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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정 없고 행복 가득…아마존 스타일 패션축제

입력
2017.06.02 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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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 남부 쿠스코가 인티라이미(Inti Raymi) 축제로 떠들썩한 사이, 북부 차차포야스는 ‘깔’ 다른 축제를 맞이한다. ‘스타일’이 축제 주제다. 아마존의 남녀노소는 스스로 실험적인 베스트드레서가 되어 동네 구석구석을 ‘런웨이’ 삼아 활보하는데···.

라이미 약타 축제 볼거리 중 최고는 꼬마들의 행진인 니나 라이미(Nina Raymi). 이리도 ‘시크’하다.
라이미 약타 축제 볼거리 중 최고는 꼬마들의 행진인 니나 라이미(Nina Raymi). 이리도 ‘시크’하다.

‘노세 노세’ 정신이 투철한 남미는 6월에 극성수기 축제로 몸살을 앓는다. 페루만 해도 큰 행사가 둘이다. 쿠스코의 인티라이미, 이에 대적하는 차차포야스의 라이미약타(Raymi Llaqta)다. 인티라이미가 잉카제국의 막강한 파워를 재연하는 형식인데 반해, 라이미약타는 남녀노소 웃고 떠들며 먹고 즐기는 화개장터 분위기의 퍼레이드와 공연으로 요약된다. 실험정신이 투철한 패션쇼랄까. 축제의 턱은 낮고, 정겹다.

고대인들은 하늘을 두려워할 줄 알았다. 재수가 없으면 하늘에 밉보여서, 가뭄이나 흉년 등 재해가 닥치면 하늘이 노해서라고 생각했다. 그때마다 제를 올렸다. “하늘이시여! 당신을 사모하는 우리가 여기 있나이다. 보살펴 주소서.” 케추아어로 잉카는 왕, 왕은 ‘태양의 아들’로 통했다. 태양신과 그 아들을 중매하는 1년 중 가장 으리으리한 행사, 그게 바로 쿠스코의 인티라이미다.

해 질 녘 차차포야스는 구름이 만들어낸 예술로 다른 얼굴이 된다.
해 질 녘 차차포야스는 구름이 만들어낸 예술로 다른 얼굴이 된다.
화수분 같은 축제의 거리
화수분 같은 축제의 거리

아마존 지대에 위치한 차차포야스는 ‘운무림(cloud forest)’을 의미하는 케추아어에서 기원한다. 차차포야스를 ‘구름 속 전사자들’이라 의역하는 까닭도 이 때문이다. 라이미약타는 ‘축제의 도시’란 뜻이다. 올해 22회를 맞는 이 축제를 위해 주변 아마존의 인디오들이 대거 이동한다. 전통복장과 특산물, 춤, 음악을 포함해 아마존의 문화를 탈탈 쏟아낸다.

축제 분위기는 차차포야스만이 아닌 이웃 마을까지 바이러스처럼 퍼진다. 인포메이션센터(iPERU)에서 구한 프로그램을 들고 이곳 저곳 축제 사냥에 나서야 한다. 체력은 급격히 떨어진다. 단, 그 어디에서도 사망 사고를 우려할 만큼 인산인해를 이루거나 격정적인 상황은 발생하지 않는다. 잘박잘박 젖어 드는 밀물의 느낌 정도. 덕분에 광란의 축제를 상상했던 여행자는 잠시 허탕 친 기분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차차포야스 내에서도 시간대별로 장소가 휙휙 바뀐다. 때문에 축제 기간이라도 머무는 장소에 따라 축제의 ‘축’자도 못 볼 때가 많다. 프로그램 해석도 난제다. 그저 이름만 보고 고도의 ‘찍기’ 기술을 발휘해야 한다. “이거 재밌어, 볼 만해?” 숙소 주인도, 인포메이션센터 직원도 이런 질문에 확실히 답할 준비는 되어 있지 않았다. 가봐야 안다. 복불복!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초 간단 아마존의 부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초 간단 아마존의 부엌.
지역별 특산물을 축제 현장에 내와 풍년과 안녕을 기원한다.
지역별 특산물을 축제 현장에 내와 풍년과 안녕을 기원한다.

소문난 잔치에 특산 음식이 빠지면 섭섭하다. 땅의 선물인 음식으로 아마존의 생태를 유추할 수 있다. 생선과 바나나, 유카, 옥수수, 고기, 말린 생선 등이 주재료다. 칠레나 에콰도르에서도 마주치는 까수엘라(Cazuela)는 산해진미 짬뽕 요리다. 치킨과 쇠고기 같은 육류와 생선, 쌀국수, 각종 채소가 담긴 국물 음식이다. 각종 콩을 밥처럼 담아 나오는 푸투무테(Purtumute), 햄과 베이컨, 바나나가 풍성하게 한 접시를 채우는 타카초스 콘 케시나(Tacachos con cecina) 등 지역 먹거리에 특유의 인심까지 더해 살찔 걱정은 내일로 미뤄야 한다.

