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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 밖 과학]정치성향 연령 인종 따라 신의 얼굴 제각각

입력
2018.06.1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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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뇌 활동 일부” 주장도

자유주의 성향의 미국 기독교인이 꼽은 신의 얼굴(왼쪽)과 보수주의 성향의 미국 기독교인이 택한 신의 얼굴(오른쪽) 모습.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 연구진은 연령ㆍ인종ㆍ성별을 대표하는 얼굴 50개를 조합한 기본 얼굴을 바탕으로 300쌍의 얼굴을 만든 뒤, 실험참가자들이 신의 얼굴과 가깝다고 생각해 고른 얼굴을 중첩시켜 신의 얼굴을 만들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 제공
자유주의 성향의 미국 기독교인이 꼽은 신의 얼굴(왼쪽)과 보수주의 성향의 미국 기독교인이 택한 신의 얼굴(오른쪽) 모습.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 연구진은 연령ㆍ인종ㆍ성별을 대표하는 얼굴 50개를 조합한 기본 얼굴을 바탕으로 300쌍의 얼굴을 만든 뒤, 실험참가자들이 신의 얼굴과 가깝다고 생각해 고른 얼굴을 중첩시켜 신의 얼굴을 만들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 제공

신(神)의 얼굴은 어떻게 생겼을까.

이 흥미로운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는 최근 ‘미국에서의 신의 얼굴(The faces of God in America)’이란 제목의 연구를 진행했다. 미국 국적의 기독교인 511명(남성 330명ㆍ여성 181명)이 실험에 참여했다. 그중 백인은 74%, 흑인은 26%였다.

연구진은 우선 미국에서 연령ㆍ인종ㆍ성별을 대표하는 얼굴 50개를 조합해 기본 얼굴을 만들었다. 그런 뒤 각 실험참가자에게 기본 얼굴을 조금씩 바꿔 만든 300쌍의 얼굴을 보여주고, 신의 얼굴과 비슷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고르게 했다. 이렇게 선택한 얼굴들을 중첩해 만든 신의 얼굴은 정치적 성향이나 연령, 인종에 따라 달랐다.

보수주의 성향의 이들이 꼽은 신의 얼굴은 자유주의자들이 선택한 신의 얼굴보다 더욱 남성적이고 나이가 들어 보였다. 부유해 보이면서 힘 있는 모습도 특징이었다. 반면 자유주의자들이 고른 얼굴을 조합해 만든 신의 얼굴은 좀 더 흑인에 가까웠고, 사랑스럽게 보였다.

연구를 진행한 조슈아 잭슨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 심리학ㆍ신경과학과 교수는 “보수주의와 자유주의가 지향하는 가치 차이에 따른 결과”라고 해석했다. 보수주의자들은 사회 질서를 강조하는 보수주의에 부합하는 얼굴을 골랐고, 자유주의자들은 사회적 관용을 중시하는 자유주의에 맞는 얼굴을 선택했다는 얘기다.

실험 참가자의 인종, 연령에 따라 신의 얼굴도 달랐다. 나이가 있는 참가자들이 택한 신의 얼굴은 젊은이들이 고른 것보다 나이가 들어 보였다. 흑인들이 꼽은 신의 얼굴은 백인들이 생각한 것에 비해 흑인에 더 가까웠다.

그러나 신의 얼굴을 택하는데 참가자들의 성별은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남성ㆍ여성 참가자 모두 남성 얼굴을 신의 얼굴로 택했다. 미디어 등 일상 속에서 반복적으로 노출된 신에 대한 모습이 이 같은 결과를 불러왔을 수 있다. 연구진은 “본인이 놓인 상황이나 정치적 신념에 따라 같은 기독교인이라도 서로 신을 다르게 인식한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결과는 지난 11일 국제학술지 ‘공공과학도서관(PLoS One)’에 게재됐다.

이보다 더 나아간 연구결과도 많다. 신에 관한 믿음이 두뇌 활동의 일부이며, 신이 인간의 필요에 따라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2016년 3월 국제학술지 ‘사회인지 및 정서 신경과학’에 발표된 영국 요크대ㆍ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공동 연구진의 연구결과도 그중 하나다.

이들은 참가자 39명을 두 집단으로 나눈 뒤 한 집단에 경두개자기자극법(TMS)을, 다른 집단엔 가짜 치료를 했다. TMS를 받은 집단에선 후방 내측 전두엽 피질 활동이 크게 줄어들었다. TMS는 뇌에 강력한 자기장을 쏘는 것으로, 우울증 등을 치료하는 데 쓰인다. 이후 연구진은 참가자들에게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라고 한 다음 그들이 신ㆍ천국ㆍ천사ㆍ악마ㆍ지옥 등을 얼마나 믿는지 측정했다. 구원ㆍ영생을 강조하는 종교로 죽음에 대한 공포를 이겨내려는 경향이 두뇌 활동과 상관없이 계속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연구결과는 종교에 그리 호의적이지 않게 나왔다. TMS를 받은 집단에선 신ㆍ천국ㆍ천사 등에 대한 믿음의 정도가 TMS 이후 32.8% 줄었다. 종교적인 믿음이 감소한 것이다. 케이세 이즈마 요크대 심리학과 교수는 “후방 내측 전두엽 피질의 활동이 줄어들자 종교로 죽음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려는 경향도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같은 해 11월 29일 국제학술지 ‘사회신경과학’에 발표된 미국 유타대 연구결과도 비슷하다. 연구진은 교회를 다니는 19명이 종교적 경험을 할 때 뇌의 어느 부분이 활성화하는지 기능성자기공명영상장치(fMRI)로 살펴봤다. 그 결과 뇌에서 기분ㆍ감정 조절기능을 담당하는 ‘중격의지핵’의 활동이 커지는 것을 확인했다. 이 부위는 마약이나 도박, 성관계 등을 할 때 활성화하는 곳이다. 연구진은 “종교적 경험은 뇌의 보상회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설명했다.

신을 둘러싼 과학과 종교의 갈등은 오래전부터 계속돼 왔고, 21세기에도 진행 중이다. 하지만 과학을 통해 ‘만물의 영장’ 지위에 올라선 인간은 이전보다 더욱 가까이 신의 존재에 다가서고 있다.

변태섭기자 liberta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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