혹은 "검사만 보면 아직도 사지가 떨리는" 소심남이자 하루에 리트윗 30여개만 하면 업무가 종료되는 '신의 직장'에 다니는 공무원이었다.

재판 중 방청석에서는 줄곧 한숨과 실소가 이어졌다. 만약 대다수 국정원 요원들이 이들과 비슷한 수준이라면, 우리는 재판ㆍ수사 중인 대선개입이나 간첩 증거조작 사건보다 더 심각하게 국정원의 존립 자체와 국가안보에 대한 근원적 고민을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요원들의 진술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들이 '자학 개그'까지 동원해 진실을 은폐하려 한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이들은 검사가 '트위터' '대선개입'을 언급하며 질문할 때만 어눌함을 보였을 뿐, 원 전 원장이나 상부 지시에 관련된 질문을 던지면 구체적 정황을 소상히 기억해내는 요원으로 돌아갔다. 심지어 '조직적'이란 말이 들어간 질문에는 정색하며 "제가 개인적으로 판단해 처리한 것"이라고 당당하게 답했다.

이들 진술의 신빙성에 대한 판단은 재판부의 몫이다. 판사들 눈에도 훤히 보이는 '바보 행세'였다면, 이들의 진술을 배척하고 검찰 조서의 증거능력을 인정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그 바보 행세가 간첩 증거조작 사건으로 나라가 들끓고 있는 이 시기에, 자신들의 조직과 윗선을 비호하기 위해 의도한 것이라면 사법적 판단을 넘어선 문제가 된다. 세상이 아무리 비판해도 우리는 우리 식대로 '상명하복' 하고 '조직'에 충성만 하면 된다는 그들의 조롱에 국민들이 놀아난 꼴이 되기 때문이다.

다시 진실 규명은 검찰의 몫이 됐다. 이들의 법정 증언을 위증죄로 파악할 의지가 있는지 미지수지만, 이번만큼은 검찰의 엄정한 대응이 필요하다. 국정원이 그 정도까지 망가졌다고는 믿고 싶지 않은 국민들의 한탄과 분노에 검찰이 응답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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