양동이에 담긴 찐득한 시럽을 빵에 발라 먹다가 빙글빙글 춤을 추다가 성큼 퍼주었다.
양동이에 담긴 찐득한 시럽을 빵에 발라 먹다가 빙글빙글 춤을 추다가 성큼 퍼주었다.

퍼레이드 구경은 빈속으로 하는 게 상책이다. 이날만큼은 짠돌이도 넉넉해진다. 공유경제를 선보일 셈일까. 지역별로 특산물을 이고 진 이들이 구경꾼에게 선심을 쓴다. 주섬주섬 받아먹는다. 뭐든 달다. 웃음도 달콤하다.

하이라이트는 패션계 악동들의 행진이다. 니나라이미(Nina Raymi), 꼬맹이가 나선 축제다. 부모의 등쌀에 입혀진 듯한 아이들의 복장이야말로 하이패션의 선두주자다. 패션의 한계란 없다. 추장 아들이 되고, 사탕수수 껍질 안에서 엿이 되고. 농작물이 옷으로 표현된다. 이리도 실험적이니, 패션 혁명의 존 갈리아노도 울고 가겠다. 역시나 누구는 울고, 누구는 투정부리지만.

찬카카(Chancaca)라는 사탕수수 껍질로 싼 천연 암갈색 사탕수수당(엿).
찬카카(Chancaca)라는 사탕수수 껍질로 싼 천연 암갈색 사탕수수당(엿).
엿 대신 소년, 소녀가 쏙 들어있다. 어휴! 표정까지 100점인 축제의 베스트드레서.
엿 대신 소년, 소녀가 쏙 들어있다. 어휴! 표정까지 100점인 축제의 베스트드레서.
기나긴 행렬 속에 ‘할매 할배’의 패션도 파격적이다.
기나긴 행렬 속에 ‘할매 할배’의 패션도 파격적이다.

남미 축제에 합류하면 나이의 경계가 없다. 해맑다. 나이가 들면서 저물어가는 웃음도 이들에겐 예외인가 보다. 명확한 목표로 축제의 승패를 가리는 겨루기는 완벽히 빠졌다. 이런 축제는 이미 시작부터 성공이다. 축제는 ‘축하하여 벌이는 큰 규모의 행사’라고 사전에도 쓰여 있다.

피날레를 맥시멈으로 즐기는 법. 구경꾼이 적은 시작점, ‘산토 토리비오(Santo Toribio de Mogrovejo)’ 교회 앞으로 진격하기.
피날레를 맥시멈으로 즐기는 법. 구경꾼이 적은 시작점, ‘산토 토리비오(Santo Toribio de Mogrovejo)’ 교회 앞으로 진격하기.
“네 이름이 뭐야?” “모모(스페인어로 원숭이)야.” 꼬마마저 캐릭터에 완벽히 빙의했다. 꼬리 디테일을 보라.
“네 이름이 뭐야?” “모모(스페인어로 원숭이)야.” 꼬마마저 캐릭터에 완벽히 빙의했다. 꼬리 디테일을 보라.

축제의 마지막 날, 피날레는 늘 화려하다. 길고 장대한 댄싱 퍼레이드와 함께다. 오전 8시 산토 토리비오 교회 언덕에서 출발해 마을 구석구석을 북새통으로 만들다가 메인 광장에서 종지부를 찍는다. 세상의 모든 표정이 착륙한 그곳, 40여개 이상의 지역 특색을 치밀한 캐릭터로 표현한 뉴웨이브다. 아마존의 동식물과 작물을 몸으로 승화한 아티스트!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찰나, 정신을 차려보니 퍼레이드 속이다. 흰 손수건을 날리고, 뜀박질하고, 입이 찢어져라 웃었다. 행복을 기원하고 행복의 주문을 외우는 일. 매일 이 축제만 같아라.

라이미약타 2017 축제 정보

올해 6월 4일~11일에 걸쳐 열린다. 축제 프로그램이 하루, 한 장소에 집중되지 않고, 8일간 장소를 바꿔가며 ‘놀멍쉬멍’ 스타일이다. 제대로 축제를 즐기려면 차차포야스를 집으로 삼고, 주변 마을이나 유적지 여행을 적절히 섞어가며 시간을 투자할 것. 쿠엘랍(Kuélap), 레이메밤바(Leymebamba) 박물관, 카라히아(Karajía sarcophagi), 레반토(levanto) 등은 후회하지 않을 인근 여행지. 페이스북 정보는 @GobiernoRegionalDeAmazonas.

강미승 칼럼니스트 frideameetssomeon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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